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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삼하 19:31-40

제목 :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一. 하나님의 편에 섰다

찬송가 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1절 가사에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건가”라 하였는데,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의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육신의 욕심을 따라 불의의 길을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본문의 바르실래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의의 길로 걸어갔다.

 

삼하 15:13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저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하노라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다윗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아무 준비도 없이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와 피난길에 나섰다. 삼하 15:18 모든 신복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하니라” 하였고, 15:23온 땅 사람이 대성통곡하며 모든 인민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마하나임으로 도주할 때 그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다윗과 그를 따르는 육백 명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따라온 신하들과 함께 피난한 백성들의 숫자는 적어도 일천 명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는 당시 다윗을 따랐던 사람들의 숫자를 4,000명이라 하였다.

 

삼하 17:27-29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뻐더와 양과 치스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압살롬을 피해 다윗 일행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바르실래가 다윗 일행을 영접하였다. 바르실래는 길르앗 성의 거부 중 한 사람으로 당시 나이 80세였다. 동행한 많은 이들의 시장과 목마름을 해갈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분량의 생필품이 필요했다. 바르실래는 왕과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를 것을 염려하여, 마하나님으로 오는 다윗 일행에게 침상과 대야 질그릇 밀 보리 밀가루 볶은 곡식 콩 팥 녹두 꿀 버터 양 치즈 등을 가지고 와서 다윗 왕과 백성들을 공궤했다.

 

황급히 피신 길에 나서느라 제대로 행장(行裝)도 갖추지도 못했던 다윗 일행에게 바르실래의 이 풍성한 구호 물품은 어떤 무엇보다도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바르실래가 부자니까 당연히 이렇게 하기 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압살롬에게 쫓겨 패주하는 다윗 왕을 돕는 일은 부자였기에 더욱 힘든 일이었다. 왜냐하면, 만약 압살롬의 반역이 성공하여 그가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다면, 오늘 다윗 왕을 도운 일로 인하여 바르실래는 자신의 생명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르실래 입장에서는 반역에 쫓겨 도주하는 다윗 왕을 계속하여 섬기다가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냐, 아니면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새로 왕위에 오른 압살롬을 따라 영화를 누릴 것이냐, 중차대한 기로에 섰지만 그는 옳은 길을 택했다. 다윗이 아들의 반역으로 인해 쫓겨 다니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이고, 압살롬이 반역으로 나라를 차지한다고 해도 그는 반역자일 뿐이라 믿었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부워 세운 왕이므로, 다윗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이 된다.

 

바르실래는 그동안 다윗이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고 믿음으로 다윗을 공궤하였다. '공궤하다'의 히브리어 '쿨'(*)은 `떠받치다', `유지하다','제공하다' 등의 뜻으로, 특별히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해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성경은 “저희 생각에 (왕과)백성들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삼하17:29)고 기록했다. 바르실래는 다윗 일행을 대접한 목적은 단지 그들을 긍휼히 여겼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딤전 6:17-19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가 구원과 영생을 얻지만, 이 땅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주와 복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선을 행하며, 내 것을 희생하여 다른 이를 돕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남을 긍휼히 여기고 어려움을 깊이 동정하며 위로하는 사람이 되면 그것이 곧 장래 자기를 위한 좋은 터를 쌓는 것이 된다. 성도가 선을 행하는 것은,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것과 같다.

 

마온 지방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갈멜에서 양을 치고 있었는데, 그는 양이 삼천, 염소가 일천이나 되는 큰 부자였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양털을 깍는 나발에게 보내어 문안하고 “우리가 갈멜에 있는 동안에 당신들을 해하지 아니하고 당신들을 잘 지켜 보호해 주었다. 이제 좋은 날에 왔으니 당신의 종들과 당신의 아들 다윗에게 당신의 손에 있는 대로 무엇이든지 도와주기를 원한다"고 부탁했다. 다윗은 수하에 600명이나 되는 추종자들이 있어서, 이들의 생계를 위해서 나발과 같은 부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스라엘 율법에 따르면, 부유한 자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등 기타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나발은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하고 자기의 것을 다윗에게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삼상 25:37-38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고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놓은 하나님의 종으로, 과거 이스라엘을 위하여 생명을 내놓고 골리앗과 싸웠고 또 많은 블레셋 사람을 물리쳐 백성들이 평안히 살게 해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준 다윗에게 물질로 도와주고 공경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며, 다윗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돕는 것이다. 나발이 그 아내의 말을 듣고 크게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다가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죽고 말았다

 

바르실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목적은, 먹고 살게 하기 위함이고, 다음에 믿는 일 즉, 주와 복음을 위한 구원 사역에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일에 사용하는 것은 성도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물질을 쓰는 것은 물 위에 던지는 것처럼 다 헛된 데로 돌아갈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신다. 선을 행하는 것은 하늘에 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르실래는 늘 하나님의 편에 서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 알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와 복음을 위해 자기의 것으로 베푸는 삶을 살았다. 이런 성숙한 신앙 인격의 소유자는 모든 이에게 존경과 칭송을 받고, 그 행한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풍성한 보상을 받는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바르실래에게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하였고, 세상을 떠나기 전 아들 솔로몬에게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하고, 자기가 죽은 후에도 바르실래의 아들들을 왕자와 같이 대접하고 은총을 베풀 것을 당부하였다.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라는 말은, “내가 얼마나 더 살겠다고”라는 뜻으로 바르실래는 자기 생명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줄 알 하나님 앞에 가는 날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의인의 삶을 살고자 했다.

 

 

二. 미래를 준비하였다.

33절에 다윗 왕이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의 왕궁으로 같이 갈 것을 권했지만, 그는 자기 나이가 80이므로 더 이상 명예나 출세에 관심이 없다며 거절하였다. 현대어성경은 34절을 “그러나 바르실래는 사양하였다. `제가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이 늙은 몸으로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겠습니까? 라고 번역하였다. 바르실래는 자기가 지금 왕을 환송하기 위해 나온 것은, 과거에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하여 왕으로부터 어떤 상급이나 칭찬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왕권을 회복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왕의 무사 귀환을 위해 배웅하려는 것뿐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서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다윗 왕에게, 왕이 자신에게 어떤 좋은 것으로 공궤하여 준다고 해도 결코 더 이상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왕에게 손해만 끼칠 것이라 하였다.

 

바르실래가 나이가 많고 충분한 부(富)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부족할 것도 바랄 것도 없어 이처럼 욕심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물질이 풍성하면 할수록 더욱 물질의 욕망에 집착하는 것이 보통이다. 노년에 몰락하는 사회지도층과 유명인들 대부분이 돈과 권력, 성(性)에 집착하는 노욕(老慾) 때문이다. 35절에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한 것은, 이제 육신이 늙어서 좋고 흉한 것을 감각적으로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둔감해졌다는 것이고,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하는 말은, 아무리 좋은 산해진미를 먹는다고 해도 그 맛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게 둔해졌다는 토로이다. 그리고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하는 말은, 여러 감각 기관들도 늙고 둔해져서 좋은 노래를 들어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형편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육신의 형편을 무시하고 단지 눈 앞의 부귀영화를 위해 왕을 따라 간다면 오히려 큰 누를 끼칠것이 분명하므로 왕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하였다.

 

36절에 바르실래가 “어찌하여 이 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하고, 자신이 신하로서 마땅히 행한 행위에 대해 왕이 상으로 갚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하였다. 이는 마치 엘리사 선지자가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고 물었을 때, 수넴여인이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고 대답했던 것과 같다. 수넴여인은 현재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며 감사함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것을 구하지도 않을 것이고 또 필요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그는 현재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경에서 믿음 지킬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수종드는 선지자를 대접하여 구원운동에 협력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한다고 하였다.

 

바르실래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으로 왕을 공궤한 것은 신하로서 마땅한 일일뿐아니라,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종을 선대하였으므로 하늘에 상급이 쌓인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을 가졌다. 6: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대가를 바라고 선을 행하는 것은 불신자들이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 성도는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 크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늘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 이 땅에서 상을 받으면 장차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없다.

 

바르실래는 자기를 높이고 풍족한 노후를 보장하는 왕의 간곡한 청은 거절하였지만, 대신 자기 아들 김함을 수하에 거두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는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아닌 아들이 일해야하는 시대가 도래하였고, 집에서 자기에게 배우는 것보다 믿음의 왕인 다윗의 수하에서 배우는 것이 아들에게 훨씬 더 유익할 것이라믿었다. 그리고 아들이 사사로운 개인의 유익을 위해 일할 때가 아니라, 이제 나라를 위해 일할 때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 바르실래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서 남은 여생을 편안히 지내는 것보다, 대신 아들 김함이 다윗왕의 수하에서 양육을 받아 하나님과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그는 아들에게 집에 남아 자신의 가업을 이어 나가라 하지 않고, 가장 믿을만하고 존경하는 신앙 인격의 소유자인 다윗 왕을 따라가 배우라 하였다. 육신적인 출세나 성공은 그저 하나의 작은 성공을 이룬 것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하는 신앙인이 되는 영적 성공이야말로 우리 믿는 자에게 있어서 참된 성공이기 때문이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자신의 아들을 대함에 있어서 사사로운 정리에 따르지 말고 왕의 뜻대로 저를 가르치고 대해 줄 것을 부탁했다. 37절 하반절에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라는 말은, ”그에게 왕이 좋을대로 해 주십시오.“라는 뜻이다. 이에 다윗 왕이 그의 청을 허락하고 김함도 아비의 뜻을 순종하여 다윗을 따라갔다. 41:17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게롯 김함은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도시의 지명이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김함은 바르실래의 요구대로 다윗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 다윗의 신앙교육을 받고 왕가의 일원이 되었고, 다윗의 유언을 받들어 솔로몬이 베들레헴 근처의 땅을 김함에게 하사였다. 이때로부터 그곳을 게롯김함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게롯김함'이란, '김함의 소유'란 뜻이다.

 

바르실래는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과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내가 손해보고, 내가 희생하고 헌신함으로 아들에게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는 길을 택하였다. 김함은 다윗을 따라가 아비처럼 충성하는 자가 되어 왕가의 일원이 되고 땅을 하사받아 후손들까지도 복 된 삶을 살게 하였다. 바르실래는 자기 생명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자기 자신의 유익보다는 아들의 복된 장래를 위해 미래를 준비하였다. 바르실래는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를 위해 장래에 좋은 터를 쌓고 더하여 자녀를 위하여 미래를 준비했던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결론

1. 하나님의 편에 섰다.

2. 미래를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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