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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4:6-21 #529,334,595

제목 :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권면

 

바울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규범을 자신과 아볼로의 관계에 적용시키는 본을 보였다. 그들은 심는 자와 물주는 자(3:5-9), 혹은 터 닦는 자와 건축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협력하였다. 그들은 성도들로부터 자신들이 어떤 판단을 받는가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주님에게 책망받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많은 성도들의 영혼을 자라나게 하고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전심전력하며 서로 협력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쟁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수고한 사도들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기 유익을 위해 당파 싸움을 부추킨 거짓 교사들에 의한 괴계임을 말하고 있다.

 

1) 기록한 말씀을 넘어가지 말라 (6)

복음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들에 불과하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성도들이 사역자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지나치게 그들을 높이고 위하고 자랑해서도 안 된다. 사역자들 자신도 하나님의 판단을 두려워하며, 자기의 무능하고 무익함을 항상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어떤 경우가 되었든 자기가 좋아하는 사역자를 높이기 위해 파당을 만들지 말아야 하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자랑하여 교회의 일치와 단합을 지켜나가야 한다.(모세, 칼빈)

 

‘기록한 말씀’은 구약성경과 바울이 가르쳐온 성경에 근거한 영적 교훈을 포함한다. 성경의 요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당파를 만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교역자를 앞세우고 자랑한 것은, 성경 교훈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기록한 말씀 이사으로 벗어나지 말 것을 권면하였다. 성도의 모든 신앙의 표준은 성경말씀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근본 동기는, 교회의 머리는 교황(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이 가는 곳 까지 가고 멈추는 곳에서 멈추어야 한다"고 했다.

 

2) 교만한 마음을 먹지말라 (6-7)

6절의 ‘교만’은 ‘스스로 ’'자랑한다'는 의미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바울이나 아볼로)를 자랑함으로써, 그 지도자들이 원하지 않는 또 그들에게 전혀 없는 분쟁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당파를 만들어 서로 대적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이요 교만한 행동이다. 이러한 교만을 속히 회개하고 종의 위치에서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구별하다’는 ‘다르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은사를 가지고 다른 이보다 낫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는 누구나 받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자랑할 수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 너희를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구분지었느냐'고 반문했다(1:12). 바울의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1:13)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동일한 자들이 아니냐'(1:2)라는 책망이 담겨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다(대상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가 가진 지식, 혈통, 재산, 생명, 심지어 신앙까지도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께로 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므로, 그같은 자랑은 무익한 것이다. 또, 우리가 조금이라도 만들어 진 것이 있으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들은 은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잊고, 자신의 권리와 공로를 자랑하는 우를 범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겸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3) 헛된 왕노릇하지 말라 (8-9)

고린도 교인들이 심령의 가난한 자리를 떠나 마음의 배가 부르고 부요해져서 은혜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갈급증)이 없어졌다. 그래서 겸손하게 남을 섬기는 자리에 있지 않고, 스스로 높아져 스승인 바울을 제쳐놓고 스스로 왕 노릇 하면서 자기만 제일인 것처럼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고 말았다. 그런 행위에 대해 바울이 “우리 없이 왕 노릇하는 것”이라 책망하였으며, 그것은 진리와 영적 생명에서 떠난 상태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외부적으로 몇 가지 잘한 것을 가지고 배가 부르고 부요해져서 교만에 빠졌다.

 

8절에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라는 구절을, 공동번역은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벌써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함께 우리도 한번 왕 노릇을 해 볼 것이 아닙니까?' 라고 번역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지니게 된 영적 지식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되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사도들 없이도 자신들이 스스로 모든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였다. 그들은 약간의 육신적 부요와 배부름으로 인해 실상 자신의 곤고와 가련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교만 함으로 인하여 왕 노릇을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 정반대였다. 9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이 우리 사도들을 사형장의 죄수들처럼 제일 천한 자리에 세우셔서 우리가 온 세상 사람들과 천사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사도는 예수께서 직접 택하여 능력을 주어 복음을 전파토록 하신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존귀한 직분이었으며, 교회의 기초였다(엡 2:2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존귀한 사도 바울을 마치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천한 자리에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상의 구경거리, 천사들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 바울은 참된 왕노릇은 이같이 복음을 위하여 천한 자리에서 고난받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4)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받으라 (10-13)

바울이 비천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미련한 자가 되고 약한 자가 되고 비천한 자가 되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가 전한 그리스도로 인하여 존귀한 자가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주님의 영광이 가리워질 것을 염려하여, 싸울 것도 싸우지 못하고, 말할 것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고한 능욕과 멸시와 수욕을 당하면서 참고 나갔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처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위하고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당파를 만들어 자기들 생각대로 거침없이 다 하였는데, 이것이 그들의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하다는 것이다.

 

스승인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낮아져서 천사와 세계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9절), 제자이며 영의 자녀들인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 지혜롭고 존귀하다 하면서 남을 판단하고 자기 자랑하며 왕노릇을 하였다. 바울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손으로 일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 전도했다. 후욕과 핍박을 당할 때에도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축복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참았다. 바울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세상의 오예물과 만물의 쓰레기처럼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바울에게 복음을 받아 존귀한 성도가 된 고리도 교인들은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받지는 않으면서, 교만하여 바울을 비난했다. 바울이 이 점에 11-13절에 언급하며, 과연 이 같은 너희의 행위가 옳으냐고 그들에게 물었다.

 

5) 참된 스승을 본받으라 (14-17)

바울이 이 편지를 고린도교회에 쓰는 근본적인 목적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여 창피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는 자녀로 여겨 타일러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것이었다. 당시의 고린도 교회에서 아버지의 심정으로 교인들을 권면하며 훈계하고 의로 양육하려 한 자들보다는, 지도자라는 직책만을 얻기에 급급한 자들이 많았다. 세상의 스승은 대가를 받은 만큼 가르치나, 바울은 마치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 자녀의 영혼을 귀히 여겨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며 대하는 것처럼 영의 아버자로서 그들을 대하였다. 바울이 전도해서 고린도 교인들로 예수를 믿게 했으므로 복음으로써 낳은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비라 하였다. 바울이 자녀들을 권하고 책망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과 책망 하였다.

 

16절에 바울이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하였는데, 빌 3:17에서도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하였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본받았으므로, 성도들의 신앙의 모본이 되고, 바울을 본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된다. 바울이 많은 환난을 받고 약하며 매 맞고, 수고하고, 굶주리고 핍박당하면서도 참고,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한 것을 본받으라 하였다. 특별히 바울이 교만하지 않고 낮아지고 겸손하여 봉사한 것은 본받아야 한다. 바울도 사람이라 여러 단점도 있고 실수도 있었으나, 주를 위해 수고하고 환난을 받으면서도 계속하여 충성하고 희생한 것을 본받으라 하였다(고후 11:23-27).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로서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후 바울을 잘 받들어 주고 충성하였다.(2:21-22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다른 사람은 다 자기의 일을 구했으나 디모데는 자기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이것이 참 종의 위치이다. 이 때문에 디모데가 하나님 앞에 귀히 쓰는 종이 되었고 바울의 귀한 제자가 되었다. 바울이 각 교회에서 교훈하며 행사하는 것을 알려서 본받게 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파송한 것이다.

 

6) 영적 능력이 있는 자가 되라 (18-21)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 교만한 자들이 아름다운 말로 자기를 변호하고 자기를 자랑할 수 있으나, 능력은 자기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한다. 능력은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약 4:6), 누구든지 교만하면 하나님이 물리치시고 은혜를 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있던 능력도 점점 떨어져서 마침내 없어진다. 말은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으나 능력은 겸손하고, 순종한 만큼 그 사람에게 머물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도들의 새로운 삶을 살 때 능력이 있게 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운동, 구원운동, 영적 생명운동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처럼 육신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의와 영적 평강과 희락을 누리면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에 있다(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해하는 바보가 되기보다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당시 자본주의가 물질적 만족과 쾌락에만 집착하여서 정신적인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비판 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물질의 풍요와 육신적 쾌락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돼지와 같이 배부른 삶을 보장해 준다고 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배부른 돼지와 같은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보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기뻐하고 만족한다고 해서 바보가 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섬기는 것은, 그 분이 우리에게 이 땅에서 배부름과 풍요를 보장해 주시기 때문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배부르고 부요하다가 죽을 운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감으로 영생을 얻을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살았다. 바울과 같이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우리를 구원하는 자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가 우리 신앙의 모범이며, 그는 자신을 본받으라 하였다.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서로를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만과 자랑은 우리에게 합당하지 않다. 우리는 고난 중에 복음 사역을 하며 충성했던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그것은 주님 자신께서 가신 길이었고 또 그가 친히 교훈하신 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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