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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본문 : 시 49:6-20

 

본 49편의 표제어는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다. 고라 자손의 조상인 고라는 성전에서 일을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제사장의 역할도 하고 싶은 마음에 지도자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 아들은 반역에 동참하지 않았으므로, 생명을 보장받고, 그 후손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며 살게 된 것을 감사하여 여러 편의 시편을 지었다. 그래서 시편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성전에서의 생활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본문에서도 인생은 유한한 것이고, 부유함도 일시적이어서, 의지해야 할 것이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교훈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49편을 장례식에서 많이 암송했는데, 물질을 목적으로 사는 삶의 무상함과 아울러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복됨을 기억했다고 한다.

 

一. 성도는 존귀한 자이다.

동물은 주어진 일생 동안 먹고 마시며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만 몰두하다가 생을 마친다. 사람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 혹은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물은 이성이 없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모르며 단순하게 본능과 욕구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판단하고 행한다.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이성’은, 참과 거짓, 옳음과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을 식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이 오직 본능에 따라서 행동하는 반면, 인간은 이성을 통해 거짓이 아닌 참을, 그름이 아닌 옳음을, 추함이 아닌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차이가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에는 이성에 대립되는 다른 힘들이 함께 있어도,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 가는 것은 이성이며, 이성은 자율적이며 가장 높고 강한 힘을 가진다고 믿었다. 칸트는 “인간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은 무엇이 옳고 선한 것인가를 판단해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인 실천이성 덕분이다”라고 했고, 영국의 철학자 홉스는 “이성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계산능력”이라고 했고, 흄은 “인간은 욕구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이성을 활용한다고 했다.

 

따라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나 행동하는 사람 즉, 이성적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을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하고, ‘먼저 사람이 되라’고 한다. 짐승을 보고 ‘짐승만도 못하다’라고 하거나 ‘먼저 짐승이 되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되라’는 말은,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다. 견해가 다르지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사람이 위신과 품위를 지키며 행복하게 사는 것, 사람으로서 예의를 지키며 염치를 알고 의리 있게 행동하는 것, 은혜에 보답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며 배려하는 삶, 즉 이성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문제는 인간이 이성을 가진 인간이 단지 먹고 마시고 자손을 낳다가 죽는다면, 여타 짐승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1) 성도는 천국백성이다

신자와 불신자의 가장 큰 차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차이에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일반지식과는 분명 다르다. 이 지식은 머리가 좋거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얻어지는 지식도 아니고 철학적인 사유와 학습을 통하여 얻어지는 지식도 분명 아니다. 영혼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은 거듭난 신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된다.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신학이란 하나님의 계시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이끌어 내는 학()으로써,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연구하고 사고하며,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그 내용을 묘사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철저하게 계시에서 시작하며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지식이다. 학문적인 연구와 사색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지성이 열리고 내적인 마음이 움직여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산물이다. 칼뱅은 제네바에 요리문답을 만들 때, 첫 질문을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바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대답한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서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사용하기에 땅 위에서 가장 존귀한 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말씀하셨고, 49:16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방에 우리를 당신의 것이라 선포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당신의 손바닥에 새기고 늘 들여다보고 계시며 능력으로 보호하여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하게 하신다(요일 5:18). 믿음으로 살았던 성도가 죽는 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하여 곡식를 거두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신다”고 하셨다(시 116:15).

 

2)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받는 자이다

성도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존귀한 자이다. 33:3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하였다. 피조물인 우리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복 중에 복이며 은혜이다. 왕상 10:8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스바 여왕이 이스라엘 나라에 와서 솔로몬을 모시고 날마다 그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 사는 신복들을 부러워하였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믿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바로 배우고, 가장 고상한 지식인 그리스도를 점점 배우고 알아 나가 신령한 세계에 대하여 바로 배우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복있는 자이며, 존귀한 자이다.

 

스펄전은 “성도들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성도가 무슨 특별한 존재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시고 그들에게 항상 마음을 두신다”라고 하였다. 성도들에게도 결점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달리 보시고 사람들 중에 존귀한 자들로 간주하신다. 이 세상의 위대한 통지차보다도 하나님의 비천한 성도들이 더 존귀한 자들이며,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진정한 귀족이다. 성도는 이 세상의 권세나 영화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신령한 하늘나라에서 영광과 존귀를 차지하는 자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세상의 훈장이나 귀족의 칭호와 비교할 수도 없다.

 

3) 성도의 본분을 바로 하지 못하면 멸망한다

어떤 남자가 겨율날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게 되었다. 세찬 바람을 막기위해 그는 코트를 벗어서 돌려 입고 뒤에서 잠그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가, 그만 앞에서 오던 차와 부딪쳐 쓰러졌다. 사람들이 달려와서 보니 아직은 목숨이 붙어 있는데, 머리가 뒤로 돌아가 있었다. 우선 머리를 제대로 맞춰주어야겠다 생각하고 목을 비틀었으나, 잘 안 돼서 그 중 힘센 청년이 억지로 비틀어 머리를 맞추어 놓고 보니 청년은 죽고 말았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사람들은 청년이 코트를 돌려 입은 것을 모르고, 목이 돌아간 것으로 오해한 나머지 청년을 죽이고 말았다. 어떤 일에 대해 온전히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아도 잘못 혹은 부분적으로 깨달으면 그 본의와 상관없이 일을 그르치게 된다.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면 하나님의 그 사람을 버리고, 율법을 버리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까지도 버림을 당한다. 노아시대 때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은 것이나. 소돔 고모라성이 유황불의 심판을 받은 것이나, 이스라엘이 대적에 의해 멸망을 당한 것은, 먹을 육신의 양식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상 2장에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란 존귀한 직분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여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중죄를 범하였다. 아버지 엘리 제사장이 그들을 불러 책망하였으나, 그들이 듣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엘리의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가 한날한시에 대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엘리 제사장은 패전의 소식을 듣는 순간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유다 왕 웃시야도 제사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본분을 떠나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분향을 자기가 하려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문둥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개발에 편자”란 말이 있다. ‘편자’는 소나 말이 마차를 끌거나 무거운 짐을 싣고 바닥이 단단한 길을 오랫동안 걸어야 할 때 발굽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발바닥에 붙이는 쇳조각이다. 그런데 개에게 이 편자를 붙인다면, 소나 말처럼 딱딱한 발톱이 없는 개는 오히려 발을 상해서 못 쓰게 될 것이다. 이처럼 아무리 좋은 것도 격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오히려 손해가 된다는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성도는 존귀한 자이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성도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는 다만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

 

 

二.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오늘날 세상은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 만능주의’와 돈이 최고라는 ‘배금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불신자들은 내세를 알지 못하므로, 그들은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남보다 잘되고 출세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는 것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으로 알고 거기에 인생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그러나 9:27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했다. 인간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사실은, 사람이 죽은 후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헤 놓으신 세상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칙으로서, 그가 하나님을 믿든지 아니 믿든지, 자기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간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1)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육신의 수명이 다하면 영혼은 즉시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불신자의 영혼은 지옥에서 영벌에 처해진다. 돈으로는 천국 갈 수 없고 구원받지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서만이 속죄함을 받을 수 있다. 예수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셨다(눅 12:15). 사람이 사는 것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그러나 이 원리를 깨닫지 못한 부자 청년은 물질의 노예가 되어 천국을 버리고 영원한 흑암의 세계로 들어가고 말았다. .

 

본문 7-9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그 몸값을 지불할 수 없으니, 인간 생명의 값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을 지불한다고 해도 사람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하지는 못하리라.”고 번역하였다. 이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고 출세를 자랑하는 사람은 결코 자기와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 날에 다 멸망한다. “속전”은 죄를 면하고자 하나님께 바치는 돈이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세상의 재물이 속전이 되지 못한다. 6절에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6)를 존귀하나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 곳은, 자기 재물을 영원한 자기의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11절에도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가진 집이나 토지가 영원한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영원히 소유하고 누릴 것으로 여기며 과욕을 부리고 물질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집과 그들의 토지는 결국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10절)이다.

 

2)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이 세상의 삶은 나그네와 같다. 벧전 1:24-25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하였다. 모든 육체는 세월이 가면 시들게 되고 누리던 영광도 떨어지는 날이 도래한다. 세상의 어떤 영광도 반드시 시들어지고 잠깐 후에는 다 없어지고 만다. 젊은 사람도 잠깐의 세월이 지나면 노인이 되고, 늙고 얼마 후에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잠시 잠깐 후에는 다 지나가고 만다. 다른 사람이 출세하여 부자가 되고 존귀와 영광이 커진다고 해도, 성도는 그것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말이야 할 것은, 그 권세는 잠시 지나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영혼이 있으므로 존귀한 존재이다.(창 1:26-27). 그러나 육체적으로만 볼 때는 멸망하는 짐승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이, 먹고 마시고 자손을 낳고 살다가 죽는다. 사람의 존귀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아 알고 영으로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義)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같이 영생 복락을 누리는데 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잠깐 살다가 빈손으로 간다.(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도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하여 자기를 높이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을지라도, 죽으면 예수를 믿지 않았음으로 지옥에 가서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칭찬받는 것도 다 헛되고,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지혜 있고 유식한 사람도 죽고 무식하고 가난한 자도 죽는다. 죽을 때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빈손으로 간다. 그들의 재물은 다른 사람이 누리게 된다. 혹 자녀가 물려받았다고 해도 그 자녀가 내내 보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거처와 소유가 영영히 있을 줄 알고 집과 전답 등을 자기 이름으로 등기하지만, 그것들이 영원히 존속하지 못한다. 목자가 양을 우리 안에 인도하여 가두는 것처럼, 사망이 그들을 무덤으로 인도하여 가둘 그때는, 그들의 아름다움이 다 소멸되어 없어질 것이다.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유리의 영혼을 불러 가시면 육신의 생명이 죽울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부르시면 인간은 1분 1초도 지체하지 못하며, 불복하거나 거역할 수 없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생명을 생명을 연장할 수 없고, 모든 소유를 다 내놓고 빈손으로 가야 한다.

 

3)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멸망한다

여호수아서 7장에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욕심으로 욕심으로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감추었다가 발각된 아간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기 자녀들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들과 함께 아골골짜기에서 불살음을 당하였다.

 

선지자 발람도 재물에 눈이 어두워 이스라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부쉬양활ㄹ 위해 발락에게 갔다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죄값으로 여호수아의 칼날에 죽임을 당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인본주의로 행하다가 왕위를 빼앗기고 세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 사삿 삼손도 큰 능력과 사사의 직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직무를 잊고 들릴라에게 빠져 연애하다가 블레셋에게 멸망 당했다.

 

사람이 제 아무리 고귀하고 존귀에 처하며 위대하여 영화를 누리고 산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결국 멸망한다. 성도라는 위치는 천사도 부러워하고 그 구원을 비밀을 알고자 하는 참으로 존귀하고 거룩한 존재이다. 그러나, 4: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누구든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을 위한 삶을 살면 아무리 존귀한 위치, 직분과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될 뿐이다.

 

인생의 가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이 살아나가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다. 인간은 약하고 잠시 잠깐 후에 쓰러질 허무한 존재이지만, 성도가 이 세상에서 주의 말씀대로 주의 뜻대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행한 것은 그대로 남아 금생과 내세의 상급이 된다. 특별히 성도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여 봉사하고 수고한 것은 하나님 앞에 결코 헛되지 않는다. 이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감정도 가고, 의식도 지나가나,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만 영원히 남는다. 하늘나라를 건설하여 나가는데 어떻게 하든지 도움을 주어야 한다. 오직 믿는 일 한 것만 영원히 남는다. 믿는 성도라고 해도, 이러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그가 아무리 존귀에 처하여 치부하여 영광이 더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할지라도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 사람이 고귀해도 결국 죽음에 처하게 되므로, 재물을 의지하는 분별력 없는 곧, 짐승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성도는 존귀한 자이다.

2.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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