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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본문 : 마 15:21-28

 

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을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셨다. 두로는 지중해 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이스라엘 땅에서 멀지 아니한 시돈의 남쪽 32km지점에 있는 성읍이다. 예수님께서는 두로 지경에 있는 어느 집에 들어가셔서 아무도 모르도록 하고자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시는 곳을 알고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가나안 여자, 마가복음에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 한 여인도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딸에게 있는 귀신을 쫓아 달라고 간구하였다.

 

22절에 '흉악히 귀신이 들렸다'라는 말을 공동번역에서는 '악령''마귀'가 들렸다고 하였다. 이 병은 육체적 고통과 아울러 두려움을 동반한 극심한 정신적 질환이다. 따라서 이 딸을 두었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통은 이루 다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마귀는 인간들을 철저하게 파멸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요일 3:8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마귀의 일, 즉 죄를 범하는 일을 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마귀는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병들게 한다. 복음서에 보면, 귀신 들려 벙어린 된 자, 소경된 자, 귀머거리 된 자, 몸이 꼬부라진 여자, 군대 귀신 들려 무덤 사이에서 사는 남자, 귀신 들려 간질하는 아이 속에 들어있던 귀신을 예수께서 쫓아내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에게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하고,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부르짖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지칭할 때 사용하던 표현이다. 이 여인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야, 그리스도임을 믿고 흉악한 귀신 들린 자기 딸을 고쳐주실 것을 믿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각색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셨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예수께서 지금 자기가 살고있는 곳에 와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하여 찾아왔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귀신 들린 어린 딸을 고쳐달라고 애원했다. 이는 마치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소문으로만 듣고도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하고 정탐꾼들에게 말한 것과 같다.(수 2:11).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역사를 듣고 그대로 믿고 자기와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간구하는 여인에게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부르짖었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하고 청하여 말하였다. 제자들의 이 말은, 그 여자의 소원대로 그 딸을 고쳐주시던지 쫒아내시던지 어떤 방법을 강구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대답하셨다(24절). 실제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지시하셨다(마 10:5-6). 사마리아인은 이방인들과 혼혈되었고 종교도 성경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 그러므로 이방이나 종교가 타락한 사마리아보다 구약성경을 그대로 믿고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유다 땅의 방황하는 양들을 먼저 건져내라고 명령하셨다. 예수께서 가나안 여자에게 이 말씀은 하신 것은, 가나안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므로,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나안 여자는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무시와 냉대, 그리고 그를 둘러싼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예수께 와서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구하였다(25절). 오직 도우심은 예수께만 있는 줄로 알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였다.

예수께서 마 5:45절에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을 차별하지 않고 해를 비춰 주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차별하지 않고 비를 내려 주신다. 그러므로 이 여인은 자신이 비록 유대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랑의 하나께서 그 풍성하신 긍휼하심으로 자신에게도 분명히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었다. 이 여자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독점된 하나님이 아니라 만민의 열방의 하나님이시고, 심하나님의 은혜는 비록 적어도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질 것을 믿었다.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의로운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심령에 의로운 빛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병을 치료해 주신다. 태양이 만물을 살리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만민을 구원하시고, 태양 빛이 살균 작용을 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치유의 광선으로 모든 병을 치료하여 주신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비록 유대인이라도 믿음 없는 사람들은 주님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 막 6장에,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으므로, 예수께서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셨다고 했다.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게서는 다른 곳과 달리 나사렛에서는 치유의 권능을 베풀지 않았다. 찬

 

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후렴에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라고 하였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온전한 믿음만이 죄의 문제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다. 주 예수의 권능을 믿는 온전한 믿음이 질병을 포함한 온 세상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二. 예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따라갔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구하는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매몰차게 말씀하셨다(26절).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나 돼지처럼 여겼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언약 밖에서 사는 사람은, 영혼이 없는 개나 다름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의 상태를 예수님이 그대로 말씀하신 것이다. 헬라시대에 들어와서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더욱 배타적이어서 '이방인'이라는 말 자체가 경멸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위선적이고 권위주의 적인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그랬다면 그렇게 섭섭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믿고 기대했던 자신이 다윗의 자손 메시야로 확신하는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똑같은 배타적인 인식을 가지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을 떄, 여인이 받은 충격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가나안 여인은 주님의 이같은 냉정한 태도에 당황하거나 충격을 받지 않았다. 기분이 상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애원하였다. 여인의 이 말은, “주여, 먼저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은혜를 입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저는 주님의 자녀들의 몫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인 제가 어찌 그걸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자녀들이 먹다 남긴 부스러기라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시면 제 딸이 온전해 질 것을 저는 믿습니다.라는 뜻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받는 이방인으로서 당연히 메시야가 베푸시는 구원과 은혜에 참예할 수 없는 자인 것을 알지만, 최소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일부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진리를 따라간다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내어버린 듯이 내버려 주시기도 한다. 예수님이 이처럼 여러 번에 걸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것은, 가나안 여자의 인내와 믿음을 더욱 깊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잘못된 간구야 당연히 응답받지 못하지만, 올바로 구한 것은 반드시 응답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응답받을 때까지 중단하지 말고 간구하여야 한다.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떡을 빌려줄 수 있는 절친한 친구는 이미 문을 닫고 아이들과 함께 침상에 누웠기 떄문에, 아무리 친구라도 우정에 의해서는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으나 그가 강청함을 인하여 마침내 일어나 주었다.고 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도, 원한을 풀어 달라는 과부의 청을 얼마 동안은 무시하였다. 그러나 과부가 포기하지 않고 자주 와서 호소하므로 원한을 풀어주었다.

 

마침내 예수께서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7:29에는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했다. 현대어성경은 28절을 ”그때 예수께서는 `여자여,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인정하시는 그 순간, 그 여자의 소원대로 딸의 병이 나았다.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열두 해를 혈루병을 앓던 여자는 예수님의 뒤로 와서 겉옷 가에 손을 대어 병이 나았다. 이 여자는 하나님이신 예수께 나와 그의 겉옷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을 줄로 믿었다. 이 여자는 자기의 혈루증을 고쳐 줄 분은 이 세상에서 오직 예수님뿐이라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예수께로 나왔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능력이 무한하시고, 사랑과 긍휼이 한이 없으신 분이므로, 그분의 옷깃만 만져도 능히 자기의 병이 낫게 할 것을 믿고 주님의 겉옷을 만졌다. 그때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실 때 여자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께서 딸의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23절에 대답하지 않아도, 24절에 청을 거절하였어도, 또 26절에는 개취급을 하면서 박절하게 거절하셨어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낙심하여 좌절하거나 돌아서지 않고 오히려 더욱 예수님께 나아가 간구하였다.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자기가 당하는 비난이나 멸시는 아무렇게도 여기지 않았다. 여자의 목적은 다만 예수님이 주시는 부스러기 은혜라도 받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신 말씀의 '믿음'은, 가나안 여인의 예수님에 대한 신뢰, 확신, 겸손, 인내까지 포함한 말이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으로부터 그 믿음을 칭찬받은 두 번째 이방인이다. 마 8장에 나오는 백부장과 본문의 가나안 여자의 사건에서, 예수님은 이방인 백부장의 하인과 가나안 여자의 딸을 고쳐주셨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그 믿음을 칭찬하셨고, 본문의 가나안 여자에게는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셨다. 두 사람 모두 이방인이었고, 그들의 환자는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두 사람의 믿음을 보고, 단지 말씀만으로 환자들의 병을 치유해 주셨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했지만, 그들이 멸시하는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그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구원과 영생, 육신의 질병까지도 나음을 얻었다.

 

5: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하였다. 병든 자를 치유하는 신유의 기적은 '믿음'이 바탕이 된다. 아사 왕이 재위 39구년 되던 해에 발에 병이 들어 심히 위중하였을 때, 하나님께 병 낫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을 찾아 사람의 힘과 약의 효능을 의지하다가 2년 만에 죽고 말았다.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인간 질병의 궁극적인 치유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생명을 15년 연장 받았다(왕하 20:5). 2:3-5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중풍병자와 그를 메고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확실히 믿었으며,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구원해 줄 것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졌다. 예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다. 아무리 좋은 약이나 의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온전한 치유란 있을 수 없다. 생사화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알고 계셨으나,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조차 부인하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확실히 믿는 그녀의 믿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어, 유대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그녀를 외면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같이 느껴져도 계속해서 간구하며 따라가야 한다. 응답받을 때까지 끝까지 따라가는 신앙이 큰 믿음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과 큰 복을 받게 된다. 가나안 여자의 딸을 능력으로 고쳐주셨던 주님은 지금도 동일한 권세와 능력으로 일하고 계신다. 우리도 가나안 여자와 같이 예주님이 천지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으로 확실히 믿고,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는 예수님의 인정을 받아, 모든 문제를 해결받아야 하겠다.

 

 

 

 

결론

1.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다.

2. 예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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