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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1 17:58

베레스 웃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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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베레스 웃사

본문 : 삼하 6:1-11

 

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한다.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궤는 엘리제사장 때인 주전 1075년경 아벡(Aphek) 전투에서 블레셋에 패해 빼앗겼다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7개월 만에 벧세메스를 거쳐 기랏여아림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나가 싸웠어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했던 것을 통해 ➊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이 없는 법궤는 아무 역사도 일으키지 않는 단순한 궤짝에 불과하며, ➋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위해 법궤를 이용하면 오히려 복이 아니라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을 교훈한 것이다.

 

하나님의 궤는 금번에 다윗이 자기 궁으로 모셔 오려한 때까지 블레셋에서 돌아온 후 약 70여 년 동안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다. 바알레유다는 기럇여아림의 옛 명칭이다. 다윗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알고 감사하여 어찌 하든지 하나님의 궤를 자기 궁으로 모셔야하겠다 고 결심하였다. 성공한 사람은 보통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보통인데, 다윗은 왕위에 오른 후 더욱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곁에 모시고자 하여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려고 계획하이제 그 일을 실제로 실행하게 되었다. 73:28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하였는데, 다윗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려 하였다.

 

하나님의 궤는 궤 자체에 어떤 가치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에 귀중한 것이다. 궤 안에는 십계명의 돌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들어있었다. 따라서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상기기키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일깨워주는 지극히 거룩한 상징물이었다. 2절에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 하나님이 임재 하신다는 뜻이다.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하나님의 궤를 소 수레에 싣고, 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면서 기쁨 가운데 다윗궁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법궤를 실은 수레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가 뛰기 시작했다. 법궤가 흔들려 땅에 떨어질 것을 염려한 웃사가 그것을 보고 법궤를 붙들었는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수레 곁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에 다윗이 그곳을 ‘베레스 웃사’ 즉, ‘하나님이 웃사를 치신 곳‘이라 칭하고 더 이상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시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모시게 하였다. 다윗이 이 일을 분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이 웃사를 쳐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궤를 옮기지 않아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웃사가 죽은 것에 대한 자책과 통분을 말한 것이다.

고전 14:33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법대로 하여야 한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 세상일은 결과만 좋으만 모든 것을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결과는 물론 과정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한다. 삼상 6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돌려 보낼 때에, 새 수레에 암소 둘로 궤를 올려 놓은 수레를 운반하였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었고, 궤를 돌려보내기 전 이미 일곱 달 동안에 그들의 도시 아스돗, 가드, 에그론에서 재앙을 당해여 수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선지자 사무엘이 죽은 이래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여 영적 혼란기에 있었다. 다윗도 율법에 정통하지 못하여 금번에 법궤를 옮김에 있어서, 과거에 블레셋 사람들이 소 수레에 법궤를 실어 돌려보냈던 것을 기억하고, 그 방법대로 하려 하였다. 다윗이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은, 아마도 사람이 궤를 메는 것보다 수레에 싣고 가는 것이 더 쉽고 보다 발전된 방법으로 여겼던 것 같다. 신자 중에도 성경대로 믿는 것이 힘들어 쉽게 믿으려고 인본주의를 쓰는 사람이 많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을 써야 하고 새로운 제도를 가지고 편하게 믿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은 결과가 아무리 좋고 지극 정성을 들였다 하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신다.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가 뛴 것은 우연히 일어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지 아니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4:15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하였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할 때에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증거궤를 덮은 후에,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라 분명히 말씀하셨다. 다윗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심은 있었으나, 방법을 바로 하지 못했다. 이처럼 모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대로 해야 한다. 딤후 2:5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 하였다. 이 말을 현대어성경은 “경기를 하는 사람이 규칙을 어기면 실격을 하게 되어 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운동 경기에 참가한 선수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절대로 승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규칙을 어긴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정병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은 것, 말씀에 어긋나게 충성하고 봉사한 것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 따라서 성도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한다.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을 하며 각종 병을 고치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해도 예수께서 알아주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며 많은 일을 한 그것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합당하게 하였는가를 보신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한다.

 

 

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6-7절에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하였다. 웃사가 궤를 붙든 것은,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힘으로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임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웃사가 좋은 마음에서 떨어지려 하는 궤를 붙들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안타까운 죽음을 죽고 말았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일을 인간적인 생각이나 수단, 방법으로 하려고 하면 같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주께서 피로 값 주고 세운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시며, 모든 성도는 지체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수종드는 심부름꾼과 같다. 심부름꾼은 일을 시키는 주인의 명령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만일 심부름꾼이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면 그 결과가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주인의 뜻과는 다르므로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인간의 생각이나 길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한다. 바울은 고전 4:4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하였다. 바울이 스스로 생각할 때에 자기를 책망할만한 죄가 생각나지 않고 하나님께 불충성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나, 그는 스스로 의롭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판단하실 이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는 것이 문제이지, 사람들의 판단은 아무것도 아니다.

 

삼상 5장에 보면,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아벡 전투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자신들의 '다곤의 신당'에 가져다 놓았다. '하나님의 궤는 블레셋 족속에게는 자신들의 역사 이래 최대의 전리품이었으므로, 이번 승리가 다곤의 도움으로 된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의기양양하여 그들의 신 다곤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곤의 신당에 하나님의 궤를 안치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다곤 우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아 있었다. 그들이 우상을 일으켜 다시 제 자리에 세워 놓았는데 그 이튿날에는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져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몸둥이만 남아 있었다. 그후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의 도시에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여 다곤 우상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독종으로 인하여 죽고, 쥐로 인한 농작물이 피해를 당했다. 그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 법궤를 사람이 살지 않은 빈들에 보관하였다.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은 최고의 전리품인 여호와의 궤가 그들에게는 오히려 재앙거리가 되었다. 그들이 더 이상의 재앙을 피하고 살기 위해 궤를 돌려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일곱 달 만에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은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 개를 예물로 속건제를 드린 후, 새 수레에 여호와의 궤를 실어 벧세메스로 돌려보냈다.

 

하나님의 법궤가 칠개월 간 이방인들의 땅에 있었으나,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법궤를 찾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땅에 머무는 동안 독종의 재앙을 통해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신 다곤과 바교할 수 없는 천산천하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궤를 돌려보낼 수 밖에 없도록 역사하셨다.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증거이다.

 

모세가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사람만 죽이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40년간 숨어 살았다. 40년 후에 그를 불러 출애굽의 대역사를 맡긴 것도 하나님이시며, 열 가지의 이적과 기사를 일으켜 바로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도록 역사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홍해 바다를 갈라 마른 땅처럼 건너도록 역사하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셨다. 출애굽의 모든 구원 역사는 하나님이 하셨고, 모세는 다만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일한 것뿐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예례미야가 능력과 재주가 다른 이보다 출중하기 때문에 일군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만 하나님이 보내는 곳이 어디든지 가고, 명하는 것을 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예정한 일이 이루도록 하실 것이고, 그 일에 수종드는 예레미야는 어떤 환난에서도 구원해 주실 것이라 하셨다.

 

바울도 평생 자신이 행한 선교사역도 배후에서 그를 위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된 것을 알고, 고전 15:10에서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하였다.

 

말씀을 순종하면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어떤 이가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자기 나귀를 바쳤던 것처럼,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임한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어린아이가 자기의 적은 것을 바쳤을 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을 믿지 못하고 웃사처럼 내가 해야만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행하면 오히려 재앙을 당하는 어리석은 자가 된다.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권속으로 인정하신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수종을 잘드는 저희가 되어야 하겠다.

 

 

 

 

 

결론

1.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법대로 하여야 한다.

2.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