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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눅 5:1-7

제목 :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一. 사람의 수고는 헛되다

게네사렛 호수 즉,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많은 사람이 모여와 말씀을 들었다. 주님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기 전 시몬과 요한은 어부로서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갈릴리 바다는 여러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웠는데, 구약 시대에는 '긴네렛 바다'(민 34:11) 신약 시대에는 '긴네렛 호수', '디베랴 바다'(요 21:1)라 하였다. 이 호수는 남북의 길이가 20Km, 동서의 폭이 12Km로, 면적은 144Km에 달한다. 이 호수는 요단강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맑은 물과 갈릴리 바다 주변의 따뜻한 온천수로 이루어져 엄청난 양의 물고기들이 번식하고 있었다. 이 바다는 예수님의 사역 중심지였으며,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곳이며, 오병이어(五餠二漁)의 이적을 행하신 곳도 이곳 해변가에서였다.

 

2절에 호숫가에서 두 배의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호숫가에 배를 대고 그물을 씻는 것을 보아, 이 두 척의 배는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방금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5절에 시몬이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 두 배는 지난 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소득 없이 돌아왔다. 요 21:3에도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라 하였다. 본문과 요 21장에서 물고기 잡는데 능숙한 어부들이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현실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 형제는, 어려서부터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온 전문적인 어부였다. 그들은 고기 잡는 기술이 능숙하고, 사업장인 갈릴리 바다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난 밤에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물고기 모여 있을 만한 곳에 그물을 내려 보았을 것이다. 그물이나 고기 잡을 사람이나 물고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더더욱 어로 경험이나 지식이 없거나 날씨가 불순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경험과 능력,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여 밤새도록 노력했으나, 물고기를 잡기는커녕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시 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사람이 집을 세우거나 이미 세운 성을 지키는 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결코 성취하지 못한다. 도둑이 들려면 짖던 개도 멈춘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노력에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수고해도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는 헛수고가 된다. 만사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되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눅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자기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둔 후, 자기 영혼에게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였디만,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가심에 그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인간은 참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아무리 용맹한 백수의 왕 사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손에 붙여주시기 아니하면 궁핍을 당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인간은 자기 힘이나 수단, 방법으로 결코 펴지 못한다. 욘 1: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선원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고 어떻게든 배를 돌려 육지에 대어 보려고 했으나, 그들이 힘쓰면 힘쓸수록 바다는 더욱 흉용해 졌고 그들의 수고는 헛것이 되고 말았다. 1912년에 진수한 영국의 타이타닉호는 46,328톤으로 그 시대 최신, 최고의 장비를 갖춘 세계 최대의 호화여객선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님도 이 배를 침몰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치켜세우며, 인간 기술의 승리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타이타닉호는 2208명의 여객과 승무원을 싣고 뉴욕으로의 첫 출항에서 북대서양의 거대한 빙산과 충돌하여 불과 3시간 만에 침몰하여 승객 1513명이 죽고, 771명만 구조되었다

 

전 9: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하나님은 피조물의 모든 것을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람들의 계획과 뜻대로 되는 것아 아니라,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 세상 만사가 사람의 수단과 방법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따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되게 해주셔야 경주에서 이길 수 있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식물이나 재물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총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솔로몬이 왕위에 있을 때, 예루살렘에서 은이 돌같이 흔하고 귀한 백향목이 뽕나무처럼 많게 하였다 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에시온게벨에서 지은 솔로몬의 배들이 삼 년에 한 번씩 다시스로부터 금과 은,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왔기 때문이다(대하 9:21, 27). 그런데 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왕과 아하시야 왕이 합작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지어 다시스로 보내 금을 실어 오려 했으나, 하나님이 그 배를 파상하도록 하여 다시스에 가지 못하였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배를 만들어 같은 곳에 가서 같은 목적을 이루고자 하였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일은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 사울은 자기의 길을 자기가 계획하고, 누구의 권면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욕심대로 가다가 결국 멸망당하고 말았다.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안개와 같이 잠시 있다 사라지는 인생이 장래 일이 어떻게 될 줄 알고 계획을 세우고 이것저것을 하려는 것은 허탄하고 악한 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내일 일을 자랑 할 수 없다. 내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으며,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의 수고는 헛되다

二. 말씀을 의지하면 형통하다.

3절에 예수께서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셨다고 하였다. 요 1:1-3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였다.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인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생명과 영적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영생을 얻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 은혜의 말씀, 진리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다. 따라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고 성취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의 생명이 떡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말씀대로 영의 사람으로 살면, 하나님의 초자연인 역사로 영혼과 육신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 마 6:33-34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육신에 필요한 것들인데, 하나님의 통치를 맏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육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말씀을 순종하는 삶에는 장애물이란 없다.

 

마 14:28-29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부르짖었다. 이에 예수께서 “오라”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풍랑치는 물 위를 걸어갔다.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바라보고 나갈 때, 주님의 크신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물위를 걸을 수 있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험악한 세상을 발로 밟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말씀의 순종이 곧 믿음이고, 순종은 하나님을 일하게 한다.

 

4절에 예수께서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다. 시몬이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주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신 말씀은, 어로 원칙에 맞지 않는 말씀이다. 시몬이 그물을 씼던 아침에는 물고기들이 물가 얕은 곳으로 나오는 시간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깊은 곳에는 고기들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말씀은, 물고기를 잡아 본 적이 없는 무경험자의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내렸다.

 

시몬은 예수님이 행하신 여러 가지 일들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찾아 오셔서 말씀을 전하고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의 눈에도 30대의 연소한 나이에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을 선뜻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배 안에서 그들에게 선포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그의 심령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예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을 때에,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내렸다. 현대인의 성경은 5절을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써 봤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한 번 더 그물을 쳐 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무조건 순종하는 이것이 참된 믿음이다.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에 맞아야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며, 또 하나님의 말씀에 표준하지 아니하고 무조건 믿사오니 하는 것은 맹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하나님이 역사해 주실 줄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한 것이다. 인간 중심의 신학으로, 이성과 과학을 진리의 척도로 간주하여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을 거부하거나 왜곡하는 이단적 사상이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만 인정하고 믿으려 한다. 우리가 믿는 개혁주의 신앙은 하나님이 천지만물과 우리인간의 조물주임을 믿으며,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피조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의심 없이 믿는 것이다.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으로 받아드리고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면 말씀에 약속한 복을 반드시 받는다. 그러므로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이며, 믿음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사 55:8-9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였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길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이 행하시는 어떤 것도 감히 추측도 판단할 수도 없으며, 다만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인도하는 대로 행할 것뿐이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물고기가 심히 많이 잡혔다. 자기들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바로 그곳에서, 이번에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예수께서 물고기를 몰아다 베드로의 그물에 넣어주셨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에 천지 만물이 다 순종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안 되는 일도,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이루어진다. 요 21: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을 때, 그들이 심히 많은 고기를 잡았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 메추라기를 몰아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하나님은, 바다의 물고기도 몰아다 주실 수 있다.

 

만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또 하나님이 허락해야 만사가 이루어진다. 사람의 생각에는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을 순종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주님의 명령이 있을 때, 우리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나머지 일은 주님이 대신 해주신다. 독일의 보수 정통 주석가 Keil & Delitzsch의 베르렌베르겔 성경(Berlenberger Bible)은 "제사로는 인간이 단지 비이성적인 짐승의 고기만을 드릴 뿐이지만, 순종으로는 인간이 자신의 뜻을 바친다. 그러므로 순종이야말로 이성적이고 영적인 제사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할 때,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순종하여 그를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으므로,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자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으며,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수”(3:13)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제사장들이 주저 없이 요단 물을 밟았을 때,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요단의 물이 그쳐서 일어나 쌓여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같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다. 주의 말씀은 만능이시다. 주의 말씀은 죽은 생명을 살려 내기도 하고, 사망의 강물을 소생시켜 생명강이 되게도 하시며, 마른땅에 생물이 살도록 하시며,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게 하시는 능력이 있다. 엘리사를 통하여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아만이 순종하여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었을 때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받아들이고 다음에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고 즉,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행하여야 즉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할 때에 인간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게 해 주시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기만 하면,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 하셨고(민 17:8), 홍해를 육지 같이 되게 하시며, 하늘에서 양식을 눈 같이 내리시며,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성도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든 행위의 표준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기의 생각과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사람의 모든 수도는 헛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형통하다.

 

 

 

 

 

결론

1. 사람의 수고는 헛되다.

2. 말씀을 의지하면 형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