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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본분 : 빌립보 3:10-1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5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 첫째, 그리스도는 부활로써 죽음을 이기셨으며, 죽으심으로써 얻으신 의에 우리로 참여하게 하십니다. 둘째,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런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 주님처럼 죄없는 의인이 되게 하고, 영혼이 중생하며. 장차 우리도 주님처럼 영광스런 부활을 할 수있다는 소망과 확신을 준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57문은 ”몸의 부활’이 당신에게 주는 위로는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 이 생명이 끝나는 즉시 나의 영혼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고 또한 나의 이 몸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켜져 나의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화로우신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장차 우리의 몸이 부활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육신이 죽으면 영혼은 즉시 하늘나라로 가고, 주님 재림하실 때에 죽었던 몸과 영혼이 결합하여 주님처럼 영화로운 부활을 할 것이라는 위로는 준다.

 

11: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는데, 더 좋은 부활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죽은 성도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가리킨다. 믿음으로 많은 환난과 악형을 이긴 자들과 순교자들은 부활할 때에 영광과 존귀와 상급이 크고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의 선진들은 주를 위하여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악형을 받을 때에, 진리를 양보하거나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고 더 좋은 부활을 소망하며,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면서 환난 가운데서, 생명을 내놓고 싸웠던 것이다.

 

바울은 11절에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하였다. 이 말은 어떤 방법이나 수단을 써서라도 주님처럼 영광된 부활의 자리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의미이다. 고전 15:41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하였다.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이 각각 다른 것처럼,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들의 받을 영광도 다 다르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주를 위해 살았는지,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었는지 여부에 따라, 부활 후에 영광도 다르다. 그러므로 나그네와 행인과 같은 짧은 삶을 사는 동안에, 주와 복음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수고하며 말씀대로 자기의 구원을 잘 이루어, 부활에 이르는 즉, 장차 부활할 때에 영광된 자리에 나가는 저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영광된 부활에 이르려면;

一.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여야 한다.

현대인의 성경은 10-11절을 “내가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그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죽음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 나도 부활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부활의 권능’(power of his resurrection)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그 주님의 부활을 믿는 모든 자에게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말하며, 현실에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며, 부활의 권능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주님의 뜻에 맞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한다.

 

인도의 선교사 썬다 싱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한 대학교수가 그에게 질문했다. " 오래동안 믿던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힌두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힌두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다. 썬다싱은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입니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인도의 초대 총ㅇ리를 지낸 네루는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 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고 말했다.

 

부활의 권능은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권능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자만이 얻을 수 있다. 칼빈은 '부활의 권능‘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능력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영적으로 부활한 자들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며, 성도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였다. 고후 13: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라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하나님은 마른 뼈를 살아나게 하여 큰 군대를 만드시는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 부활의 권능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에스겔 37장에,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이 뼈들이 살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고 명령 하시므로, 에스겔이 그대로 대언하였더니,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여 큰 군대가 되었다. 하나님은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마른 뼈라도 크신 권능으로 살려내어 큰 군대를 만드실 수 있다. 예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 눅 11장에 죽어 사흘이 지나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고, 눅 7장에는 죽어 장사지내러 가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 막 5장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달리다굼” 한 마디로 다시 사리셨다. .

 

바울은 12절에서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 바 되었다고 하였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상태가 되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계획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 하였다. 기독교인을 박멸하려 했던 바울은 부활의 권능을 체험한 후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다. 세상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가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깨닫고 그것을 얻어나가려고 자신의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처럼 내버리고, 주계 붙잡힌바 되어 선한 싸움을 싸워나갔다.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는 일을 위해 동족을 배반한 자가 되었고, 기독교를 전하는 일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바쳐 수고하다가 마침내 순교하는 자리까지 갔다. 그는 유럽에 복음을 전파하여 이방인의 땅에 수없이 많은 교회를 세워 죽어가는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였으며, 신약성경을 13권이나 저작하였다. 칼빈의 말처럼, 성도가 부활의 권능을 힘입을 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고,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빌 2:10-11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을 낮추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활케 하셔서 높이시고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자의 주가 되게 하시어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음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만유를 다스리시고 계신다. 성도가 그리스도 부활의 권능을 힘입어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주와 복름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 자기의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면 장차 주님처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

 

 

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여야 한다.

고전 15: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하였다. 기독 신자는 세상 사람보다 바로 살려하고, 신앙양심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하려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아간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받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받으며, 시련과 연단을 위한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는 이유는, 부활의 소망, 즉 내세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망이 없다면 기독 신자는 헛된 것을 믿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이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기독신자는 세상에서 가장 복받은 자이고 행복한 자이다.

 

그러나 값없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또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는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 것만큼 후사가 된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것만큼 하나님의 것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믿을 때에 법적으로나 생명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합당한 자격자로 만드시기 위해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하여 연단하신다. 환난과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켜야 신앙 인격과 실력이 만들어져서, 하나님의 기업을 받아 감당할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음으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받으시고 부활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가신 발자취를 따라가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을 복종하므로 당하는 고난이다. 이 고난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고, 영광에 참여케 하므로, 크게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권능에도,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고자 거기에 소원을 두고 노력하였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사람에게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부활의 권능은 주어진다. 그리스도는 이사야 53:5-6의 말씀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시편 16:10의 말씀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으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만능으로 예수님을 살려 놓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해서 죽는데 까지 이르려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가신 발자취를 따라가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을 복종하므로 당하는 고난이다. 따라서 이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능을 힘입는 비결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 것만큼 기업으로 받을 영광도 크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깨달은 사도 바울은, 어찌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기 위하여 그 고난에 참예하기를 힘썼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고난의 잔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부활의 권능에 참예했다. 우리 성도들도 고난을 통과하며 연단을 받아야 영광의 기업을 받을 자격이 이루어진다. 딤후 2:12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만큼 환난이 오고, 그 환난을 참는 것만큼 왕권이 이루어진다. 고후 11:24-28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자신이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고, 더 많은 고난을 당하였지만. 그 모든 것이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부활의 권능을 힘입어 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고전 15:10).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고난 없이 예수를 믿고 영광을 취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짓는 수고 없이 수확을 거두고자 하는 것과 같다.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만큼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에 비례하여 권능도 그만큼 커진다. 모세는 애굽에 가만히 있었으면 공주의 아들의 지위와 애굽의 모든 보화와 재물을 소유하고 평안히 살 수 있었으나, 그것들을 다 내어놓고 주를 위해 능욕 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와 재물보다 더 크게 여기고 고난의 길을 갔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과 하나님의 위로도 그만큼 많이 받게 된다. 지난 시대에 신앙의 선진들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고난받는 길을 걸어갔다.

 

성도가 현재에 고난받는 것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할 인격과 그 자격(실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여야 하며, 그러한 고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만큼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사람은 주님 재림 시에 상급과 칭찬 존귀와 영광을 받는다.

 

 

 

 

 

 

결론

1. 그리스도의 권능에 참예하여야 한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여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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