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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이전 게시판



본문 : 삼상 18:5-30 #211,304

제목 : 형통과 두려움

 

. 다윗의 형통 (5, 12-15)

5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14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믿음으로 지혜롭게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행하므로 모든 일이 형통하였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되었고 사울은 다윗에게 귀한 직분인 군대의 장관을 맡겼다. 이에 온 백성과 신하들이 그것을 합당하게 생각하였다. 사울이 다윗에게 요직을 맡긴 것은 잘한 일로 끝까지 다윗을 잘 사용했다면, 이스라엘을 위하여서나 사울 자신을 위하여 크게 유익했을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함으로 만사가 형통하는 결과를 얻었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정치적 경쟁심. 질투 등을 초월하여 칭송을 받았다. 하나님을 경외한 다윗의 인격과 처신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사울은 틀림없이 다윗을 변방의 일선 지휘관으로 보내버림으로써, 잦은 전투로 인해 목숨이 위태하게 되기를 바랐으며, 아울러 다윗의 정치적 역량이 중앙의 상류 계층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하려하였다

 

18: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8:15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버림받고 거절당한바 된(13:13, 14;15:26) 사울은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만사형통하는 다윗을 볼 때마다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주궈을 온전히 믿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세상은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이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이 나오면 그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였고 그로 인하여 다윗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가기만 하였다. '귀중히 되니라'(*, 야카르)란 말은 '영광을 받다', '존경을 받다'란 뜻이다. 사울의 계략으로 위험한 전장에서 죽임을 당하여야 할 다윗이 오히려 그 전쟁을 통해 혁혁한 무훈을 세움으로써, 용장(勇將)과 지장(智將)으로서 다윗의 명성이 이스라엘 뿐 아니라 주변의 적대국들에게조차 알려지고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어떠한 역경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전화위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 함 (6-11)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 각 성에서 여인들이 나와 환영하며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라고 하였다. 사울이 자기에게는 천천을,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는 것을 보고, 온 백성이 자기보다 다윗을 더 좋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나라가 다윗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하여 시험에 들게 되었다. 여인들이 다윗을 볼 때 다윗이 훌륭하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도 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 사울이 왕위에 있으므로 왕을 존경하고 나서 다윗을 존경해야 한다. 여자들이 경솔히 행동하여 왕과 다윗에게 큰 손해를 주었다. 고전 10:23-24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옳은 일이라고 하여 그것이 전부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옳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덕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다. 옳은 일이라도 남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진리 문제는 결사적으로 준행하여야 한다.

 

이에 사울이 다윗이 이제 더 얻을 것은 이스라엘 나라뿐일 것라고 생각하고, 다윗을 주목하였다. 사울이 왕권 수호 차원에서 의심에 찬 눈으로 다윗을 관찰하며 정치. 군사적으로 경계하고 배타하였다. 전쟁에서 돌아온 다음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역사하였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뜻으로만 생각하여 자기의 지위를 지키는데만 급급하였다. 마귀가 사울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고 번민하게 하여 야료소리지르고 떠들도록 만들었다. 이에 다윗이 평소처럼 수금을 타는 중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두 번이나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모두 피하였다. 다윗을 두려워하게 된 사울은 더욱 미운 생각이 들고 마침내는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노릴 것이라 생각하고는 다윗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창을 던져 죽이려 하였다.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성도는 세상에서 택함 받아 거기에서 나와 예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성도를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한다.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사울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더 인정을 받게 되자, 사울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사울이 자기의 왕위를 빼앗길까 보아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다. 4:17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사울이 다윗을 자기보다 잘했다고 칭찬하더라도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말고 다윗을 잘 이용했더라면 이스라엘 나라가 잘될 것이고 사울에게도 아주 유익하였을 것인데 어리석게도 다윗을 이용하지 못하고 죽이려고 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

 

사울이 왕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윗이 아무리 잘해도 자기에게 일생동안 수종만 들었을 것이고, 또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가 다윗을 죽이려고 하여도 죽이지 못한다. 사울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하늘나라(이스라엘)가 잘되는데 목표를 두지 않고 어떻게 해야 자기가 왕 노릇을 오래 할 것인가에 목표를 두었다. 목표 설정을 잘못하였으므로 일이 비뚤어지게 되고 말았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고, 보호하셔서 죽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막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므로, 사울이 두려워하여 다윗을 천부장으로 삼아서 멀리 보냈으나 오히려 다윗은 백성 앞에 출입하며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였으므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든 족속이 다윗을 사랑하였다. 이것은 모두 추후에 다윗이 왕이 될 자격을 갖추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이시다.

 

 

. 사울이 미갈을 이용해 다윗을 죽이려 함 (17-25)

사울의 작은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이용하여 사울은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주는 것을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과 싸우게 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다원을 죽게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사울은 신하를 시켜 왕이 자기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니 왕의 사위가 되라고 다윗에게 권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자기는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이므로 왕의 사위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하였다.

 

사울은 혼인의 예물로 아무 폐백도 원치 않고 다만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을 원한다하였다. 이것을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올무였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뜻으로,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다른 세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제어함을 이르는 말이다. 사울의 요구대로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양피를 벨 경우, 그것은 곧 블레셋 족속의 민족적 분노를 사게 될 것이고, 다윗은 군사적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양피를 베는 행위는 대외적인 명분이 서는 공식 전쟁이 아니라 사적인 목적을 위한 악행이므로, 이는 생명을 건 모험을 감행해야만 한다. 사울의 이 제안으로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을 빌려 죽이려 하였다. 여기에서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집요함과 아울러 자식까지도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이용하는 파렴치함을 볼 수 있다. 사울은 딸의 앞길도 생각지 않고 자기 목적만 달성하려고 하였다. 권력에 욕심이 끌리면 자기 자녀도 돌보지 않는 법이다. 사울은 자신의 왕권을 지키고, 아들에게 그것을 넘겨주겠다는 인간적인 의지가 너무 강하여 그 목적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겨, 종자와 함께 나아가서 블레셋사람의 양피 이백을 베어 왕에게 주었다. 이에 사울이 어쩔 수없이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과 싸우다 죽을 줄로 알았는데, 오히려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이나 죽이고 약속한 양피를 가져왔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을 사울이 보고 알았으며, 사울의 딸 미갈도 다윗을 사랑하므로 사울의 인간적인 모든 계획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울이 더욱 다윗을 두려워하였고,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었다. 아무리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고, 자기만 하나님 앞에 범죄 하여 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는 자는 다 이렇게 어리석은 가운데 빠지게 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협력하고 나아가는 자가 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나라만 잘되게 만들어야겠다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고, 자기중심에 빠져서 자기가 잘 되야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울과 같이 비참한 가운데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