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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이전 게시판

본문 : 삼상 17:1-30 #

제목 : 다윗과 엘리압

 

. 하나님을 떠나면 고난이 임한다 (1-16)

이새의 여덟 아들 중 세 아들 장자 엘리압, 아비나답이, 삼마는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고,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사십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싸움을 걸어 왔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 한 뼘(3m가량), 머리에는 놋 투구를 쓰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다. 어린갑(魚鱗甲)은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만든 갑옷으로, 그 무게가 오천 세겔(57kg)이나 되었다. 다리에는 놋경갑(脛甲)을 쳤고, 어깨에는 놋단창을 메었는데, 베틀 채 같은 창날은 철 육백 세겔(6.8kg)이나 되었다. 골리앗이 오만불손하게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너희가 감히 블레셋 군을 대항하려고 항오를 벌였느냐 너희는 대표 한 사람을 택하여 나에게 내려 보내라 나하고 싸워서 그가 능히 나를 쳐서 죽이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고 내가 너의 대표로 나온 자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한다"고 이스라엘을 모욕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벌벌 떨며 두려워하기만 할 뿐 속수무책이었다.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과 전쟁에서 패하여 20년 동안 고난을 당하였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7:3-4) 하였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게 되었다. 사무엘이 번제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침공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여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에벤에셀이라 하였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란 뜻으로,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게 해 주셨고, 잃어버렸던 땅을 다시 찾게 해 주셨다.

 

사무엘이 사는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며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에는 원수(블레셋)가 쳐들어오지 못하였다. 아 사실을 통하여 볼때에, 성도가 도움의 돌이 되시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잃었던 것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대적들은 막아주시고,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해주신다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8장에 이르러 하나님을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인간 왕을 달라고 간청하였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고 인간 왕의 통치를 받기를 소망하던 이스라엘은 블레셋 군대가 골리앗을 앞세우고 쳐들어와 하나님을 욕하며,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는 협박을 듣고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다만 놀라고 크게 두려워하였다. 23-24절에는 골리앗이 자기 진에서 나와 이전과 같은 말을 할때에 온 이스라엘이 심히 두려워하여 도망을 쳤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 역사로 대적을 물리쳐 주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왕은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라“(8:20) 했던 그들의 생각과 달리 골리앗 앞에서 아무런 역사도 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택하였던 결과는, 대적에게 침공을 당하고, 장수 골리앗에게 모욕을 당해도 항변하지도 못하고, 대적으로 인해 두려워 떨며 도망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가나안에 남겨 놓으신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심이며, 남겨두신 그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음이다(3:1-4). 어느 때나 하나님을 떠나면 가까이하는 자가 복이 있다(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마치 젖먹는 아이가 그 부모의 품에서 양육 받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나는 자는 형통치 못하다(17: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한다 (17-30)

이새가 다윗에게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스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명하였다(17-18). 그때 이스라엘은 엘라골짜기에서 블레셋과 대진하고 있었고, 다윗은 아비의 명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라엘 진영에 이르렀다. 형들을 만나 문안할 때에 골리앗이 또 다시나와 이스라엘을 모욕하였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다. 다윗이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물었다. 백성들이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왕이 재물로 부하게 하고,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할 것이라 한 사울의 말을 전하였다. 현대어성경은 누구든지 그 거인을 쳐죽이기만 하면, 임금님께서 그에게 많은 재물로 상을 내리시고, 임금님의 딸까지 아내로 주시고, 그의 집안 식구들에게는 이스라엘의 모든 세금과 병역 의무를 면제해 주신다고 하네.'“라고 번역하였다.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한다"는 것은 군대에 나가지 않고, 세금을 내지 않으며, 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 자유자가 되는 큰 혜택을 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윗이 어떤 대우를 하겠느냐 물은 것은 그의 믿음에서 나온 말로서, 이는 이스라엘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에게 치욕을 당하는 것을 원통히 여기고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말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당하는 것을 가만히 볼 수 없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시고 이루어 나가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여 손해주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징벌하신다. 다윗은 다른 것에 손해가 되는 것은 묵인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손상되고 치욕당하고 방해받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모든 성도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시므로, 이스라엘의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친히 그 군대를 보호하시고,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어 나가실 것을 굳게 믿었다.

 

장형 엘리압이 이같은 다윗의 언행심사를 보고,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하고 노를 발하였다(28). 현대어성경은 ”`도대체 네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이제 몇 마리도 안 남은 우리 양 떼는 그냥 들에 놓아 죽일 셈이냐? 누가 지금 그 양 떼를 지키고 있느냐? 나는 네가 얼마나 교만하고 망상에 가득 찬 녀석인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만 지금이 어느때라고 전쟁 구경이나 하고 있느냐? 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녀석아!' 라고 보다 자세하게 번역하였다. 엘리압 자신은 전쟁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골리앗이 두려워, 다른 이스라엘 군이들처럼 구경만 하고 있었다. 골리앗이 아무리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어도 그를 향해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자기보다 나이 어리고 전쟁의 경험이 없는 동생이 신앙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그를 책망하였다.

 

이스라엘을 모욕한 골리앗을 책망하고 노를 발하여야 할 것인데, 믿음으로 행하는 다윗에게 노를 발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신앙적으로 말했지만, 엘리압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하고 다윗을 마땅치 않게 보고 책망하였다. 엘리압이 나는 네 교만과...완악함을 아노니라고 하였다. '교만'하다 한 것은 다윗이 목동인 자기 주제를 모르고 왕의 상급만 탐하는 것을(25), '완악'하다는 것은 피 흘리는 전쟁을 보고 즐기려는 사악한 심성을 지적한 말이다. 엘리압은 다윗이 교만과 완악함으로 그런 말을 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엘리압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판단하고 행하는 법이다. 육신적으로는 엘리압이 다윗보다 위였지만, 영적인 면에서 다윗에 미치지 못하였다. 믿음의 분량대로 헹하는 법이다. 21:9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하였다. 이스마엘은 육에 속한 자요, 이삭은 영에 속한 자이다.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이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16장에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말씀하셨다.(6:6-7). 엘리압은 자신의 수고는 크게 보고 남의 수고와 노력은 작게 보고, 자신의 외부적인 용모나 구변을 자랑하는 교만함이 있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압의 이런 면을 이미 알고 계셨으므로, 그를 버리신 것이다.

 

형이 다윗의 마음을 몰라주고 아버지의 심부름을 구실로 전쟁 구경을 하러 왔다고 할때에 다윗은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라고 한 마디만 대답하고 대항하지 않았다. 마땅히 싸워야 할 원수와는 싸우지 않고 자기편끼리 불화하고 싸우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다윗은 시 109:4에서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하였다. 다윗은 자기가 사랑으로 대해 주었던 자들이 대적할 때에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할 것뿐이라 하였다. 이것이 시험을 이기는 비결이다. 골리앗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는데 다윗은 이 골리앗과 싸워 물리쳐야 할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바로 감당하려면 형과 싸워서는 안 될 줄로 알았다. 형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멸시해도 골리앗만 물리치면 형이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원수의 손에서 구원받을 것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