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5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본문 : 벧전 2:1-5

제목 :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라

 

 

1절에 ‘그러므로’라 한 것은, 1:24-25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 한 말씀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전하여 믿게 한 복음은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영으로 살며,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혼이 자라나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는 것이며, 복음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 된다(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라”는 말씀은, 구원받기 위한 어떤 선한 행위를 해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고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면이 성장하고 진보하여 그 인격과 성품이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구원은 죄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며,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죄에서 점점 벗어져 나와 그리스도를 닮아나가는 것이다.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믿는 그 때에 법적으로 구원을 받았고 영이 중생하였으나, 육신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육신의 부패성을 점점 벗어버리고 중생한 영이 점점 자라나는 것이 곧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은,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구원을 잘 이루어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가 처음 믿을 때는 신앙도 어리고, 영도 어려서 어린아이와 같다가 점점 자라나서 장성한 자와 같이 된다. 성도가 이 세상의 여러 가지 환난 속에서 말씀을 지키며 연단을 받아야 구원이 이루어지고 영이 자라난다. 일생동안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천국에 간 사도바울과 일생 동안 죄만 짓다가 죽을 때에 겨우 회개하고 믿고 천국에 간 사람과 같을 리가 없다. 만일 같다고 하면 세상에서 힘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가고 믿음을 지킬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하늘나라에 가면 세상에서 많이 자라난 성도와 그렇지 못한 성도 간에 상급에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전심전력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기 사명을 다하고, 말씀을 지켜서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 구원에 이루도록 자라나려면,

 

一.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1-3, 영적인 면)

성도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의 영이 자라나야 하고, 영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한다. 본문 1-2절에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하였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가 과거 마귀의 종살이하던 습관과 행동을 버려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장할 수 있다. 4;22-23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였다. '옛 사람'은 허물과 죄로 인해 죽은 자이며, 본질적으로 마음이 악하여 죄에게 종노릇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다. 신자가 이 옛사람의 지배를 받고 살면 심령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되고, 죄를 지어도 가책이나 자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옛사람으로 행하는 자는 1:29-31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하였다. 예수께서도 15:19-20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라 하였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기 위해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 하였는데, 이런 것들은 자기 일신의 유익을 위한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것들로서 성도를 더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새 옷을 입으려면, 먼저 더러운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 더러운 옷을 벗지 않고 그 위에 새 옷을 껴입는다면, 새 옷을 입은 것처럼 겉으로는 보일지 몰라도 더러운 옷으로부터 나는 악취로 인하여 그 사람은 여전히 더러운 사람으로 여김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영의 새 사람을 입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심령이 새로워져야만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옛사람 때에 도모하고 경영하고자 하던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어긋나거나 불순종하면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그것을 통한이 여기는 심령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욕심에서 나오는 모든 악한 생각과 수단, 방법 즉, 인본주의적 발상을 버리고 만사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성령이 충만한 신본주의 사람으로 변화하라는 것이다. 매사를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나가며, 범사를 신앙양심에 비추어 가책을 받지 않는 것만을 행하는 신본주의 사람으로 심령이 변화되어야 한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기 위해서는 옛사람의 죄악 된, 사상과 행동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팻 로벗슨 목사는 예일대 법학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며 은행통화위원장이었다. 그가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날 한잔하러 가자는 친구들의 요청을 뿌리치고 기쁨으로 집에 돌아와 “여보! 나 구원받었어.”라고 외쳤다. “미쳤나.”하는 아내의 소리에, “나 미친게 아니야 구원 받았다고.”라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수집해 두었던 값비싼 술들을 꺼내 쏟아 버리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그의 아내가 “아니 왜 이래요? 이것이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하면서 그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마지막 병의 술까지 다 쏟아 버렸다.

 

혹시나 우리 안에 털끝만한 악독이나 궤휼, 위선이나 시기, 비방이나 옛사람의 행실이 남아 있다면,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어버려야 한다. 이런 것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영적 생명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전 5:22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하였고, 본문 1절에는 대표적으로,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 하였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려면, 소극적인 면에서는 죄악을 버려야 하고, 적극적인 면에서는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야 한다. 성도의 영이 성령의 인도를 힘입어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악행을 떠날수록 하나님이 가까와지고 새 생명의 역사가 커진다. 이것이 영의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더러운 욕심을 우리 안에서 내어 버리고, 대신 그 빈자리를 신령한 젖으로 채워 나갈 때에 거룩한 자로 만들어지고 영혼이 자라나 영적 성전을 지어 나갈 수 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현대인의 성경은는 2절을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성도의 영은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떄에 살 수 있고 자라날 수 있다.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어 먹이신 목적은, 사람이 육신의 눈에 보이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려 함이었다. 즉, 구원빋은 성도는 육신의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영이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사모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부르짖는 자의 영혼을 만족케 해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같이 사모해야 된다.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입을 연다는 것은 소망을 품고, 마음 문을 열어 은혜받을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입을 크게 벌리면 벌릴수록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사모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천국의 신령한 보물은 우리 성도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그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쓰는 사람에게 허락된다.

 

3절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하였다. 마치 갓난아이가 젖의 맛을 알고 난 후에 그것을 좋아하고 찾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체험한 경험이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가기 위해 말씀을 더욱 말씀을 사모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라는 것이다. 예수를 믿었어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를 위해 버려야만 하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아무리 오래 믿었다고 해도, 세상에서 자기를 유익하게 하던 것들을 바울처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그것을 움켜쥐고 주님을 따라가려 하기 때문에 무엇 하나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주 예수를 위해서 이 세상의 부귀나 명예, 행복과도 바꾸지 말아야 한다. 세상 즐거움, 세상 자랑을 주를 위해 다 버릴때에, 참으로 주 예수를 얻을 수 있고 변화될 수 있고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구세주 예수를 위해 내게 있는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고 포기할 때, 희생하고 포기한 그만큼 가장 고상한 지식인 그리스도 예수를 얻을 수 있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는 것이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려면 모든 죄악된 것들을 내버리고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二.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 (4-8, 실천하는 면)

세상 사람들은 산돌이신 예수님을 핍박하고 내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셔서 보배롭고 존귀한 산돌이 되게 하시고, 신령한 교회를 세우는 가장 요긴한 기초 돌로 삼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산돌이라고 한 것은, 돌이 강하고 견고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극히 강하셔서 모든 것을 다 이기시고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 산돌이 자라난 것처럼, 그리스도의 나라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즉, 산돌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력이 있다는 뜻이다. 현대어 성경은 5절을 “그러니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집을 짓는 데 쓰실 산돌이 되십시오.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그리스도를 통해 드리십시오.” 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산돌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아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만한 제사장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올해 1월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설문조사에 한국 교회를 '매우·약간 신뢰한다' 응답은 21%였던 반면에 '별로·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경우는 76%였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2020년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인의 10명 중 6명은 한국 교회목사’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일보가 교계 지도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 성장 둔화의 1차적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란 설문 조사 응답자의 35%가 '성도들의 신앙과 삶의 불일치'를 꼽았다. 성도는 죄악 세상에서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사죄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이상 문에 세상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성도를 지배하는 법과 나라가 전혀 다르다.

 

성도의 나라는 하늘에 있으며 성도의 왕은 예수님이시므로, 성도는 진리의 법과 예수님의 통치를 받고 생활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방식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육신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을 더 귀중히 여기고, 세상에서의 성공보다 장차 하늘나라에서 받을 주님의 상급과 칭찬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믿음으로 사는 자, 말씀대로 사는 자이다. 그러므로 칼뱅은 “성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고 모범적인 행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했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으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믿는 자의 본이 되어 모든 선한 일에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시대에 모든 성도는 다 왕같은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을 드리고 제사 드리며, 산돌이신 예수님과 같이 자신을 희생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 제사장은 언행심사를 항상 조심하고 모든 백성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 흠이 없는 예물과 산제사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거룩한 제사장이 이 시대에 할 일이다. 10:1-2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론에게 성소의 향단에 불을 피울 때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옮겨서 분향하라고 하셨으나,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가져와서 향단에 불을 붙이다가 타 죽었다. 이 사건은 제사장의 사역의 원칙이 하나님의 말씀이지 자신의 지혜나 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제사장은 제사를 주관하고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며, 율법을 가르쳤고 백성들을 판결하기도 하였으며 백성들을 축복해 주는 일을 하였다. 제사장 된 모든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을 일깨우는 일,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성도는 이 제사장의 직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항상 예배에 최우선을 두며,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주장하는 사람이 되라고 제사장 직분을 주신 것이 아니다. 제사장은 감투가 아니라 책임적인 헌신을 하는 직위이며, 행동과 신앙의 모범적 삶을 통해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제사장임을 알고 더욱 주님을 위해 힘쓰고 애쓰며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데 열심을 내야 하며, 다른 성도들을 섬기며 축복하며 사랑해야 한다. 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힘이 미치는 대로 봉사하고 전도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려면, 말씀대로 행하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다만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직분을 맡아서 충성하고 찬양대나 교사로 봉사하여 복을 받아 성공하고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주신 구속의 은혜와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와 복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딤전 4:14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 하였다. 성도는 먼저는 말과 행실, 그리고 사랑과 믿음, 정절에 대해 불신자는 물론이고 같이 믿는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말'과 '행실'에 본을 보이는 것은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행실로 사랑의 열매가 맺히도록 하여야 한다.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는 말이나 행동에 덕을 세우고, 경건함을 나타내며, 범사에 특별히 선한 일에 본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 불신자들이 우리를 핍박할지라도 성도의 옳은 것을 양심적으로 인정하고 업신여기지 않는다. 작금 기독교 신자가 불신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이유는, 거룩한 제사장의 역할을 바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 주신 목적은, 우리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하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다(9절).

 

성도가 성경 말씀대로 믿고 정직히 행할 때에, 어느 누구도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우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려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결론

1.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야 한다.(영적)

2.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실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8 나오미라 말고 마라라 부르라 shamerin 2023.06.11 41
127 범사에 기한과 때가 있나니 shamerin 2023.06.04 38
126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shamerin 2023.05.28 48
125 인내하는 자가 복되다 shamerin 2023.05.21 31
124 너 하나님의 사람아 shamerin 2023.05.14 39
123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라 shamerin 2023.05.07 22
122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shamerin 2023.04.30 38
121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shamerin 2023.04.23 49
120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shamerin 2023.04.16 25
119 예수께서 이르시되 shamerin 2023.04.09 22
118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shamerin 2023.04.02 22
117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shamerin 2023.03.26 28
116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shamerin 2023.03.19 23
115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 크고자 하는 자 shamerin 2023.03.12 29
114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shamerin 2023.03.05 41
113 내 앞에 설 사람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shamerin 2023.02.26 28
112 우리가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shamerin 2023.02.19 23
111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shamerin 2023.02.12 30
110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shamerin 2023.02.05 32
109 선에 속하라 shamerin 2023.01.29 2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