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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삼하 1:1-16 #380

제목 : 사울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슬픔

 

 

一. 사룽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애통 (1-4)

사울이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블레셋과 싸우다가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와 함께 길보아 산에서 전사하였다(삼상 31:1-6). 사울이 겸손하여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으나(삼상 15:17) 교만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나가므로 하나님은 사울을 왕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사울을 버려(삼상 15:11), 마침내 전장에서 죽게 하셨다. 겸손하여 하나님께 순종할 때는 하나님이 높여 주시지만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는 하나님이 버려 그 결과가 비참하게 된다(잠 18:12; 약 4:6).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범사에 신앙으로 행한 아주 선한 사람인데,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자기 아버지와 같이 전장에서 죽었다. 요나단의 선한 행실은 성경에 여러 면으로 나타나 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줄 알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에 전적으로 협력했다. 인간적인 면으로 생각하면 부친 사울왕이 죽으면 자기가 왕이 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돌리는 것인 줄 알고 자기는 낮아지고 희생하면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전적으로 도와주었고, 부친 사울에게도 무죄한 다윗을 죽이지 말라고 여러 번 간청했다(삼상 19:1-7; 20:1-34). 또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에게 대해서도 바로 행했다. 자기 아버지가 잘못할 때는 간하고 그 일에 동참하지 않았으나 왕과 부모로서 공경하며 잘 받들었고, 이스라엘에 대한 자기의 사명도 끝까지 다하여 아버지와 같이 전쟁터에 나가서 원수와 용감히 싸우다가 끝내는 전사하였다.

 

 

二. 아말렉 사람의 거짓 보고와 죽임 당함 (5-10, 13-16)

1. 아말렉 사람의 거짓 보고

아말렉 사람이 보고한 내용은 사실과 맞지 않는 거짓이었다. 삼상 31:3-5에 사울은 스스로 자기 칼에 엎드러져 죽었고, 사울의 병기든 자도 왕의 죽음을 보고 자살했다고 하였다. 아말렉 사람이 그 전쟁에 나갈 수도 없고, 사울이 아말렉 사람에게 누구냐고 물은 적도 없다. 그런데 아말렉 사람이 거짓으로 보고한 것은 사울의 죽은 것을 이용하여 다윗에게서 출세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는 평소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을 알고 그 사울이 죽었다고 하면 다윗이 기뻐하고 사울을 죽인 사람에게 상을 줄 것으로 믿고 자기가 사울의 자살을 도운 공로자인 것처럼 허위 보고를 하였다. 그가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였다. 사울왕이 전쟁에 나가면서 면류관을 쓰고 나갈 리가 없는데 사울이 어딘가 두고 나간 것을 이 사람이 가지고 와서 자기가 사울왕을 죽였다는 중거물로 다윗에게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 면류관을 도적질해 온 것이다. 그 아말렉 사람의 죄는, ① 명예 영광심, ② 도적질, ③ 거짓말을 한 것이다.

 

 

2.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처형함 (13-16)

다윗이 그 아말렉 사람을 처형한 이유는 ①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죽였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받은 자를 훼방하는 일과 죽이는 일은 큰 죄이므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다. ②이스라엘에 명예 영광심, 도적질, 거짓을 용납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런 죄를 용납해 놓으면 이스라엘 전체가 부패해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아말렉 사람을 처형하였다. 이것은 마치 초대 교회에서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를 징벌한 것과 같다. 아나니아 부부가 명예, 영광심, 탐욕, 거짓으로 나갈 때 베드로가 아나니아 부부를 처벌함으로 교회를 정화시켜 성결을 유지한 것이다(행 5:1-11).

 

 

三. 다윗의 조상(弔喪) (11-12, 17-27)

다윗의 슬픔은 지극히 신앙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자신의 동포들이 살육당했으며, 그 중에 그의 절친한 친구 요나단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짐승같은 이방인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 사울이 이방인의 손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을 초월하여, 진정으로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다윗은 사울 왕국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아 이방인들에게서 조차 능욕(凌辱)당한 사실을 못내 안타까와하며 슬퍼하였다.

 

다윗이 애가의 마지막에 요나단에 대한 사랑을 말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삼상 20:17). 그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 강하였고, 부부간의 사랑보다도 더 초월적(超越的)이고 고상(高尙)한 사랑이었다. 다윗은 요나단이 베푼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요나단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다. 사람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면 그 이웃이 그 사랑을 알게 된다. 우리는 요나단과 같이 많은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사랑해야겠다. 요나단과 같이 선한 일에 대한 대가를 세상에서 하나도 받지 못하더라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면 하늘나라에 가서 전부 받을 것이다. 또 그 자녀들이 복을 받게 된다. 요나단이 심어 놓은 사랑과 선에 대한 대가는 요나단의 아들이 받았다(9장). 성도는 다윗과 같이 남에게서 받은 사랑과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의 생전에 보답을 못하면 그가 죽은 다음에도 그 사랑을 늘 생각하고 그 자손에게라도 기회가 있으면 갚아야 한다.

 

1: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 두 용사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통하며 애석히 여겼다. 다윗은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죽은 다음에도 원수의 잘한 것을 들어서 칭찬하는 관대(寬大)한 사람이다.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 것을 다 용서하고 사울왕에 대해서 조금도 원한(원한)이 없었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사실을 귀히 여기고 그가 잘한 면만 생각하고 그를 높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이나 내게 대하여 섭섭하게 행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그가 잘한 면, 그에게 은혜 입은 면만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