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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08:48

복음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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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롬 1:17

제목 : 복음과 믿음

 

 

一. 복음을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다(고전 1:18). 불신자들은 복음을 아주 멸시하고 미련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논하고 그것을 통달했다 하여도, 그것으로는 자신이나 남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또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과 발명을 했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살려내지 못한다.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고 도리어 자랑하며 담대하게 전한 이유는,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복음의 내용을 바로 알면 복음을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복음을 자랑하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복음은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여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한다. 능력의 헬라어 원어 “뒤나미스”는 자연적인 힘이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힘을 가리킨다. 이 단어에서 다이나마이트(dynamite=화약)라는 말이 나왔다. 즉 복음의 능력은 폭탄과 같은 능력을 가진다. 초대교회 이단으로 정죄받은 펠라기우수는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유전되지 않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행할 수 있어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공로를 쌓아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이를 수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고, 세례, 성사, 선행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롬 3:2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 613가지(허용-248, 금지 365)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어기지 아니하고 모두 지켜 의인이 되어 구원받을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정죄를 받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 선행으로는 구원을 얻을려면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100% 지켜야만 한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그 죄값으로 하나님의 심판 받을 자인 줄 깨달아, 그리스도께로 와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길, 즉 하나님의 한 의를 만들어 놓으셨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한 의라고 인정할 수 있는 의를 말한다. 율법을 지켜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들에게 다만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이 율법이 요구하는 613가지와 아울러 신구약 성경의 모든 것을 다 지키셨으므로, 이제 누구든지 이 예수를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되어 자신의 허물이나 죄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성도가 의인이 되는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된 것이다(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것은 마치 거친 바다에 빠져서 구원의 희망이 없이 거의 죽어가던 사람이, 마침 지나가던 예수라고 하는 거대한 배에 올라타 구원을 받은 것과 같다. 배의 최종 목적지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가기를 원하는 낙원 즉, 천국이다. 이 배는 어떤 방법을 통하여 승선하게 되었는지를 불문하고, 승선하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 묻지도 않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며,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로 목적지까지 도착하도록 편리를 제공한다. 자신이 스스로 배에서 내리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는 더 이상 죽음의 공포에 떨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되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의인'은 행함이 아닌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 된 사람을 말한다. 구약시대의 성도나 신약시대의 성도 모두,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 창 15:5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다. 아브람이 의인이 된 것은, 행위로 된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된 것이다. 아브람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구속해 주실 것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기 때문에 그가 사죄와 칭의를 받고 영생을 얻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선지자 하박국, 사도 바울이 얻은 진리는, 구원은 선행이나 율법,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통해 얻은 것이다. 구약시대의 성도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의인이 되었고, 신약시대의 성도는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의인이 되었다. 우리 개신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받음을 믿는다.(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루터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구원의 도리를 깨달았다. 즉, 구원은 선을 행하거나 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곧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이다. 복음을 믿음으로만 의인이 된다.

 

 

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은, 성경에 네 곳에 기록되어 있다.

 

첫째, 하박국 2:4의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유다를 침공한 바벨론 사람들은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여 강포와 궤휼을 행하였지만, 핍박을 받는 유다 백성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즉,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힘이나 권세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해 나가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산다는 것이다.

 

둘째, 본문에서는 죄인이 죄사함을 받고 영혼이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 것 즉, 의인이 되는 것은 어떤 외부적인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되고, 이제 의인이 된 성도는 사나 죽으니 그 주님을 위하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셋째, 갈 3:11에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한 말씀은,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므로, 율법을 지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넷째, 히 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한 말씀은, 에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아 의인이 된 성도는, 이제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예수님을 창조주, 구세주, 심판주로 믿는 믿음으로 살며, 어떤 환난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이 믿음에서 돌이키거나 중단하지 않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대로 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히 11:38).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을 받는 도구이며 그릇이다. 또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도구가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위대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된다(고후 6:9-10). 기술자나, 학자가 자기 기술이나 학문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도 그 믿음으로 살지 못할 리가 없다. 믿는 자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1)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생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믿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예외가 없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종결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요행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천지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소유주이신 하나님께서 예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방편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함께 계심을 믿고 두려워 말라 말씀하셨으나, 부정적인 믿음을 가진 열명의 정탐꾼의 말에 동조하여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멸망하였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어버리고 자녀들이 한날한시에 죽고, 자신의 몸은 병들어 고통 가운데, 아내까지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핍박하며, 친구들까지도 지은 죄로 인해 고난당하는 것이라고 비방했지만,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을 믿고 끝까지 자기 순전을 지킴으로, 갑절의 복을 받았다. 의인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하심을 믿는 자이다.

2)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당장에 망할 것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라도, 신령한 영의 눈으로 보면 성도에게 오히려 복과 은혜를 더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또 다른 기회가 된다. 이것이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는 원리이다.

 

어떤 랍비가 나귀 한 마리와 개 한 마리 그리고 작은 램프 하나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날이 저물어 마을 어귀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랍비가 책을 읽는데 갑자기 바이 불어와 불이 꺼지고 말았다. 랍비는 할 수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사나운 들짐승이 내려와 매여 놓은 개와 나귀를 물어 죽였다. 아침에 일어난 랍비는 나귀와 개가 죽은 것을 보고 허탈한 마음으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런데 마을은 지잔 밤에 쳐들어온 도둑떼로 인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다 빼앗아 가버렸다. 랍비는 만약 어제 밤에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면,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도적 떼에게 발각되어 죽었을지도 모르고, 만약에 들짐승이 내려와 개와 나귀를 죽이지 않았다면 개와 나귀가 짖어대서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 것을 감사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손해되는 것이나 유익 되지 않는 것, 복되지 않는 것을 주시지 않다. 믿음 지키는 성도에게는 전부가 다 유익 될 것이요, 복이 될 것이며 은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제일 좋은 것으로 성도에게 주신다. 한 사건만 볼 때는 잘못된 것 같고, 화를 만난 것 같고, 저주받은 것 같아 낙망할 수밖에 없으나 좀 더 지나서 다른 것들과 합해 놓고 보면 유익한 것이요 영적인 면과 내세까지 합하여 보면 전부가 다 큰 유익이다. 의인은 합력하여 선울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3)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성도는 죄악 세상에서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사죄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이상 문에 세상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성도를 지배하는 법과 나라가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여 살 권리가 없고 오로지 그리스도만 위하여 살아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 하였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즐기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의 이유이고 목적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위해 살 때에야 비로소 성도는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 성도는 무엇을 하든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구속하시고 오늘까지 육신의 삶을 보호하여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예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4)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히 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신앙은 계속 전진하는 것이지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다가 뒤로 물러가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든 증거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깨달았으면 모든 환난과 궁핍과 멸시가 와도 끝까지 참고 견디며 달음박질해야 한다. 눅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논이나 밭을 바로 갈이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은 쟁기를 잡고 농지를 기경하는 것과 같으므로, 오직 그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말씀은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 따라가는 일 잠깐 중단하고 먼저 가서 가족을 작별한 뒤에 예수를 따라가겠다 하였다. 이 사람은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 귀중히 여기고, 육신의 것을 신령한 것보다 앞세우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마치 농부가 쟁기를 잡고 밭을 갈다가 뒤 돌아보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히 11:36-38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존 폭스의 <기독교 순교사화>는 지난 450여 년간 기독교 신앙을 지키다가 핍박을받고 죽임당한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초대 순교자인 스데반에서부터 16세기까지의 순교사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세상에 살았지만 세상을 넘어선 사람들, 부귀영화보다 그리스도를 얻고자 한 사람들, 그래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이다.

 

잠 1:32-33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신앙의 퇴보하는 자기를 죽인다. 작은 것에 눈이 어두워져 큰 것을 잃는 것을 가리켜 ‘소탐대실’이라 하는데, 성도가 육신의 적은 유익을 얻기 위해 당장의 손해를 피하여 뒤로 물러서 주님을 배반하는 것은 나름대로 지혜롭고 현명한 것으로 보여 지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오히려 신령한 것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우를 범하게 된다. 신앙의 달음박질을 멈추고 돌이키면, 이내 마귀의 화살에 맞게 되고, 자기를 죽이고 멸망시키게 된다. 성도에게 있어서 과거는, 지난 날의 일부일 뿐이므로, 과거에 일에 얽매이거나 구속받지 말고 오늘 주어진 일에 전심전력하며 예수를 바라보고 전진해야 한다.

 

 

 

 

결론

1. 복음으로 의인이 된다.

2.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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