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신앙관을 가지라

by shamerin posted Feb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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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올바른 신앙관을 가지라

성경 : 마 6:24-34

 

‘신앙’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절대 신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절대 유일신으로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믿음(Belief))과 신앙(Faith)은 같은 의미로도 사용되어 구분하기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 ‘믿음’이란 어떤 명제나 사실을 진리라고 확신하는 것이며, ‘신앙’은 믿음을 바탕으로 절대자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개역성경은 ‘신앙’이라는 말을 두 번(1:27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 6:1..하나님께 대한 신앙과..)사용하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믿음’을 사용했다. 그러나 영KJV 어성경은 대부분 ‘믿음’에 ‘faith’를 사용하였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And he believed in the LORD; and he counted it to him for righteousness)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Even so faith, if it hath not works, is dead, being alone)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But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he that cometh to God must believe that he is, and that he is a rewarder of them that diligently seek him.)

 

본문 30절 하반절에 예수께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신 말씀의 믿음도 faith였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1884년 그의 작품 “What I Believe”(내가 믿는 것) 가운데 “신앙은 무엇인가(what is faith)”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으며,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세상에서 나의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행할 때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쉽고 즐겁다고 믿는다.

나는 이러한 가르침이 보편적으로 지켜지기 전에, 심지어 그것을 나 혼자 행한다고 할지라도,

마치 불타는 집에서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문을 찾은 사람에게 다른 방법이 없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파멸에서 나의 삶을 구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 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없다는 것을 믿는다.

세상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았던 나의 삶은 괴로웠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는 삶이 이 세상에서 생명의 아버지께서 내게 계획하신 행복을 준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이 가르침이 모든 인류에게 축복을 주고, 피할 수 없는 파멸로부터 나를 구원하며, 지상에서 가능한 최고의 행복을 준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14세 때 주님을 만나 올해 103세를 맞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나는 스스로 자라기 보다 신앙이 나를 자라게 만들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작년에 출판한 <김형석 교수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신앙은 인격적 체험에 속한다. 신앙적 체험을 겪은 사람은 후에 그 체험 내용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게 되고, 신학을 먼저 택한 사람은 후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완전한 신앙을 가지게 된다. 나는 먼저 체험을 했고 그 체험의 내용을 서서히 이론적으로 정립해가는 순서를 밞았던 셈이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음악가족 ‘정트리오’는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정명훈으로 구성ㄷ히ㅣ었는데, 정명화는 오래전 CTS 기독교 TV에서 자신들의 성공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7남매를 신앙으로 교육해 온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덕분이라고 간증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남과 비교하는 대신 자신감을 갖도록 항상 잘하는 것을 칭찬하고 부각시키며 격려해주었다. 그녀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은 ‘하나님께 맡기는 담대한 믿음’이었다. 정명화가 미국 줄리아드 음대로 유학을 떠날 당시에 사업이 기울어 가정 형편이 힘들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걱정하지 말고 떠나라면서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다음날이면 밝은 모습으로 극복하는 어머니의 긍정적인 신앙관은 자녀들에게 커다란 비전과 힘과 성공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인생관, 가치관 특별히 성도가 어떤 신앙의 태도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각자의 인생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一.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라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로서, 피조물의 생사화복, 흥망성쇠, 부귀영화, 빈부귀천을 당신의 뜻대로 주장하시며,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뜻대로 다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우주와 이 세상 모든 공간에 완전한 존재로 서로 다른 곳에서 동시에 서로 다르게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 세계를 움직이시고, 말씀하신 것을 만능으로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자연 현상이나 국가의 흥망, 우리 개인의 일생도 모두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대로 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믿는 것이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알고 의뢰하며, 그의 생명의 역사와 능력의 보호를 받는 자는 천국의 삶이 보장되어 아무 근심 없이 살 수 있다. 공동번역은 25절을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라고 하였다. 목숨이 음식보다 몸이 옷보다 소중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나, 그 소중한 목숨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목숨과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양식과 옷도 분명히 주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매일 매일의 삶 또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영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 호흡을 유지시켜 주셔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알고 확실히 믿는 사람은 아마도 내일 일을 염려하지도 않고, 생명을 유지하가에 필요한 육신의 것을 위해 염려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 생명을 주신 주님이 그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데 필요한 것도 함께 주실 것은알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낳은 산모가 그 아이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젖이나 옷가지를 공급하여 주는 것처럼, 우리 성도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도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

 

32절에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별도로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그토록 힘써 구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성도에게도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며 이미 우리를 위해 준비해놓으셨다. 다만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절대주권자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불신자들처럼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일 뿐이며, 믿음이 없는 증거이다. 이 세상에만 소망이 있는 불신자들은 날마다 무얼 먹을까, 무얼 마실까, 무얼 입을까 하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염려, 걱정, 근심하다가 일생을 마친다. 그들은 소망은 땅에 있으므로 육신의 것이 결핍하면 죽는 줄로 알고, 그것을 남보다 더 많이 얻기 위해 끊임없이 염려하며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주님은 26-29절에서 공중에 나는 새들이나, 들의 백합화를 비유를 들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고 그들이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공중의 새는 곡식을 심거나 거두거나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양식을 주어 기르신다. 들의 백합화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하찮은 존재이지만, 옷 짓는 수고를 하지 않아솔로몬이 입은 어떤 옷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답고 향기를 내게 하신다. 공중 나는 새가 부지런한 먹이를 구하고, 백합화가 꽃을 피우기 위한 노력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 양식을 주시고 솔로몬의 옷보다도 더 아름답고 좋은 향기를 내게 하신다. 이처럼 하찮은 새나 백합화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기르시는데, 하물며 피로 값 주고 산 천하보다도 더 귀한 성도들을 양식이 없어 주리게 하거나 마실 것이 없어 기갈을 당하게 하거나 혹은 입을 옷이 없이 헐벗도록 내 버려두실 리가 없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먹고 마시고 의복이나 신이 헤어지지 않도록 해 주셨고, 편안히 쉴 수 있도록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셨다. 고기를 원할 때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어 코에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먹도록도 해 주셨다. 농부가 소를 사다 놓은 후에는 소가 염려하지 않아도 소에 팔요한 모든 것을 주인이 마련해 준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하심을 확실히 믿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육신의 것을 위해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염려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데서 나온다. 그러므로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염려나 근심은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마귀는 염려를 올무로 사용하여 성도를 포로로 잡아 자기 종을 삼으려 한다. 사람이 염려한다 해도 키를 한 치도 더 크게 할 수 없다. 무슨 일이나 염려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되게 해 주셔야 된다.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로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성도가 염려해야 할 것은, 육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믿는 믿음이 없는 것을 염려해야 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욥, 다윗, 히스기야,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등등 여러 신앙의 선진들도 염려할 것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그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마침내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셨던 복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일에도 염려하지 말고 주 안에서 평안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는 딴 근심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자.

 

 

二.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라

예수께서는 본문을 통해 의식주를 위해 일하며 또 그것을 위해 염려하는 것이 잘못된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우선순위를 바로 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데 몰두하며,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한다(사 55:2). 우리에게 있는 재물과 마음과 시간, 힘을 영이 사는 일이 아닌 것에 사용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위한 일은 결코 시간 낭비, 물질 낭비가 아니고, 우리 인생의 삶 중에서 가장 귀한 일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주의 말씀대로 주의 뜻대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것은 없어지지 않고 장차 자신의 상급이 된다. 특별히 성도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여 봉사하고 수고한 것은 하나님 앞에 결코 헛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에 공짜는 없다. 인생을 살면서 최선의 것은 최선의 자리에 놓고, 차선의 것은 차선의 자리에 놓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에도 우선순위를 바로 해야 한다.

 

33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고, 현대어성경은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께서는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이방인들처럼 육신의 것을 위한 것보다 먼저 행하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신령한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육신에 필요한 것을 풍족히 주실 것이다.

 

25:20-21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 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 하나님께서 제칠년 안식년에는 안식의 해로 곡물을 심거나 수확하여 저장하지 말라 하셨다. 그런데 안식년과 희년에 휴경(休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면 식물의 부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기쁨과 풍요 속에서 지킬 수 있도록 안식년 전 해 곧 제 6년째의 소출을 평소보다 훨씬 많게 하여 희년까지 3년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피조물에 대해 절대 주권을 가지고 명령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무한한 축복을 내리신다.

 

요즈음 유행하는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 gospel of success)은,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신앙’만 가지면 하나님으로 하여금 ‘항상’ 영적으로뿐 아니라 물질적으로, 즉 부와 건강으로 축복하게 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 신학이다. 예수 믿으면 무병장수(無病長壽)하고 만사형통(萬事亨通)하며,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린다고 가르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가르침에 마음을 두고, 예수 믿는 것을 마치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도 이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으며, 온갖 병치례를 다 할 수도 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우리보다 월등한 신앙을 가졌지만, 그는 살아있는 종합병원이란 소리를 들으며 27가지의 병을 앓다가 55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만일 어떤 성도가 교회에서 봉사의 일을 하거나 물질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물질적 축복이 자신에게 임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바로 기복신앙이다. 기복신앙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과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보다, 자신의 형통과 소원 성취와 입신양명(立身揚名), 무병장수, 자손 번영 등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초보적이고 현세적 신앙 행태를 말한다. 성도는 이미 받은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아무 조건 없이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신령한 영적 은혜와 함께 불신자들이 그토록 간구하는 육신에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라고 33절에 약속하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영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성도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세상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면, 불신자들처럼 육신의 것을 구하기 위한 수고를 하지 않아도, 의인의 삶을 살기 위해 세상의 것을 희생한 것보다 더 많은 영의 신령한 것과 육신의 기름진 것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더하여 주신다. 불신자들은 이 신령한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장차 망할 성과도 같은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세상에서 남보다 잘 먹고 잘살고 출세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 성공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적이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최우선권을 두고 그것을 얻기 위해 불철주야 수고하나, 그것은 헛된 일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자기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고 드린 믿음을 인정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었으며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았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자기중심의 인본주의 사상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로 사는 것이며, 구원받은 성도가 더이상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600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지은 호라티우스 보나르의 동생 앤드류 보나르(Andrew Bonar) 목사는 첫째, 예수께 말씀드리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둘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셋째, 성경을 읽기 전에는 어떤 책도 읽지 않겠다는 믿음 생활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했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삼상 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선지자 사무엘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만 섬기라 하였다.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만 섬기며 살려고 할 때, 도움의 돌이 되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만능으로 역사하여 블레셋을 물리치고 빼앗겼던 땅을 회복하고, 주변 아모리 사람들과 화평하게 되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삶,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는 삶을 살아 형통한 자가 되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고 형통한 자가 된 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매사에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를 받으며 하나님의 일을 먼저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제일 먼저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왔다.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의 성전을 짓도록 했다. 매사에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기에, 하나님께서도 다윗과 함께하시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롭게 행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셨다.

 

삼하 8:6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말씀대로 순종한 것뿐이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다른 이보다 지혜롭게 행하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왕상 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구하라하셨을 때, 그는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해달라 하였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올바르게 통치하고 재판하기 위해 요구되는 총명과 분별력을 구했다. 솔로몬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지혜를 구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 기뻐하시면서, 그에게 전무후무한 지혜와 총명을 주셨고,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도 주셔서 열왕 중에 솔로몬같은 자가 없게 하셨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결론

1.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라

2.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