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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천국의 나사로와 지옥의 부자

본문 : 눅 16:19-31

 

9:27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 하였고, 25:46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라 하였다. 육신을 가진 인간은 누구나 이생의 삶을 마치면 하나님께서 정한 때에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이 도래한다. 그때 하나님의 공심판을 받아 복음을 영접하고 즉, 예수를 믿고 죽은 자의 영혼은 즉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불신자의 영혼은 즉시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인간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이것을 믿을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으로 신자나 불신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일반적이며 무차별적이며 거역할 수 없는 원칙이다.

 

一. 나사로는 천국에서 위로를 받았다.

거지 나사로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들어갔다. ‘나사로’는 히브리어 '엘리에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라는 뜻이다. 천사들은

성도들의 삶을 보호하고 인도할 뿐만 아니라, 사후에는 그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천사의 역할을 한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Visions of Heaven and Hell(천국과 지옥의 환상)이라는 책에서 '에페네투스'라는 주인공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방문한 이야기를 서술하였는데, 천국을 이렇게 묘사했다. 천국에는 태양이나 조명이 필요 없고 하나님의 영광에서 발산되는 빛만이 천상의 거처를 두루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빛에 비하면 태양 빛은 어두움 같고, 찬란한 다이아몬드와 루비의 반짝거림과 진주의 광채도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타다 남은 석탄과 같았습니다. 천국의 높은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수많은 천사들과 성도들의 '할렐루야' 찬미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인간이 뵙기에는 너무나 찬란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천국에 충만하게 채우고 계시기 때문에 '영광의 하나님'이라 부르기에 합당하십니다.

 

복락과 차분한 기쁨, 환희의 강물이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와 그분의 행복한 처소요 영원한 왕국이 자리 잡고있는 천국의 모든 복된 거민들에게 흘러갔습니다. 땅에서 올라온 에페네투스의 시력으로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영광의 빛 한 줄기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약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영광스러운 광경이지만 너무나 신선하고 즐거워서 보다가 죽을지언정 원 없이 보고 싶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천사는 천국에 죽음이나 슬픔이나 죄는 발을 붙일 수 없고, 생명과 불멸이 거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오려면 하나님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시한 죤 뉴톤 (John Newton)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면 세 가지 놀라운 일을 발견할 것을 기대한다. 첫째는 내가 생각지 못한 이를 거기서 만나게 될 것이며, 둘째는 내가 예상했던 이가 거기 없다는 것이며, 그리고 셋째로 가장 놀라운 일은 내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거지 나사로는 극도로 가난하여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목숨을 연명하였다. 마땅한 잠자리가 없어서 부자의 대문간에 누웠으며, 몸에 종기가 나 앓았지만 어느 누구도 돌보아 주지 않았다. 육신적으로 볼 때 나사로는 참으로 불쌍하고 가엾은 자였다. 그러나 나사로는 세상에 있을 동안에 예수를 믿고, 자기가 처한 환경과 형편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천국을 소망하며 살았다. 그가 예수를 믿은 증거는, 22절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고난을 당하고, 물질이 없어 거지처럼 살고, 남의 수하에서 종처럼 살았다고 해도 예수를 영접하기만 하면, 나사로처럼 이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살 수 있고, 죽은 후에는 천국에 간다.

 

23:42-43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기 전 한편 강도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 즉, 그는 예수님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그리스도이신 줄 믿고 영접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고 그거 천국에 갈 것을 말씀하셨다. 평생토록 악한 짓만 하다가 죄값으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순간에 예수를 영접하였으므로 비록 불 가운데 얻은 부끄러운 구원이지만 공심판을 면하여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갔다.

 

선한 행위나 어떤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 찬송가 545울어도 못하네”의 4절 가사에 “믿으면 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 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당했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라고 하였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고,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 복음성가 “돈으로도 못가요” 가사에도, “돈으로도 못가요, 힘으로도 못가요, 벼슬로도 못가요, 지식으로도 못가요, 어여뻐도 못가요, 맘착해도 못가요,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라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갈 수 있는 나라이다.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만이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으며 공심판을 면제받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워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구원받는 길은 예수밖에 없으며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이 세상에 있을 때 나사로처럼 빈궁한 삶을 살았는가 아니면 부자처럼 부귀영화를 누렸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중요한 것은 세상에 있을 때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빈궁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해도 나사로처럼 예수를 영접하였으면 세상의 삶을 마치는 날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다.

 

7:16-17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천국에는 주리거니 모마르거나 해나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는다. 보좌 가운데 계신 예수님께서 목자가 되어 늘 인도하고 보호하시고 세상에서 당했던 모든 고난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천국에는 죄악으로 인한 인간 세계의 모든 비참한 것이 사라지고 없으므로,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항상 즐겁고 화평과 기쁨이 충만한 세계이다. 거기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과 긍휼과 의와 거룩이 충만한 곳이므로 다시 저주가 없다.

 

22:5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하였다. 천국에는 성도들이 세세토록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권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사는 곳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에 있을 때 예수를 영접한 우리가 참으로 복 있는 자이다. 나사로는 천국에서 위로를 받았다.

 

 

二. 부자는 지옥에서 고난을 받았다.

성경은 지옥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는데, 신약성경에만 162건 이상 언급하고 있다. 부자는 세상에 있을 떄, 날마다 잔치하며 세상 연락을 즐기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모든 재물을 자기를 위해서만 사용하고 향락주의로 살면서, 재물로 인하여 마음이 부요하고 교만하여 전도자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무시하였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풍족한 삶을 살았던 부자는, 복음을 영접하지 않았으므로, 그 죄값으로 죽어 그의 영혼이 음부에서 고통하며 고민하게 되었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은 한 분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 행전 4:12에 천하인간에 예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절대로 없는 이유는, ①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이다(히 9:22). 모든 사람은 원죄와 본죄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아니고는 그 죄를 사함 받을 길이 없다. ②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요 3:5)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을 때 그 행위가 아무리 깨끗하고 선하고 의롭다 해도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지옥에 간다.

 

부자가 죽어서 간 음부는 지옥을 가리킨다. 지옥은

①마귀와 사자들이 사는 꺼지지 않는 불의 세계이다(: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②불택자들이 가는 불못이다(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③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 곳이다(살후 1: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④셋토록 고통을 당하는 곳이다(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지옥에 들어가면 구더기와 같이 천하고 미약한 생명이 되고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9: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생선이나 고기를 구을 때 잘 익도록 골고루 뒤집어 소금을 치듯, 지옥에서는 그 고통이 골고루 미치도록 불로 고통을 당하게 한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면 모든 생기가 다 죽고 힘이 없어지는 것처럼 지옥에 간 자들도 그 불로 소금치듯 함을 당하여, 힘을 쓰지 못하고 기운이 빠지고 거의 죽다시피 되나 죽지는 않고 끊임없이 고통만 당하게 된다.

 

번연은 “천국과 지옥의 환상”에서 지옥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그 종류가 만가지도 더 된다오. 땅에서는 어지간해서는 한번에 한가지 이상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일이 드물지요. 그런데 만약 전염병과 통풍과 열병을 한꺼번에 앓게 된다면 스스로 얼마나 비참하게 느끼겠소? 그런데 그런 병을 다 합쳐봐야 이곳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 비하면 벼룩에게 한번 물린 것에 지나지 않소.

 

이곳에서 우리는 너무나 역겨운 지옥의 다양한 면들을 부닥쳐야 하오. 이곳에서는 우리를 태우는 영원한 불이 있고, 숨이 콱 막히게 하는 펄펄 끓는 유황 못이 있고, 공포로 짓누르는 철저한 흑암이 있고, 우리를 영원히 갉아 먹는 양심의 구더기가 있소. 이것들 가운데 한가지라도 인류가 땅에서 느끼는 고통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클 것이오. 이곳에서 당하는 고통은 가짓수만 많을 뿐 아니라 총체적이기도 해서 몸의 각 부분에 온 영혼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고통을 가하는데, 그것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다오.

 

땅에서는 병에 걸리면 아픈 부위도 있고 아프지 않은 부위도 있지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오. 영혼과 육체의 각 부분이 한꺼번에 아픈 것이오. 눈은 너무나 어둡고 공포스러운 형상으로 다가오는 마귀의 모습에 고통을 당하고, 귀는 멸망당한 자들이 쉴 새 없이 내지르는 비명과 절규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코는 찌를 듯한 유황연기에 시달리고, 혀는 뜨거운 유황 용액에 끊임없이 데이고, 전신은 불못에서 종일 뒹굴러야 한다오. 영혼의 모든 역량과 기능도 고통을 당한다오. 상상력은 지금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느라, 기억력은 우리가 천국을 상실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놓친 것을 떠올리느라 고통을 당한다오.

 

지옥에 간 부자는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였다. 개역 성경에는 '고통' 대신에 '고민'한다고 했다. 지옥은 그런 고통을 영원토록 느끼는 곳이며, 다른 곳으로 피할 수도 고통을 경감받을 수도 스스로 죽을 수도 없는 곳이다. 뿐만아니라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서로 오고 갈 수도 없다. 부자가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을 바라보고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하고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간청하였지만, 아브라함은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하였다.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던 부자는 지옥에서 물 항방울이 없어 갈증을 해결할 수도 없고, 뜨거운 열기를 식힐 수도 없었다. 더욱이 천국에 간 자는 지옥으로 갈 수 없고, 지옥에 간 자도 천국에 갈 수 없다(26). 세상에 있을 때에 예수 믿고 내세를 준비하지 않으면 죽은 후에는 다시는 기회가 없다. 부자는 살았을 때에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으므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였다.

 

고통받던 부자가 깨닫고 아직 세상에 있는 자기 다섯 형제들이 절대로 지옥에 오지 않게 하기 위해 나사로를 세상에 보내 그들을 전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서 그들에게 갈 필요가 없고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고 믿으면 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부자는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서 다시 세상에 나가서 자기 형제들에게 지옥의 형편과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을 말해주면 형제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을 줄로 알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도자들이 전하여 주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혹 죽은 자가 살아나서 내세의 일을 말해 주어도 결코 믿지 않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다고 했다.

 

복음은 자체에 생명력이 있어서, 전하기만 하면 성령이 역사하여 택한 자는 반드시 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 행전 16장에서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하고 바울에게 물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음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예수를 영접하여 자신과 그 권속이 모두 구원을 받았다. 복음의 말씀은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하는 것보다 더 힘이 있고 중요하다. 13:48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하였는데, 복음을 전하면 믿기로 예정된 자는 다 믿게 된다. 하나님이 이미 택자와 불택자를 정해 놓으셨으나, 우리는 누가 택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때를 얻던지 못 얻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회개하여 깨달아 믿게 되고, 불택자는 영원히 깨닫지 못하여 믿지 않는다. 부자는 지옥에서 고민을 받았다.

 

 

 

 

 

결론

1. 나사로는 천국에서 위로를 받았다.

2. 부자는 지옥에서 고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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