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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 09:16

인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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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생의 길

성경 : 렘 10:23

 

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

현대인의 성경은 23절을 “여호와여, 내가 알기에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다스릴 수가 없고 삶의 방향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습니다.“, 영어성경 NLT는 ”We are not able to plan our own course.“ 우리는 자기 자신의 행로를 계획할 수 없다”고 하였다. 결국, 인생의 모든 길이 인생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들이 계획할 수도 없고 자기 마음대로 바꾸거나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라는 구절을 “사람이 한 발짝인들 제 힘으로 내디딜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개미는, ➊자기의 앞길을 알지 못한다, ➋ 지극히 좁은 영역 안에서 산다. ➌옮기우는대로 살아야 한다, ➍죽임을 당해도 저항하지 못한다. 이것이 개미의 벗어날 수 없는 물리적 한계인 것처럼, 우리 인생도 동일하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손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4: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져서 흙처럼 연약한 존재로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하루살이는 약한 충격에도 쉽게 죽고 길어봐야 겨우 한 주일을 살뿐이다. 밷전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은, 아침 안개와 같이 그림자와 같이 잠시 세상에 머무르다가 하나님이 정한 시간이 되면 사라져 버리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루살이같이 미약한 존재인 자신의 본질을 알지못하고 천년 만년을 살고 어떤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로 자신을 착각한다.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

7:14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사람은 앞일을 예측할 수 없다. 병이 날지, 죽을지, 어떤 불행한 일을 만날지 알 수 없다.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수 없음이니라. 사람은 앞날의 불행을 예측할 수 없다.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이 날는지 도저히 알지 못한다. 동방의 의인으로 가장 큰 자 욥은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스바 사람이 쳐들어와 소와 나귀를 빼앗고 종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과 종을 다 불살라 버렸을 뿐만 아니라, 갈대아 사람들이 몰려와 약대를 빼앗고 종들을 칼로 죽였다. 한순간에 욥의 모든 재산을 다 약탈해 가벼렸다. 설상가상으로 맏아들 집에서 온 자녀가 다 함께 모여 즐거이 음식을 먹던 중 갑자기 대풍에 지붕이 무너져 7남 3녀가 한꺼번에 몰살을 당하였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 욥이었지만, 오랜 세월 걸려 얻은 재산은 물론,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자녀를 한순간에 다 잃어버렸다.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지 모른다.

 

느브갓네살 왕이 거대한 바벨론제국을 건설하고 그 도성을 바라보며,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하고 교만하게 말할 때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중에 반역이 일어나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 들에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어 일곱 해를 지내게 되었다.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4:13-16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안개와 같이 잠시 있다 사라지는 인생이 어찌 장래 일이 어떻게 될 줄 알고 계획을 세우고 이것저것을 하겠다고 계획하는 것 자체가 허탄한 것이고 악한 일이다. 주의 뜻이 있어야만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알고 할 수 있는 존재인척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고 악한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을 인간은 변경하지 못한다.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사람이 변경할 수 없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인간의 힘으로 변경할 수 없고, 하나님이 곧게 해주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힘써도 곧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이 구부러지게 하고 이지러지게 한 것을,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펴거나 셀 수 없으며, 하나님이 곧게 해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힘써도 곧게 할 수 없다. 9: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기로 예정된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 피하려 해도 결국은 죽게 된다. 우리의 눈에 우연히 보이는 일도 하나님의 편에서는 필연적으로 예정된 일이다.

 

17절에 포위당한 자들아 너희는 짐꾸러미를 꾸려라.” 하였다. 이 말은 대적들의 침공이 가까왔으므로, 피난에 필요한 보따리를 꾸리라는 경고였다. 유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자기 소욕대로 나가며 하나님의 권고를 듣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바벨론을 몽둥이로 사용하여 징계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20절에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라고 하였다. 장차 소망하는 모든 것이 끊어지고 원수가 와서 유다를 황폐케 하고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 다시 그곳에 장막을 치거나 세울 자가 없게 될 것이라 하셨다. 이 경고를 받은 유다 백성은 왕으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어느누구도 바벨론의 재앙을 파하지 못했다. 인생의 길이 결코 자기에게,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

二. 인생의 길은 하나님이 주장하신다.

삼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의 삶의 모든 부분을 주장하신다. 인간의 생사화복, 빈부귀천, 흥망성쇠 모든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인생들의 모든 삶의 과정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대로만 된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작정(作定)‘은, 하나님께서 장차 발생될 일체의 사건들을 미리 정하시는 영원한 계획 혹은 목적을 말한다. ’예정(豫定)‘은 작정과 성격적으로는 같으나 범위에서 다르다. 즉, ’예정‘은 도덕적 피조물 즉 인간에 관한 목적 특별히 ’구원‘에 관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인간의 길을 정하신다.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로 된다. 인간의 행위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 그래서 어떤 이는 택자로 또 어떤 이는 불택자로 나게 하시는 것이다.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사람은 자기의 앞길을 알 수 없고 잠시 후의 일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오늘까지 걸어 나온 것도 자기가 정해 놓고 그 정한 뜻대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길을 걸어 온 것뿐이다.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살던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후 물고기를 잡던 어부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거나 아니면 그렇게 되도록 치밀하게 계획해서 된 일이 아니라, 그들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9:2-3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은 이방 도시 다메섹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결박하여 잡아오려고 하였다.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정오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햇빛보다 밝은 빛이 비치었다. 너무 강한 빛이 갑자기 비치는 바람에 사울이 땅에 엎드러졌는데,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말씀이 들려왔다. 사울은 성도를 핍박하고 죽이려는 일을 하였으나, 하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불러 회개시켜 이방인과 임금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음을 전하는 그릇으로 사용하셨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이 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과적으로 온 유럽에 복음을 전파하고 신약성경 13권을 저작하고 신약시대에 가장 많은 일을 한 존경받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알지 못한다.

 

55:8-9에서 하나님은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인간의 생각이나 길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한다.

 

창 12;1-3에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말씀을 아브라함이 순종하였다. 그러나 히 11:8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즉시 순종하여 의지하고 살던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다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갔지만 사실은 갈바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말씀하신 곳으로 갔기에, 의롭다함을 얻고(창15:6),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창17:5),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으며(약2:23), 마침내 하나님께서 허락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

 

2: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히브리인의 아이는 아들을 강물에 짜쳐 죽이던 시대에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우너받아 애굽 공주의 아들이 되어 궁전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은 물론 모든 특권을 누렸다. 모세가 애굽인이 자기 동족을 치는 것을 보고,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었다. 그런데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일이 바로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이를 안 바로 왕이 모세를 죽이고자 찾으므로 모세는 자기 생명을 구하려고 미디안으로 도망갔다. 모세가 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려고 한 시기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가 아니었다. 또 그 방법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토록 했다.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은 혈기 왕성한 젊은 모세가 아니라, 이미 광야에서 목자로 늙어 가는 80살의 모세를 부르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의 힘이나 수단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다만 하나님의 역사의 심부름꾼일 뿐이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받았지만 자신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인하여 회피하려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언변이 부족한 모세를 위해 예비한 형 아론을 만나 같이 자기를 찾는 애굽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한다.

 

44:18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라 하였다. ‘마음이 퇴축(退縮)지 않았다는 것’은, 시험이나 환난을 당하였을 때에도 낙심하거나 마음이 뒤로 물러가 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며, ‘발걸음이 주의 길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이르지 않았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자기 길을 계속해서 걸어갔다는 것이다.

 

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할 때에, 그 일을 실행하기 전에 앞서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여 계획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형통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스스로 계획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고 그의 인도와 주장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하여 의와 공의가 빛같이 비추어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손해 되는 것이나 유익 되지 않는 것, 복이 되지 않는 것은 결코 주시지 않는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에게는 전부가 다 유익되고, 복되며 은혜가 되는 것만 주신다.

 

자기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그의 길을 인도하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하며, 우리의 뜻대로 해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따라가야 한다. 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고, 16:1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했다. 이 모든 말씀의 결론은, 사람이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웠다 하더라도 매사가 자기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바로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택하여 자녀로 삼아 주시고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아시며 내 인생을 주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인 것과 하나님이 우리의 참 아버지인 것을 믿고 그분께 우리의 앞날을 맡기고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나가면, 주님이 우리를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 인생의 길은 하나님이 주장하신다.

 

 

 

 

결론

1.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

2. 인생의 길은 하나님이 주장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