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by shamerin posted Feb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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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본문 : 말 3:8-12

 

주전 538년 고레스 왕에 의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재건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생각한 대로 메시야가 오시지 않자, 그들은 불신앙에 빠져 형식적인 제사와 십일조와 헌물을 소흘히 하고 병들고 다리 저는 흠있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제사장들은 이처럼 불신앙으로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가르치거나 책망하거나 바른길로 인도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 재앙이 임하여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이 닥쳐, 나무들이 말라 죽고 짐승들도 죽어가기 시작했고, 메뚜기 떼가 와서 농작물을 먹어 치웠다.

 

그들이 돌아온 지 100여 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너희의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7절). 즉, 그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우상을 섬겼났기 때문에 이같은 저주와 궁핍과 환난을 당하는 것이라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하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그들이 재앙을 당한 원인에 대해 말씀하셨다(8-9절). 어느 시대나 믿는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전 12:13). 심은대로 거두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다. 하나님이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아 누리지만, 거역하고 배반하면 칼의 삼키움을 당하는 것같은 재앙을 면하지 못한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켄델 목사는 “목사가 성도들이 부담을 가질 것을 염려하여 십일조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그 교회 성도들을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십일조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여 가난하게 만든다. 이것은 목사가 교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인들에게 해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듣기 싫어한다고 십일조 설교를 안 하는 것은 병든 아이에게 약이 쓰다고 먹이지 않아서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번영신학을 주장한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는 "나는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십일조의 법칙을 신뢰한다"고 했다. 어떤 설교가는 “십일조의 삶은 기독교 신자의 A.B.C. 즉 기초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명하신 십일조 생활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하는 말씀이다. 본문을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인지 우리가 분명히 알고 바로 행하여 예기치 않은 재앙을 당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예정된 분명한 복을 받아 누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다

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의 사대 연합군을 격파하고 롯과 재물 모든 인민들을 다 찾아올 때, 살렘 왕으로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 아브람이 전리품 중에서 십분 일을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준 것은 곧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십일조 기사이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자신의 승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인한 것이라는 멜기세덱의 말을 인정한 것이다. 즉, 아브람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 감사하여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어떤 신학자나 일부 사람들은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에 속한 것이므로, 신약시대에는 필요 없는 것이라 하는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즉,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는 율법이 생기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또는, 어떤 외부적 강압을 받은 적이 없이 다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하여 드린 것이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율법에 얽매이거나 혹은 복을 받을 목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며 나의 나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십일조 제도를 두신 목적이며,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십일조의 근본정신이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1) 땅의 소산과 육축의 십일조 (레 27:30-33)

27: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현대어성경은 “밭에서 나는 곡식이나 나무에서 거두어 들이는 과일이나, 땅에서 거두어 들이는 소출 가운데에서 그 10분의 1은 나 여호와의 것이다. 내게 바쳐야 하는 거룩한 것이다”라 하였다. 땅에서 추수한 곡식과 나무에서 수확한 열매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십일조 제도를 말씀하신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2)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 (민 18:21-32)

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모든 지파들에게는 땅을 분배하였으나, 레위인에게는 주지 않고 전적으로 성전의 일만 맡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주어 그들의 생활을 책임지도록 했다. 레위인들은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의 1/10을 다시 떼어 하나님께 거제로 드려야 했다. 그들이 성막에서 봉사하지만, 다른 이스라엘 지파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백성이기 때문이었다. 레위인들이 낸 십일조는 제사장들의 분깃으로 돌아갔다.

 

3) 가난한 자를 위한 십일조 (신 14:28~29)

14:28-29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 저축하였다가, 레위인이나 성 중에 사하는 고아와 과부들을 배부르게 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였다. 십일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소유물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거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으로 여겨 심각한 책망과 저주가 뒤따르게 된다. 반면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으로, 그 사람에게 반드시 그 소유의 복을 넘치도록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다.

 

양계장을 경영하는 성도가 교회 출석은 열심이었으나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 목사님이 "우리가 가진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라고 권면했다. 이에 그가 "목사님, 이제부터 주일에 낳는 달걀을 십일조로 드리겠습니다."대답했다. 그때부터 매주 수백 개의 달걀을 십일조로 드렸으나 날이 갈수록 달걀 수가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아예 가져오지 않았다. 목사님이 다시 그에게 십일조를 권면하자, "이제 우리 닭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때문에 주일에는 알을 낳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십일조를 드릴 수 없습니다“고 했다. 그는 재물이 자신의 것으로 알았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십일조는 우리가 가진 것의 십분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 중 십분의 구를 우리가 받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창 47:23-24에 요셉이 애굽 백성들에게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하였다. 요셉이 애굽 백성들에게 전지를 분배해 주고, 농사할 식량 종자도 주며 농사하게 하고, 추수하여 얻은 것의 5분의 1을 국가에 바치고, 5분의 4는 그들이 소유토록 하였다. 이에 애굽 백성들은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창 47:25).

 

요셉의 선정에 감복한 애굽 백성들은 자원하여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 애굽 왕 바로의 종이 되기를 스스로 약속하였다. 이미 모든 전지와 그들의 몸까지도 다 국가에서 샀기 때문에, 추수하여 절반을 바치라고 해도 감지덕지할 것인데, 수확의 5분의 1만 바치라고 한 것에 너무나 감사, 감격하여 자기 스스로 바로의 종이 되어 섬기겠다고 하였다. 불신자들도 은혜를 받으면 감사하며 이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종이 되어 그 주인을 섬겨 은혜를 보답하려는 것이 보통이다. 하물며 우리를 억만 죄악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기업으로 얻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셔서 수고한 것에 대한 열매를 거두게 하시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십분의 일을 드리라고 하는데, 이것도 바로 하지 못한다면 불신자 애굽 백성보다도 못한 것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헌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므로, 십일조는 헌금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질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고, 누리게 하시므로 소유하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도 신자는 의와 인과 신도 행하고, 십일조를 바치라 하셨다. 십일조의 근본 취지(趣旨)는 자신의 소유에 대한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인정과, 이웃 사랑(구제) 및 성전 운영이었다. 십일조는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에나 마땅히 드려야 한다.

 

말라기 선지자 때에, 이스라엘 온 나라가 마땅히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으므로 8절에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다’ 하셨다. 그 결과, 온 이스라엘에 저주가 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끊어져 온 나라가 고통 가운데 빠졌다. 일본의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는 “만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마치 그것들이 자기 것인 줄 알고 도둑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배은망덕한 자로 여김을 받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모든 것을 잃고 곤고함 가운데 처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청지기로서, 소득의 십분의 일을 그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돼지와 젖소가 대화를 하다가 돼지가 불평했다. “사람들이 왜 나보다 너를 더 좋아하지? 나도 사람들에게 햄도 주고, 베이컨도 주고, 삼겹살도 주어 도움을 주는데 왜 사람들이 왜 너를 더 인정하고 나를 싫어하지?”하고 물었다. 젖소가 “네 말이 맞아. 그런데 너는 죽은 다음에 네 것을 주지만, 나는 살아있을 때 젖을 짜서 주니까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하는 거야.” 죽은 다음에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있을 때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되고 인정받는 것처럼, 건강할 때, 물질이 있을 때, 시간이 있을 때,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다.

 

 

二. 온전한 십일조는 성도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고, 그 축복의 명령은 바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세의 대신학자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기록된 대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서 그의 자녀를 복되게 하신다”라고 말했다. 성도들 가운데 풍성한 물질의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십일조를 바치되 물질의 풍성한 것으로 갚음 받지 못하는 원인은, 아직도 그 바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성실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먼저 영의 신령한 것으로 채워 주시고, 다음에 육신의 물질도 풍성하게 주신다. 온전한 십일조‘’, 수입의 정확한 십분의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신약시대는 십일조가 폐기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은, 율법적인 강제성의 차원에서는 일리가 있으나, 은혜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말씀하셨다. 18:12에 바리새인은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예수님 시대에도 유대인의 가장 엄격한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율법 아래서 의무적으로 드리던 구약 성도들의 차원을 넘어서는 자발적 헌신이 필요하다. 구약의 십일조로 당시 사역자들인 레위인의 필요가 충족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전념했던 것처럼, 신약시대에도 성도들의 십일조로 여전히 목회와 선교의 사역자들이 일상의 공급을 걱정하지 않고 목회 사역과 선교 사역에 헌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초대 교회의 어떤 문서에 “율법을 따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의무이러나, 십일조 이상을 드리는 것은 은혜 받은 성도들의 특권이다”라는 말이 있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하나님의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십일조에 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은혜와 복을 주신다 하셨다. 11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하였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실패가 없도록 해주신다.

 

아이를 임신했는데 도중에 잘못되어 유산을 하게 되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인가? 사업이 잘 되는 것 같았는데 도중에 되지 않는 것, 거래가 잘 되다가 도중에 망가지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은 황충이 먹어서 그렇고, 기한이 되기 전에 떨어져서 그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재난과 재해를 막아주시고 피해를 막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조 모서가 쓴 『삶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 시리얼 왕 크로웰』이라는 책에 보면, 미국 퀘이커 오츠사의 창립자 헨리 파슨스 크로웰은 전도자 무디의 설교를 듣고 “한 평생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돈을 벌겠습니다” “저는 무디 선생님처럼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줄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도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돈을 벌어서 무디 선생님 같은 분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돈을 벌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이름은 절대 드러내지 않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겠습니다!”라고 서원했다. 후에 그는 그 서원대로 89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사럽을 통해 얻은 수익을 주께 드리는 삶을 살았다. 죽은 후에도 자신의 재산이 선한 일에 쓰여지도록 신탁(Trust)을 만들어 그가 남긴 돈으로 전 세계 해외 선교, 교육 선교, 사회 선교를 위해 쓰게 했다.

 

10절에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였다. 현대어성경은 10절을 “너희는 수확한 다음에 십일조를 정확하게 나의 성전에 가져다 바쳐서, 제사장들에게 먹을 양식이 있도록 하여라. 그런 다음에 양식이 모자랄까봐 염려하지 말아라. 내 말을 꼭 믿어라. 내가 너희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는 복을 너희가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주실 때에는 인간들의 셈법과 달리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신다(눅 6;38).

 

"내가 하늘의 문을 열지 아니하나 나를 시험해 보라"는 말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물질로 갚아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수치상으로는 내게 유익인 것처럼 보여지나, 십일조 안 하면 대개 그 돈을 메뚜기나 황충이나 병원에 갖다 바치고 하여, 나중에 보면 결국은 손해이다. 4: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물질을 바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쓸 것을 채워 주신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밭에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씨앗을 심으면 땅 속에서 썩어지는 것 같지만 많은 열매가 맺힌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둔다(고후 9:6).

 

십일조의 진정한 비밀은 “자신이 드린 십일조가 하나님의 밭에 뿌려져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 씨앗”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깨달은 록펠러는 이 말씀대로 행하여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이처럼 온전한 십일조는 풍성한 복을 받게 한다. 연보하는 것은 신령한 것을 심는 것이므로, 힘써 연보하는 자는 신령한 것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거두게 된다. 물질을 아끼려고 하다가 신령한 것에 손해를 보게 되면 어리석은 일이다. 물질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신령한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복을 받기 위한 조건이라기보다는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본분과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성도는 십일조를 통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확인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웃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야 한다. 그리고 자원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예비하신 풍성한 복도 받아 누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결론

1.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다.

2. 온전한 십일조는 성도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