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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8 08:16

깨끗하게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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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왕하 5:1-14

제목 : 깨끗하게 되었더라

 

인생을 살면서 누구든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에 들린 것처럼, 인생의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다. 그것이 육체적 질병일 수도 있고, 경제적 궁핍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자신과 가까운 자녀나 배우자, 친구들과의 인간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혹은 직장이나 사업의 갈등일 수도 있다. 본문의 나아만은 문둥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문둥병을 치유 받았다.

 

一.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

나아만은 그 주인인 아람 왕 벤하닷으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았다. 그 이유는, 일전에 저가 하나님의 은혜로 아람 나라를 전쟁에서 구원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천하에 유일한 신으로서 이방인의 삶까지도 섭리하시고 주관하신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나아만은 아람의 배반자였던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살해한 자”라고 하였다.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 왕에게는 물론 백성들에게조차 인정과 존경을 받는 뛰어난 용사였다. 하지만 그는 불치의 문둥병에 걸려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는 달리 아람 나라는 문둥병자를 격리시키거나 부정하게 여기지 않아 나아만은 군대장관으로서의 일을 계속 수행할 수는 있었다.

 

아람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에서 로로 잡혀가 나아만의 아내 밑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어린 여자애가 나아만이 문둥병이 든 것을 보고, 야 주인에세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에게 가면 고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나아만이 어린아이의 말을 자기 왕에게 고하였더니, 그가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친서까지 써주며, 나아만에게 속히 이스라엘에 가서 병을 고치고 오라 하였다. 이에 나아만이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향해 떠났다.

 

이스라엘 왕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달라는 아람 왕의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시 아람은 이스라엘에 비하여 강대국이었으므로, 아람 왕이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문둥병을 자신에게 고쳐 달라고 한 것은, 이 일을 빌미로 이스라엘을 치려는 궤계로 알고 크게 번민하였다. 선지자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하였다. 8절에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라는 구절을 위클리프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 마소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나아만을 구원하셔서 참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있음을 나타낼 것입니다'라는 뜻이라 하였다.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나아만은 자신의 문둥병을 치유 받기 위해 당대의 유명한 의원이나 박수, 술객들을 찾아갔을 것이며, 좋다는 약은 모두 구해 발라보기도 하고, 먹어 보기도 하였을 것이다. 자신들이 애지중지 여기며 섬기는 림몬 신에게 가서 병에서 낫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하였을 것이다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한 그의 모든 노력은 다 소푸로 돌아갔고, 이제 그는 더 이상의 희망이나 대책도 없이 다만 죽는 날만 기다릴 수밖에 형편에 놓이게 되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나아만처럼 자신이 당한 위기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애쓰지만, 그 같은 노력들은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세상의 과학이 발달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철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나 위기가 모두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인간들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위기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생사의 모든 일은 인간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죄와 사망에서 나음을 얻는 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는 길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상 2:6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의 삶의 모든 부분을 주장하신다. 인간이 사망에서 구원을 얻는 길도 예수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어린아이처럼 겸손히 빈손 들고 나아가야 한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아직도 의지할 것이 있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무 역사도 하시지 않는다.

 

34: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였고, 51:17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였다. ‘자기’라는 것이 모두 없어지고 아무것도 의지할 데 없어, 오직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심을 바라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나오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하여 주신다. 3:8-9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에게 내리기로 예정했던 재앙을 나리시지 않은 것은, 그들이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부르짖었기 때문이 아니라, 선지자 요나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와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간구하며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그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도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고 우리들이 당한 인생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어린 여자아이가 직접 나아만의 병을 낫게 하는 비범한 지식이나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만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에 가면 문둥병이 치유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그 주인에게 전한 것뿐이다. 그 말대로 나아만이 하나님께 나왔으므로 사망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어떤 위태한 형편에 있든지 간에, 우리를 사지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누구나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

 

 

 

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다.

나아만이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당당한 권세로 엘리사를 찾아왔으나,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자를 통하여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명하였다. 이 말에 나아만은 분하고 괘씸하여 회를 내고 몸을 돌이켜 돌아가려 하였다. 그의 생각에는 자신의 위상에 걸맞게 엘리사가 자기에게로 나와 반갑게 맞이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몸 위에 안수하며 문둥병을 고쳐줄 줄로 알았다. 그러나 나와 보지도 않고 종자를 보내어 요단강에 가 일곱 번 씼으라 함을 보고는 자신의 나라에 있는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려 하였다.

 

요단강에 가 일곱 번 씼으라’는 엘리사의 말에 나아만이 노한 것은, 나아만이 아직도 자신이 문둥병자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며 자기 우월에 빠져있다는 증거이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구세주 앞에서 겸손하지 않고 오히려 노하여 돌아가려고 한 것은 자살 행위이며 아직도 자신의 위치를 바로 깨닫지 못한 증거이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하여 나아만의 병을 고쳐 주시기 전에, 그의 마음을 먼저 고치고 낮추어 하나님이 인생의 모든 것을 주장하심을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려고, 엘리사로 하여금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보내도록 명하신 것이다.

 

나아만의 생각에는 요단강에 비하면 자기 나라의 아마나 강과 바르발 강이 외부적으로는 더 낫게 보여 강물에 씻어서 병이 날 것이면 요단강보다 자기 나라의 강에 가서 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그 때에 있으며, 이러한 은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할 때에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만하여 거역하며 완악하고 강팍한 마음을 가진 자는 물리치시나, 심령 속에서 자신의 죄를 붙들고 통회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낮추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만병을 치료하시는 치료의 하나님의 역사는 생명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역사하신다.

 

엘리사로부터 홀대를 받아 분한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나아만에게 그 종들이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고 졿은 말로 권면하였다. ‘권면’이란 영어성경에서 encouragement, well advice, persuasion, urge, appeale, 그리고 가장 보편적으로는 “exholtation”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히 13:22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는 말씀에서 ‘권면’은 “간곡한 권유, 권고, 충고, 경고, 훈계”라는 뜻이다. 신앙의 선진들도 권면의 말씀을 받고 맘에 들지 않아도 잘 순종한 사람은 실패하지 않고 형통하였으나, 마땅치 않게 여기고 무시하였던 사람은 고난당하고 형통치 못한 길을 걸어갔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권면하실 때, 그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사람이 복이 있다. 종들이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한 것이 아람의 군대 장관에게는 심히 무례하고 섭섭하고 화나는 일이지만 우리가 이스라엘까지 온 이유는 병을 고치기 위함이 아닙니까? 또 엘리사로부터 홀대받은 것을 생각하면 자존심 상하고 분한 일이지만 그가 병을 고칠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 때문에 그냥 돌아가면 아무 소득도 없이 수고만 하고 당신의 문둥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겠읍니까?” 병을 낫고자 하면 엘리사가 무엇을 시키든지 시키는 대로 순종해야 병을 고치지 않겠읍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지금 우리에게 명한 것보다 더 큰일을 시켜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것인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은 세상 어떤 일보다 쉽고 좋지 않습니까?”하고 지혜로운 말로 권면하였다.

 

나아만의 종들도 나아만처럼 화를 내며 엘리사를 욕하고 당장에 당한 수치만 분하게 생각하며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도 있었으나, 지금 이스라엘 엘리사 앞에 온 목적을 바로 알았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당연히 감수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비록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는 무례함으로 자존심이 상하고, 아람 나라의 강들보다 좋지 않은 요단강에 가서 씼으라 하여도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믿고 그 주인에게 지혜롭게 권면하였다. 나아만의 종들은 하나님은 어느 때나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역사하시므로 엘리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고, 지금이야말로 문둥병을 고침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으로 이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분하여 돌아가려는 그 주인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권면하고 설득하였다. 종들의 권면을 들은 나아만이 그 말에 수긍하여 마침내 분한 마음을 돌이켰다. 이것이 나아만이 고침받을만한 그릇이 되는 증거이다.

 

15:32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기는 것이라 하였는데, 훈계를 잘 받는 사람은 신령한 귀가 열려서 생명의 경계를 잘 들어 살길로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훈계를 달게 받는 자가 지혜 있는 사람이요, 자기 영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요 복 받은 자이다.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삼상 15:23). 완고하여 자기 고집대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 다른 이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그 고집으로 인해 궁핍과 수욕을 당하고 멸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 나아만은 비록 자신의 종들의 말이라 할지라도 자기 고집과 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그 권면의 말을 듣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여 병이 나을 기회를 잃지 않았다. 부하들의 권면대로 나아만이 교만과 위신과 자존심을 다 내어놓고 엘리사가 명한대로 요단강에 가서 정확히 일곱 번 몸을 잠그었다. 그때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임하여 나아만의 문둥병이 치유되어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하게 되었다. 만일 나아만이 자기 생각대로 엘리사를 괘씸하게 생각하고 그대로 돌아갔더라면 문둥병을 고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는데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히 순종함으로 고침을 받았다.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은 완전한 순종을 가리킨다. 한 두 번 순종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일곱 번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완전순종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순종할 때에는 자기 고집이나 주장, 자존심을 버리고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 거기에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넣어 불완전하게 순종하면 하나님을 역사하시지 않는다.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에도 하루에 한 번씩 엿새, 제 칠일에는 일곱 번을 돌았을 때에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여섯 번 순종하고 중단하지 않고 일곱 번까지 완전히 순종해야 깨끗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완전히 순종할 때에 심령의 깨끗함을 받는다. 어떠한 죄로 인해 더러워졌어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참여하여 말씀을 받아 전적 순종 할 때에 심령이 깨끗해지고 소생하고 새사람이 될 수 있다.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아브라함에게 명령했을 때, 아브라함이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을 따라 불순종했다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창 22:12-14).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을 때, 하나님께서는 장대에 높이 매달린 놋뱀을 보면 살 것이라고 하셨을 때, 말씀에 순종하여 놋뱀을 쳐다 본 자는 모두 살았지만 그 말을 믿지 않고 쳐다보지 않는 사람은 다 죽었다(민 21:6-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만 구원을 얻는다.

 

요한복음 9장에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실 때, 진흙을 침으로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 하셨다. 소경이 순종하여 그대로 하였더니 눈이 밝아져 보게 되었다. 이 소경이 눈을 뜨게 된 것은, 예수님의 침이나, 침을 바른 진흙이나, 또는 실로암 연못의 물이 낫게 한 것이 아니라, ‘씻고 오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에 나은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할 때에 인간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게 해 주시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만 하면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 하셨고, 홍해를 육지 같이 되게 하시며, 하늘에서 양식을 눈 같이 내리시며,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에 빠져서 이중 삼중 얽혀 매여 다시 나올 수 없는 상태에 처하였다고 해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건져 주시고 영광을 보게 해 주신다. 나아만이 선지자 엘리사를 통헤 주신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았다

 

 

 

결론

1.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