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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12:06

서로 다른 두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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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서로 다른 두 가정

성경 : 삼상 2:18-26

 

一. 화를 받은 엘리의 가정 (12-17, 22-36)

엘리는 사사 시대의 혼란기에 제사장으로, 사사로서 40년간 이스라엘을 치리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눈이 어두워져 갔고, 그보다 더욱 문제였던 것은, 육신의 눈보다 영적 눈까지도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엘리 자신은 공의롭게 살려고 노력했는지 모르지만, 인정에 치우쳐 하나님의 뜻대로 자녀를 바로 양육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화를 당하여 가문 전체가 몰락하고 말았다.

 

현대인의 성경은 12-13절을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배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두렵게 여기지 않았고 제사법에 관한 규정도 무시하였다.”라고 하였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량자로 제사장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인정에 이끌려 제사장을 삼았다.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는 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업신여기고 대적하는 것을 말한다. 불량자의 히브리어 '베네 벧리야야알(*)은 '벧리알의 아들들' (sons of Belial, KJV)이란 뜻으로, '사악한 자들, '나쁜 녀석들', '쓸모없는 자들'이란 뜻이다.

 

엘리의 두아들 홉니와 비스하스는 사람들 보기에 사악한 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도 전적으로 백해 무익(百害無益)한 존재였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자기 아들이 제사장의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량한' 자신들의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겨(2:29). 제사장의 직분을 맡겼다. 그러나 결국 이 일은 그들에게 올무가 되어 엘리의 집안이 멸망당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어느 때나 하나님의 일을 인정이 이끌려 또는 당리당략으로 하면 오히려 화가 되는 법이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일과 달리 욕심으로 또는 열심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빚진 자의 심정으로 은혜에 보답하려는 선한 청지기같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느 7:2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다 건축한 후에, 자기 동생 하나니, 또 영문 관원 하나냐로 성을 다스리게 한 것은 그가 자기 동생이나 친하기 때문이 어니라 그들이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기 떄문이다. 인척이건 아니건 하나님을 경외하며자기 직분에 충성하는 믿음 좋은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을 협력자로 세워 주셨고, 베드로와 그 동생 안드레, 요한과 그 형 야고보를 세워서 일하신 적도 있다. 모든 주의 일은 하나님께 교회에 유익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제사장의 임무는,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노릇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이같은 제사장의 사명과 임무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큰 죄를 범하였다. 제사보다 먹는 것에 더 마음을 두어, 백성들이 제사하려고 삶는 고기를 사환을 보내어 세살 갈고리를 솥이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걸려 나오는 것은 자기 것으로 취하였다.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은 제사한 후에 제물을 자기 몫으로 취해야 하고, 나머지 부분은 제주(祭主)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엘리의 두 아들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을 무조건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한 것은, 율법의 절차와 규정을 무시하는 극악한 범죄 행위였다. 더욱이 그들은 제사장 신분으로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죄를 범하였다.

 

당시 엘리의 나이는 98세였는데, 자기 아들들의 이같은 범죄에 대하여 듣고 “너회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하고 타일렀다. 엘리가 아들의 범죄에 대해 책망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좀 더 강경하게 경계했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제사장직을 파면해서라도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사람 사이의 다툼이나 범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중재하여 판결해 주시지만, 하나님께 대한 범죄는 누구도 중재해 줄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뿐이다. 엘리의 책망을 받은 아들들은 그 말을 대수롭게 여기고 회개하지도 않았다. 엘리도 더 이상 책망하지 않았다. 성경은 그들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라 하였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의 책망을 끝까지 받지 않으면 그것은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이다.

 

30절에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였다. 엘리의 집이 망하게 된 것은,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고, 엘리는 아들들의 죄를 엄히 책망하여 바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엘리 집안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을 것이고,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 말씀대로 엘리의 두 아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고, 엘리는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며느리는 아들을 낳다가 죽어 엘리 집안이 멸망을 당하였다.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죽어갈 때에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는데, 이는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엘리 가정은 창성하게 시작토록 해주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존중하기 못하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기 때문에 결국은 심히 미약하게 되고 말았다. 엘리의 가정은 화를 당하였다.

 

 

二. 복을 받은 한나의 가정 (18-21)

18절에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하였다. 세마포는 조끼 비슷한 옷으로 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이는 사무엘이 본격적으로 제사 직무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나는 매년제를 드리기 위하여 남편과 함께 실로에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사무엘에게 주었다. 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마음, 즉 하나님을 존중하는지의 여부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예배를 드리는 태도이다. 우리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길 수 있으며, 반대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멸시할 수도 있다.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러스킨은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은,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말씀보다 하나님 섬기는 일을 두 번째로 여기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보다 다른 일을 우선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1: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갔다, 2:19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 이 두 부부가 매년 온 집으로 더불어 실로에 올라가 제사를 드린 것을 보면, 예배드리는 일에 열심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가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릴 때에 한나도 늘 함께 하였다(1:3, 7). 브닌나가 자신을 격동시켜 번민케 하였을 때에도 한나는 자기 자신의 일신상의 일로 인해 예배드리는 일에 빠지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예배보다 급한 일이 없고 예배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 신실한 신앙과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생활은 자녀에게 유전되고 계승된다. 사무엘이 어머니 한나의 신앙과 제사 정신은 본받음으로 복을 받았다.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었다(3:1).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섬겼다는 말은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고 제사를 귀하게 드렸다는 말이다.

 

사무엘은 언제나 성전 여호와의 궤 옆에서 잠을 잤다(3:3). 사무엘은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무엘을 존중히 여기셨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35)고 하셨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3:19) 하시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제사를 귀히 여긴 사무엘을 엘리의 수종자의 자리에서 제사장, 사사, 선지자를 삼아 그 집을 견고케 하는 복을 주셨다. 슈바이저(Schweitzer) 박사는, "부모들이 자녀가 어려서부터 어른 예배에 참여케 하여 부모가 경건과 엄숙한 모습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되어가기를 배우게 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드리는 예배는 개인과 가정의 축복의 통로가 된다.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부모가 믿음의 본을 보여 키운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았다. 우리는 누구나 내 자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더욱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 분에 넘치는 교육을 시키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기도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가정을 이루려면 자녀들에게 바른 신앙교육을 시켜야 한다. 성경은 무소 대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이 임한다고 교훈하고 있다(시 115:13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바른 신앙교육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같은 바른 신앙의 계대가 이어질 때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다. 사무엘은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양육을 받고 모든 것을 배웠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은총을 주시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을 받아 구약시대에 가장 뛰어난 선지자가 되었다. 부모의 말에 잘 순종하고 하나님과 주의 종을 마음을 다하여 섬기고 백성들을 귀히 여기고 사랑으로 다스렸을 뿐 아니라, 남의 것에 욕심내지 않고, 남을 속이거나 압제하지도 않고, 부당한 뇌물을 받지도 않았다.

 

20절에 엘리가 엘가나와 한나의 믿음을 보고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축복하여 주었다. 후에 그들이 집으로 돌아갔더니,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여 그로 잉태케 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다. 모처럼 얻은 귀한 독자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부부에게, 하나님은 다시 세 아들과 두 딸을 주셨다. 한나가 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섯 배로 풍성한 복을 그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을 바치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빌려 드린 것이 되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갚아 주신다.

 

세상의 방법으로 자녀를 양육하면 잘 될 것 같아도 세상 지식을 따라갈 뿐이고, 믿음으로 키운 자녀는 하나님과 그 부모를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 모든 사람에 은총을 받는 사람이 된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어 나라를 다스렸음으로, 그 부모에게도 같은 영광이 돌아갔고, 그 가정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귀한 가정이 되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방식대로 자녀를 키울 때에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자녀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개의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사무엘을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인격을 가진 자녀로 성장시킴으로, 이제 자녀가 하나님과 사람들의 은총을 받고 영광을 누릴 때에, 그 가정도 동일한 영광과 기쁨을 누리는 복된 가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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