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by shamerin posted Dec 26,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본문 : 딤후 4:6-8

제목 : 의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육신을 가진 자는 누구나 하나님이 오라 하면 즉시 갈 수 밖에 없다. 보이는 세계는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내세는 영원하다. 현대인의 성경은 6절을 “이미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나에게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습니다”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순교를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자신이 의의 재판장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확신하면서, 디모데를 비로솬 모든 믿는 이들이 이 상을 받는 자리에까지 나갈 것을 권면하였다.

 

‘면류관'은 당시 운동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수여하던 것으로, 성경주석가 트렌치는 '왕관'이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것이라면 '면류관'은 성도들에게 합당한 것이라 하였다. 바울이 특별히 '의의 면류관'이라고 한 것은, 이 면류관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의인들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성도에게는 선한 싸움과 악한 싸움이 있다.

선한 싸움은 구원받은 성도가 주와 복음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싸움이며, 자기 영혼이 잘되어 구원을 이루기 위한 싸움이며, 세상 풍조와 관계없이 자기 믿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싸움이다. 반면에 악한 싸움은 오로지 자기 개인의 유익만을 위한 싸움이며,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거역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려는 싸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내버리고 범사를 자기 생각대로 하려는 싸움이다.

 

선한 싸움은 악한 영과의 영적 싸움이다.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성도의 선한 싸움은 육신의 완력으로나 혈기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어두움의 지배자 마귀와의 영적 싸움이다. 선한 싸움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 악한 영(마귀)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육신의 완력으로나 혈기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입고 싸워야만 한다. 전신 갑주 가운데 유일한 공격 무기인.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악한 마귀를 물리쳐 이길 수 있다.

 

선한 싸움은 내적 투쟁이다.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의 뜻대로 하면 육체가 거스리고 육체의 소욕대로 하려고 하면 성령이 거스린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롬 7:24)고 하였다. 이것이 성도의 내적 투쟁이다. 중생한 성도는 누구나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싸우는 내적 투쟁이 있다. 즉 하나님의 법(말씀)을 즐거워하며 선을 행하고자 하는 중생한 영과, 여전히 타락한 육신의 욕심을 따라 악을 행하고자 하는 부패성의 싸움이다.

 

선한 싸움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싸우라'의 헬라어 "아고니주"는 경기에서 '시합하다', '시합에 이기기 위해 애쓰'는 뜻이다. 운동선수가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듯이, 성도는 세상과 마귀의 권세, 불신앙과 싸워야 한다. 경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선수의 자격이 없듯이,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는 사람은 성도의 자격이 없고 후에 상급도 없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성도는 선한 싸움을 위해 부름 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위한 선한 싸움을 싸울 의무가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 영생을 취하게 된다. 영생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과, 또 우리 영혼이 현세에서 날마다 새 생명으로 살아나가는 것, 영혼이 질적, 양적으로 자라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영이 말씀으로 성장하고 창성해 나가는 것이 영생을 취하는 것이며,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선한 싸움의 결과에 따라 천국에서 상급이 다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만큼 영적 인격과 권세와 영광이 큰 자가 있고 작은 자도 있다. 고전 3: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어떤 성도는 구원은 받았으나 불 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것처럼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같은 자도 있다. 천년 왕국과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믿음 지킨 성도에게 각각 일한대로 상을 주신다. 많이 일한 자에게는 열 고을 다스리는 것만큼 큰 것을 맡기고, 그만한 권세와 영광을 주신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쉬지않고 싸워야 한다.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자신이 이룬 것을 보고 얻었다 하거나 이루었다 하지 않고, 여전히 부족한 줄로 여기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만 보고 달음박질 하였다. 예수께서도 9:62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것, 과거의 모든 것은 “뒤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현재 달음박질을 잘하는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다. 앞에 있는 것, 즉 푯대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잡으려고 도달하려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려고 힘쓸 것뿐이다.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워 육신의 부패성을 점점 벗어버리고 중생한 영이 점점 자라나,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해 나가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그때 의의 재판장으로부터 영광스러운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二. 달려갈 길을 마쳐야 한다

전 7:8에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 하였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은, 큰 일을 시작하고 중간에서 그만 두는 것을 말한다. 큰 일을 많이 시작하기만 하는 것보다는, 작은 일이라도 끝까지 참고 성공시키는 것이 낫다. 일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맺는 것은 더 중요하다. 더구나 옳은 일을 시작했으면 어떠한 환난과 고난이 와도 잘 참고 계속해서 그 일에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도는 모든 일에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에게 붙잡혀 달려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1981년 흑인 가운데 가장 장수한 찰리 스미스가 130세의 나이로 플로리다 주 바토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노예로 태어나 미국 남부와 서부에서 살며 매 맞고 모욕을 당하며 굶주리고 병들어 죽을 고비를 20번도 넘게 경험하며 고통 가운데서 살았다. 130년간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 챨리 스미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을 방문한 스티븐스 목사 앞에서 “하나님 내가 흑인으로 태어나게 했음을 감사합니다. 고통스러운 노동 생활도 감사합니다. 130년간 언제나 내 곁에 계셔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육신은 고통의 삶을 살았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마지막에 하나님의 품에 안긴 챨리 스미스야말로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달려간 승리자이다

 

‘달려갈 길’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가리킨다.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믿는 사람에게는 각자의 달려갈 길이 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는 자신의 생명도 중하게 여기지 않고 달음박질하였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생각을 좇아 마귀의 종살이 하다 결국 사망을 거두게 되지만, 영을 좇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의를 행하여 생명과 평안을 얻는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받은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일생 동안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달려가며 충성을 다했다.

 

20:22-23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바울은 금번에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거기서 환난과 결박을 당할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성령이 명령하신 것을 순종하는 것이고, 신앙양심을 바로 쓰는 것임을 아았기에 환난을 각오하고 올라갔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매인바 되었으므로 풀무 불에 들어갈지언정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고, 다니엘도 사자 굴에 들어갈지언정 신앙양심을 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성도의 달려갈 길은 좁은 길이다.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가 달려가는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기도 어렵고 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더욱이 길고 좁고 험하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간다. 그러나 주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넓은 길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멸망한다고 말씀하셨다.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자이므로, 세상에서 제재받는 것도 많고, 여러 가지 손해를 당한다. 세상 사람들은 미련하다 비웃지만, 이 길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며, 생명이 사는 길이며, 면류관 상을 받는 길이다.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야 한다.

고전 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달음박질을 하면서 향방 없이 한다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목표가 없으므로 성공할 수 없고 상을 받지 못한다. 또 아무리 열심히 싸운다고 해도 상대를 모르고 싸우면 허공을 치는 것밖에 안 된다. 믿는 사람이 목표를 바로 정하고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그리스도이다.

성도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고 빛의 갑옷을 입어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신앙의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은 영이 살아서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점점 닮아가게 된다. 성도가 싸워야 할 싸움은 선한 싸움인데 허공을 치는 싸움을 하지 말고 대적을 분명히 알고 싸워야 한다. 성도는 예수를 믿는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진리를 세우는 것과, 자기 영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과 성도는 이 선한 목적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상 받는 자리까지 달려가야 한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나, 믿은 후에는 이 세상에서 주와 복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자신이 행한 대로 천국에서 보응을 받는다(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모든 성도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그것은 공심판이 아니고 구원받은 성도적 행위에 따라서 책망과 상을 주는 사심판이다. 그때에 구원을 잘 이루어 간 성도는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되고 구원을 잘 이루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받지 못한다. 어느 경기에나 상 얻는 자가 하나뿐인 것처럼 성도들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신앙의 경주를 하여야 상을 받을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달려갈 길을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三. 믿음을 지켜야 한다

14:23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하였다. 믿음으로 좇아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이므로 곧 죄가 된다. 그러므로 신앙 양심에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행하는 것은 모든 것이 죄가 되고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된다. 믿음으로 행한 것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말씀에 어긋나는 것, 신앙 양심에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행하는 것은 죄가 되고, 그 길로 가는 사람은 악인이 된다.

 

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한 말씀은, 믿음의 정의를 말한 것이 아니고 믿음의 결과를 말한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만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며, 공의로 심판하여 심은대로 거두게 하는 것을 믿는 것이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하게 될 것을 믿는 믿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히 11:38). 그러나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핍박이 온다. 육신이 제재 받는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도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믿음으로 해야 한다. 딤전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경기하는 선수가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했어도 실격이 되고 상을 얻지 못한다. 성도도 아무리 달음박질을 잘했다고 하더라도 성경 말씀대로 하지 않으며 아무 유익이 없다. 성도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맟도록 충성하고 봉사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써 한 것이 허공을 친 것처럼 헛된 것이 되고 오히려 재앙을 받는다.

 

10:1-2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명하지 않은 불로 분향하다가 벌을 받아 죽었다. 하나님의 불은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는 응답과 생명의 불이 되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불이 된다.

 

평생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갔다고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았다고 하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찬송가 #607장 “내 본향 가는 길” 3절 가사에 "평생에 행한 일 돌아보니 못 다한 일 많아 부끄럽네. 아버지 사랑이 날 용납하시고 생명의 면류관 주시리라 하였다. 면류관은 영광의 상급을 말하며, 이 세상에서 의를 이룬 것이 주님 오실 때 우리의 영광스런 상급이 된다. 주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므로 편벽되거나 오판하시는 것이 없이 공평하게 판결하셔서, 누구든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

 

 

결론

1.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2. 달려갈 길을 마쳐야 한다.

3. 믿음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