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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7 12:08

시험을 참는 자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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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험을 참는 자의 복

본문 : 약 1:12-15

 

一.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흔히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왜 내게만 이런 시험을 주시지”하고 의아해하거나 원망할 수 있지만, 이런 생각은 바로 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하지도 않으시며, 또한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도(창 22:1-2) 악한 뜻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연단시켜 마침내 복 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시험은 다 선하고 복되며 유익한 것이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다. 예수께서도 눅 11:11-12에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어떤 부모도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 뱀을 주고, 알을 달라고 하면 알 대신에 전갈을 주지 않는다. 그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복되고 유익하며 좋은 것만 주신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하나님은(롬 8:28), 우리 맘에 들지 않고 우리 눈에 좋지 않게 보이는 것조차도 우리에게 유익하므로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시험에 드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3: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가 행한 죄값으로 인해 벌을 받고 고난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을 원망할 수 없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당하실 수 없는 분인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지도 않는다. 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연단의 과정이지, 결코 우리를 타락시켜 멸망케 하려는 것이 아니다.

 

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여 마침내 복 주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죄와 되지 못한 면을 전부 다 드러나게 하여 회개케 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지,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는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지, 말씀대로 영혼이 잘 만들어 졌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지를 시험해 보신다는 것이다. 이 시험의 목적은, 이같은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분명히 알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살게하여 복을 주시려는 것이었다.

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하신 목적도, 그같은 시험을 통하여 그들을 낮추어 겸손한 자로 만들어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성도에게 대한 하나님의 모든 시험은, 복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도에게 복을 주어 잘 되기를 원하시지, 시험으로 인하여 성도가 고난당하는 것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미혹되어 범죄하기 때문이다. 모든 시험의 출처, 즉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심으로부터 기인한다. 즉, 시험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시험’은 ‘유혹’이라는 뜻이 있으며, 사람이 유혹에 빠지는 것은 자기 욕심 때문이다. 인생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족하게 여겨 감사하지 않고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모든 면에 자기가 높아지고 커져야 하고, 자기가 모든 일을 주장하며 자기 생각대로 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

 

'미혹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아조메노스'는, 사냥이나 고기잡이에서 유래한 말로서, 문자적으로 '미끼로 고기를 꿰어 내다', '올가미로 사냥하다' 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유혹을 받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자기 앞에 놓인 낚시바늘에 달린 미끼를 물려고 이리, 저리 끌려다니는 것과 같다.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미혹받았을 때,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다. 먹으면 죽을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더 좋게 보여진 것은 하와가 마귀의 미혹을 받아 욕심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욕심을 가지면, 하와처럼 그동안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던 물질에 대해서도 미혹을 받게 된다.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는데, 욕심을 마음에 품으면, 영의 눈이 가려져서 마음이 어두워지고 욕심이 잉태되면 욕심의 열매인 죄를 낳고, 그 결과는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게 된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4: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경고하셨지만, 이미 자기 욕심의 미혹을 받은 가인은 하나님의 책망과 권고를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말씀하셨다.(눅 12:15).

 

탐심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이상의 것을 탐하는 마음이다. 딤전 6: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을 안다면, 지금 당장 먹을 음식 한 그릇만 있어도 감사하고 입을 의복 한 벌만 있어도 감사한 것이다. 그러나 탐심을 품으면 돈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살게 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이상으로 부하려 하는 마음이 사람들을 시험에 빠지게 한다(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부하려는 욕심을 가지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거짓말하게 되고, 양심을 속이고 자기 유익을 위해 그릇된 길로 가게 된다. 그리하여 시험에 들어 올무에 걸리고,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져, 물속에 가라앉는 것 같은 곤경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매다 결국 멸망하게 된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한 국립공원에서 4m 비단뱀이 1.8m짜리 악어를 통째로 삼켰다가 악어의 발톱에 비단뱀의 옆구리가 찢어져서 배가 터져 죽은 광경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비단뱀이 자신의 체구를 생각하지 않고, 욕심대로 무조건 큰 먹이를 삼켰다가 큰 화를 당한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이 있어야 사람이 사는 줄 알고, 물질 문제 때문에 서로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으나 이것은 사는 길이 아니고, 도리어 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3: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하였다. 시험을 당하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려랴 하고, 욕심을 버리려면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잘 받아야 한다.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의 뜻대로 하려고 하면 육체의 욕심이 거스려 방해하고, 육체의 소욕대로 하려고 하면 성령이 권고하여 막는다. 이처럼 성도에게는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대적하여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모든 시험은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으로 행할 때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二. 옳다 인정함을 받으면 면류관을 얻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test)은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주시는 것으로, 성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이 시험과 13절 이하에서 말씀하는 '시험'(temptation), 즉 욕심에 이끌려 마귀의 미혹을 받는 것과는 다르다.

 

인생의 시험은 두 가지, 하나는 하나님의 시험이고, 또 하나는 마귀의 시험이다. 하나님의 시험은 일종의 테스트(test), 신앙을 견고하게 하는 훈련과 연단으로, 이 시험을 인내하면 신앙이 성장하고 더 큰 축복을 받으나, 마귀의 시험은 사람의 부패성과 욕심을 이용하여 죄악에 빠져 멸망하게 한다. 그러므로 마귀의 시험은 물리쳐야 하고 하나님의 시험을 참아야 한다.

 

성도는 시험이 올 때 참아야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시는 여러 가지 시험은, 성도를 연단시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자로 만드시고, 예정하신 복을 주시며, 원하는 소망을 이루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무쇠 덩어리를 어떤 용도에 쓰기에 합당한 연장으로 만들려면, 뜨거운 불에 달구고 쇠망치로 무수히 때리고, 수차례에 걸친 담금질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처럼 구원받은 성도라 해도 하나님의 일군으로 사용하려면, 거기에 합당한 인격과 실력, 자격을 갖추기 위한 고난과 시련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믿음의 시련을 말씀을 굳게 잡고 참고 견딜 때에 영혼이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자는 인재를 쓸 때는 아홉 가지 시험을 하라고 했다. “먼 곳에 심부름을 시켜 충성스러운지 시험해 보고, 가까이 두고 써서 공경을 시험해 보며, 번거로운 일을 시켜서 재능을 시험해 보며, 뜻밖의 질문을 던져 지혜를 시험해 보며, 급한 약속을 해서 신용을 보고, 재물을 맡겨 어짐을 시험해 보며, 위급한 일을 알리어 절개도 시험해 보며, 또 술 취하게 하여 절도를 시험해 보며, 남녀를 섞여 있게 하여 이성에 대한 자세를 시험해 본 후에 인재를 쓰라”고 교훈했다. 이처럼 세상에서도 아무나 중요한 자리에 앉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해서 시험해 보고 합당한 실력을 갖추었을 때 사용한다. 하나님은 자격이 없는 자에게는 귀중하고 존귀한 것을 주시지 않으며, 혹 준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거나 누리지도 못한다. 환난 중에서 연단을 잘 받아 신앙의 실력과 자격을 갖춘 자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고 그에게는 존귀와 영광도 함께 주신다.

 

19세기 러시아의 문학가 톨스토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시련은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일을 맡기시려고 애굽에서 40년간, 시내광야에서 40년간 도합 80년간을 연단시켰으며, 또 요셉을 애굽에서 13년 동안 연단시켜서 애굽의 총리로 세워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일도 맡기고 영광도 주신다. 김현봉 목사님은 "기독교의 가장 요긴한 점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참고 견디는 것이 없이는 신앙의 연단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5: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였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인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기 위해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 시험이 들어올 때는 고통도 따라오지만, 그 고통을 잘 참는 데서 구원이 이루어져 나아간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십자가 없는 세계를 구하지 말고, 십자가가 있는 세계를 기뻐해야 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시험을 참았을 때, 하나님께서 풀무불을 이기게 해 주셨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어버리고 자녀들이 한날한시에 죽고, 자신의 몸은 병들어 고통 가운데, 아내까지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핍박하며, 친구들까지도 지은 죄로 인해 고난당하는 것이라고 비방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끝까지 참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갑절의 복을 받았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면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이 오므로, 인내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없다. “참다”의 헬라어 휘포모네(?πομον?)는 단순히 직면하거나 견딘다는 뜻이 아니라, 승리의 결과를 얻기까지 참고 견딘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 어떻게 참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참아야 한다. 핍박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그의 말씀을 의지하여 참으면서, 믿음으로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 시험을 참는 것이다. 벧전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붙들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다.(4:3-4)

 

언제까지 시험을 참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실 때까지 참아야 한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참으면서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고, 참으면서 제단을 쌓았으며, 참으면서 이삭을 결박하였고, 참으면서 칼로 이삭을 찌르려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급히 부르시면서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이 "옳다"고 인정함을 받는 데까지 나아간 표본이다.(창 22:1-19). 주님이 보시기에 "합격"이라고 인정될 때 시험이 끝나고, 그때에 예비하신 복과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 5: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하였다. 주님은 자비하시고 긍흘히 여기시는 분이므로, 그 주님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끝까지 참고 지켜 나아가는 자는 내어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상으로 갚아 주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욥은 마침내 옳다 인정함을 받고 갑절의 복을 받았다. (다윗, 요셉, 여호수아)

 

면류관은 상급을 가리키며,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실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하여 인내하면 말씀을 순종해 나가 마침내 합격이 되면 상급인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 사도 바울도 이것을 확신하고 평생토록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면류관 상을 받았다.(딤후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 의의 면류관은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가고 인내로서 믿음을 지킨 모든 성도에게 주신다. 주님으로부터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면류관 상을 얻는다.

 

 

 

 

결론

1.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2. 옳다 인정함을 받으면 면류관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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