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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히 13:14-16

제목 :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구약시대에 일년에 한번 대속죄 일에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속죄 제물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고 그 생축의 육체는 불살랐다. 그와 같이 예수께서도 성도를 거룩하게 하려고 자기의 피를 신령한 성소에 드리고, 자신의 육체는 영문 밖 즉, 예루살렘성 밖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께 참여하려면 예수의 피를 믿고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영문 밖은 예수님이 능욕을 받아 쫓겨난 곳이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은 곳이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능욕과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 되는 신령한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 세상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장망성(將亡城)과 같다. 영문 밖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에 참여한 자 즉,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는 장망성같은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

 

 

一. 찬미의 제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하여 지음받은 자들이다. 애굽에서 고난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신 것도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함이며, 유다 백성을 바벨론에서 건져주신 것도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함이며, 복음으로 모든 택한 백성을 구원해 주신 것도 모두 택한 자들을 통해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신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찬미의 제사 즉, 감사의 삶을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구약의 제사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생축으로 제사드렸으나,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 사함과 구원을 받은 성도는 구속의 은혜에 합당한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찬송은 심령 속에서부터 우러나와 입술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입술의 열매 혹은 곡조 있는 기도라 하였다. 현대인의 성경은 15절을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언제나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입니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이름을 증거하여 그것을 입으로 드러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양을 기뻐하신다.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은 신자들이 구원받은 근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송케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찬양은 공허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와 베풀어 주신 은혜와 복에 대한 체험적 고백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게 하려고 우리를 택해 주셨으므로, 성도는 삶의 모든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와 베풀어 주신 복을 감사하며 영원히 찬송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한 목적 중의 하나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날마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150:1-2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성도는 마땅히 성소에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며 찬양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행하신 그 모든 역사에 대해 찬양해야 한다.

 

15: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 바다를 건넌 다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여호와를 찬송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들을 향항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함을 증거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살아가는 힘의 근원이다. 하나님이 힘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삼손이 대단한 용사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힘을 거두어 가므로 블레셋 사람에게 잡혀 두 눈이 다 뽑히고 맷돌을 돌리다가 죽고 말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힘이 되시며, 인생의 여러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그 은혜를 깨닫는다면 감사의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 시험을 당하였지만, 그 모든 일로 인하여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다. 오늘까지 자신에게 복을 주셨던 것처럼 이제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주신것을 다시 거두어 가신 것으로 믿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기쁠 때 찬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고난 중에도 여전히 찬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극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한 순전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드린 욥은 모년에 갑절의 복을 받았다.

 

왕상 1:48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내 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나로 목도하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 왕이 생존해 있는 동안 양위(讓位)하는 일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왕들은 죽을 때까지 통치했고, 따라서 그 후계자들은 선왕(先王)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왕위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은 생전에 솔로몬을 왕위에 세우고 자신의 눈으로 그 즉위식을 직접 목도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찬양하였다. 더구나 아들 성전 건축의 사명을 가진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된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7: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지어다. 세상 모든 나라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칭송하여야만 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은혜로 길러 주시고 살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115:17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고 감사함을 외부적으로 나타내는 입술의 열매이며, 또 성도의 육신과 영이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성도라 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은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상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영이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도 하지 못한다. 사림이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며 영혼이 자라나 날마다 범사에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성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二. 선을 행하는 제사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구속해 주신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를 죄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만들어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하심을 받아 죄에서 떠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선한 일을 열심히 해야한다.

 

4:17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하였는데, 선을 행할 줄 알고, 할 능력이 있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자기 유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 성령이 인도하는 길로 가지 않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 곧 죄이다. 진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양심에 옳다고 깨달아진 것은 즉시 따라가고 실행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2: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하였다. 선을 행할 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상급으로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받게 된다. ‘선’은 도덕적, 율법적 선을 말하며,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선 즉 신앙적 의와 선을 가리킨다. 믿는 사람이 선을 행한 것은 말씀을 순종하여 믿음을 쓴 결과이므로,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갚아주신다. 신자가 선을 행하면 즉, 하나님의 일을 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고 그 인격이 존귀해지고 영광스럽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선을 행하되 열심히 행하여야 한다.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성도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 선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순종하는 것이므로, 성도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마음 문에 엎드려 있다가 기회를 타서 마음속에 들어와 범죄케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선한 마음을 가져야 되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하며, 선을 위해서 고난받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벧전 4:1"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라 했는데, 이 말은 ‘선을 행하다가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는 뜻이다. 즉,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죄가 물러가고 선을 행할 때는 죄가 그쳐진다는 것이다. 선을 행하면 죄가 점점 멀어진다. 이는 어두움을 물리치려면 어두움과 싸우지 말고 빛을 받아들이면 어두움이 저절로 물러가는 것과 같다. 낯을 들지 못하는 것은 선을 행치 않은 증거이다.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참 신앙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음에 사람에게 선을 행하며 덕을 세우는 것이다. 무슨 일이나 성도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는 정신을 가지고 선을 행하여야 한다. 12:20-21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놓으셨다. 성도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원수를 사랑하여, 원수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면서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며 선을 행하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

 

왕하 6:21-23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왕이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에 따라와 갇힌 것을 보고 이스라엘 왕은 죽이자 하였으나, 선지자 엘리사는 죽이지 말고 오히려 그들에게 떡과 물을 주고 잘 대접해 돌려보내라고 했다. 원수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잘 대접하여 보냈으므로, 마치 머리에 숯불을 놓은 것처럼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치러오지 않았다. 선을 행하는 제사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대적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여 다시는 침략하지 못하도록 역사하셨다.

 

선을 행하려면 참는 것이 필요하며, 인내함이 없이는 선을 행할 수 없다. “참된 선은, 선하신 하나님을 찾고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 이므로, 선을 행하려면 잘 참아야 한다. 참지 못하면 선을 행하지 못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믿음과 참음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였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실 날이 반드시 도래한다. 선을 행하면 반드시 선한 열매를 거둘 날이 온다. 하나님을 선을 행하는 제사를 기뻐하신다.

 

 

三. 서로 나누어 주는 제사.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감사와 감격에 넘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행실의 열매가 서로 나누어 주는 제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남을 섬기고 도주는 이 제사에는 구원 운동과 교회를 위한 봉사와 물질로 드리는 것도 포함된다. 고전 9:9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는데, 믿음으로 교회에 봉사하고, 복음 전도에 봉사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수고하는 주의 종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제사가 된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갚아 주신다(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재물은 먹고 살라고 주신 것이며, 믿는 일하라고 주신 것이다. 내게 있는 재산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임시 내게 맡기신 것이므로, 청지기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구제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많은 사람이 기뻐하고 자기도 윤택해 진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더 많은 재물을 주신다.

 

왕상 17:13-16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사렙다 과부가 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굶주려 죽는 때를 당하였으나, 자신의 것으로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공궤하였다. 자기 생명을 유지할 떡을 남에게 준다는 것을 쉽지 않은 일이며, 더욱이 알지도 못하는 선지자의 말을 순종한다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니다. 선지자의 말을 순종한 과부에게 하나님은 악속하신 대로 3년 6개월 동안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그 병의 기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역사하여 평안한 삶을 살게 하셨다.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며 선을 행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기근이 와도 면하게 해주신다. 고후9:9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 바친 것은 의를 이루며 그 의는 영원토록 하늘나라에 있게 된다.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대개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을 복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받는 사람은 받아서 먹으면 없어지지만 주는 사람은 그 의가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주는 사람은 자기 마음이 기쁘고 믿음을 썼으므로 영혼이 자라난다. 그러므로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남을 도와주려고 힘을 써야 한다.

 

11: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는 것은 물질을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물질을 쓰는 것은 물위에 던지는 것처럼 다 헛된 데로 돌아갈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 성도가 하나님을 위해서 물질과 자신을 희생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신다.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다른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갚아 주시되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신다. 먼저 신령한 것을 후히 주시고, 또 물질면에도 후히 갚아 주신다. 예수께서도 20: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우리의 것들을 나누어 주고 대접하며 공궤하는 제사를 기뻐하신다.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유무상통은 자기 재산을 제 것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서 자율적으로 한 것이다. 자기의 소유를 팔아 서로 통용한 것은 진정한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한다면, 그는 자신의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말로만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희생하여 서로 나누라는 것이다.

 

딤전 6:18-19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서나 환영받고 존경을 받을 것이며, 결국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것이 된다. 성도에게 주신 성공과 부요의 법칙은 취하고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나눠 주고 버리는 법칙이다. 선을 행하고 나눠주는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이다.

 

 

결론

1. 찬미의 제사

2. 선을 행하는 제사

3. 나누어 주는 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