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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후 5:6-10

제목 :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2절에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라 하였는데, 현대인의 성경은, “우리는 이 육체의 집에서 탄식하며 하늘의 몸을 입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고, 공동번역은, 지금 육신의 장막을 쓰고 사는 우리는 옷을 입듯이 하늘에 있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바울은 비록 지금 자신이 이 땅에서 부패한 육신의 장막을 입고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부활하신 주령한 몸이 되어야 함을 알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신이 그런 실력과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고, 주님 앞에 갈 날은 가까우므로, 혹 주님 앞에서 “벗은 자”로 발견될 것을 두려워하며 탄식하였다.

 

구원은 죄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죄에서 점점 벗어져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은,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신령한 부활체, 하늘나라에 살기에 합당한 몸)를 덧입어 나가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사죄와 칭의를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공심판은 받아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그것은 공심판이 아니고 구원받은 성도적 행위에 따라서 상벌을 받는 사심판이다. 구원을 잘 이룬 성도는 주님으로부터 잘했다는 칭찬과 아울러 존귀와 영광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반대로 책망과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눅 19:12-26에 하나님께서 열 므나 남긴 사람과 다섯 므나 남긴 사람에게 주님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하시며, 칭찬과 아울러 상을 주셨다. 그러나 같이 한 므나를 받았지만 장사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 사람은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가지고 있던 한 므나마저도 빼앗겼다. 고전 3:14-15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진리를 깨달아 그대로 믿고 말씀대로 걸어가 영혼이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만들어진 사람은, 그 수고한 것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는다. 그러나 영혼이 자라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만들어지지 못한 사람은, 불붙은 집에서 벌거벗고 뛰어나온 것처럼 간신히 영혼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

 

고전 15:40-41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각각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른 것처럼,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 각자의 영광도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의 나그네 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우리 모두가 다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이땅에 있을 때 믿는 일에 힘써야 한다.

 

一. 믿음으로 행하여야 한다 (6-7)

바울은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기 위해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보이는 것은 현실 세계의 것이며, 육에 속한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의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것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 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령한 눈으로 날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보이는 것은 잃어버려도 보이지 않는 것을 날마다 이루어 나가야 참된 성공이다. 이 말은, 성도는 세상과 육신 중심의 생활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한다는 말이다. 성도가 하나님과 그의 말씀만 믿고 따라갈 때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어 나갈 수 있다.

 

23:1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아니하고 담대할 수 있다. 선한 양심을 버리면 그는 마치 파선한 배와 같다. 바울이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은,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일체 하지 않고, 옳은 것만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이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를 믿어도 할례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헛된 것이라며 거짓된 것을 가르치며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세력을 규합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성경 말씀을 떠난 어떤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하였다 해도 장차,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는 말을 들을 사람도 있다. 세상에 있을 떄, 나름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을 하며 각종 병을 고치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해서 예수님이 알아주는 것이 아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며 많은 일을 한 것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합당하게 하였는가를 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3:17-18 비륵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육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세상 것은 없어도 여호와께서 살려주실 것을 믿고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생명이 되신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며 나가는 것이 산 믿음이다. 세상 일이 잘 될 때만 기뻐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세상의 것이 다 없어도 하나님이 살려줄 것과 모든 것을 합동해서 유익하게 해 줄 것을 믿고 영적 생명으로 살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것이 신앙이다

 

14;2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으로 좇아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이므로 곧 죄가 된다. 그러므로 신앙 양심에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행하는 것은 모든 것이 죄가 되고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된다. 믿음으로 행한 것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二. 주님과 함께 거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8)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 때에는 주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관계를 맺고 있는 이것이, 주와 따로 거하는 상태이다. 영으로는 주와 교제하며 동거동락 할 수 있으나 몸은 아직 완전 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주와 따로 있는 것이다. 바울은 육신의 몸을 떠나서 그의 영혼이 주와 함께 거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에 살아 있어도 유익이 되고 세상을 떠나도 유익이 되지만, 더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애착심도 없이 영적인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살든지 속히 떠나든지 다 유익이 된다. 성도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있을 욕망을 가지고 매일 영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기독 신자는 세상 사람보다 바로 살려고 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 하려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아간다. 뿐만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받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의 징계를 받고,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고 극기와 인내로 나가는 것은, 내세의 소망 즉, 장차 주님처럼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사람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이 소망이 없다면, 이 세상만으로 끝나고 멸절된다면 기독 신자는 평생토록 헛된 수고를 하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기독 신자는, 잠시 머무는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바라보며 천국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산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잘되는 것에 삶의 목표를 두지 아니하고, 장차 하나님 앞에 어떤 인정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과, 어떤 상급과 존귀와 영광을 누릴 것인가에 목표를 둔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도 심령이 평안하고 세상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나님 없는 곳에서 천날을 살아도 그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다(시 90:10). 주의 궁정에 거하는 생활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사는 생활이다. 그곳에는 평안과 즐거움과 영생이 있다. 또 그 생활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생활이다. 이 비밀을 깨달은 레갑 족속의 선조 요나답은, 후손들에게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고 엄히 명령하였다. 후손들은 요나답의 명령을 잘 준행하여, 유다인이 부끄러워 할만큼 이 전통을 250년 동안이나 지켜 내려왔다. 그래서 예레미야서 35장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 해도, 그들은 조상 때부터 계승되어 내려온 경건생활의 중요함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거부하였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나그네처럼 임시로 우거하는 생활을 했다. 이같은 레갑 자손의 경건한 생활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유다인들을 징계하실 때에 레갑 족속에게는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축복해 주셨다.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라 하였다. 성도의 나라는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에 있으며, 우리는 이 세상 나라의 시민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의 시민권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천국주의요 내세주의이다. 우리는 하늘나라 천국의 시민권자이므로, 그 천국의 주인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며, 언젠가 그 나라에 들어 갈 것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와 슬픔,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나가는 자이다. 이는 마치 지금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아파트에 당첨되어 입주할 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잠시 후에 더 좋은 집에 들어갈 것을 고대하며, 현재의 당한 어려움을 잘 참고 기다리며 이겨 나갈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삶을 산 것만 심판대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三.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9, 14-16)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도 좋고 살아 있어도 좋다. 왜냐하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주남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므로 좋고,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 주를 위한 생명운동에 일비지력을 담당하므로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내세를 바라보고 이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이 세상을 떠나느냐 머무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세계가 되었든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화롭게 하여 그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그것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이다. 자신은 죽든지 살든지 어떨 부끄러운 일을 당할지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니며,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이것은 바울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만 위하는 생활을 한 것을 말한다. 우리도 우리를 통하여 진리가 더욱 더 나타나고 하나님이 더욱 더 영광을 받으시고 그리스도가 더욱 더 존귀히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가 존귀해 진다면 우리는 문지기라도 좋고, 종살이를 해도 좋고, 감옥에 가도 좋고, 능욕과 죽음을 당해도 좋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진리만 세워나가면 그리스도가 존귀해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살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믿고,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를 믿고, 예수를 위하여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여야 한다(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요시야는 8세에 유다의 제 16대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31년을 치리하였다. 그는 비록 39세의 짧은 일생을 보냈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였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죽기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살았으며, 히스기야 왕처럼 신앙 양심을 쓰고 하나님 앞에 바로 행하였다. 그는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하였다(왕상 14:8). 역대기에서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라고 한 표현은, 여호사밧(17:3)과 히스기야(29:2), 요시야에게만 사용하였으며, 특별히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말은 오직 요시야에게만 사용하였다. 이는 요시야가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한다.(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상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또한 그의 명령을 순종하고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그 뜻에 합당히 행하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한다. 좁은 문은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문이고, 또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문이다. 좁은 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구원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하는 일군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일군들이며, 우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결론

1.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

2. 주님과 함께 거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3.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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