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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 10:48

순리를 따라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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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순리를 따라 살라

본문 : 전도서 7:13-14

 

사전적 의미에서 ‘순리’(順理)란 `마땅한 도리나 이치, 도리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옛말에, “순천자지흥(順天者之興) 역천자지망(逆天者之亡)“이라 하였는데, ”하늘의 뜻을 좇는 자는 흥하나, 거스리는 자는 망한다“는 뜻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김없이 이어져가는 그 엄연한 순리를 인간은 거역할 수 없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순리(順理)이며,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역리(逆理)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순리로 사는 것이다. 인생이 특별히 복음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순리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만물은 결코 순리를 거역하지 않는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계절은 정한 때에 바뀐다.

 

우생마사(牛生馬死) 평상시 잔잔한 강이나 호수에 소와 말을 풀어놓으면 둘 다 헤엄쳐 살아 나온다. 하지만 물살이 거셀 때 소와 말이 강에 빠지면 헤엄이 서툰 소는 살아남고 헤엄을 잘 치는 말은 죽는다고 한다. 말은 거센 물살을 거스르려고 발버둥 치다 힘이 빠져 죽지만, 소는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며 육지를 밟고 살아난다는 것이다. 자기 능력만 믿고 방해나 장애를 극복하려고 강한 힘으로 저항하면 스스로 지쳐 쓰러지고 만다. 순리를 따라 살지 않고, 느림보, 바보 소리 대신 똑똑하고 지혜롭다는 말을 듣고자 하면 자기 꾀에 넘어가게 된다.

 

공자의 제자 중 유일한 여제자 "등선자"(登仙者)가 쓴 성유심문(誠諭心文)에 ‘물순래이물거(物順來而勿拒) 물기거이물추(物旣去而勿追)’이라 하였는데, ‘세상 만물이 순리로 찾아오거든 거부하지 말고, 세상 만물이 이미 가버렸으면 아쉬워 뒤좇지 말라’는 뜻이다. 즉, ‘순리를 거역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순리(順理)보다는 역리(易理)로 사는 삶을 선호한다. 그러나 인생이 아무리 역리로 살려고 해도 역행할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사람이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사와 자연계의 모든 일은 하나님이 예정과 섭리대로 된다. 하나님의 예정과 경륜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

 

9:20-21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인간은 하나님 행하시는 계획과 목적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다만 창조자가 하시는 대로 되는 것뿐이고, 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처지가 못 된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를 가지고 필요에 따라 식기를 만들거나 변기를 만든다고 해서, 변기가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변기로 만들었는가? 하고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 생일날에 생선이 닭을 잡아 생일잔치를 해주었을 때, 닭과 물고기는 주인의 아들을 위해 희생되었다고 해서 주인에게 항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생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조물주이시므로,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 항거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뿐이다. 55:8-9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였다. 사람은 하나님 행하시는 계획과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 성도에게 은혜가 되고, 복이 되며, 유익이 되는 것만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굽게 해 놓으신 것, 한 번 예정하신 것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미가야 선지자로부터 아람과의 전쟁을 위해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면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아합은 그 말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죽음을 면하려고 왕복을 벗어 여호사밧에게 주고 자기는 변장하고 전장에 나갔지만, 아람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갑옷 솔기가 명중되어 전사하고 말았다(왕상 22:34-35).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기로 예정 된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 피하려 해도 결국은 죽게 된다. 하나님이 굽게하신 것을 사람이 능히 곧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에 우연히 보이는 일도 하나님의 편에서는 필연적으로 예정된 일이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순리의 삶을 살 때,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어 오빌에서 420달란트나 되는 많은 금을 가져와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하 20:35-37에 보면 여호사밧이 악을 행하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결탁하여 자기들 욕심대로 다시스에서 금을 가져오고자 하였으나, 그들이 만든 배가 파상하여 가지 못하였다. 같은 장소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짓고, 같은 곳에서 금을 실어 오려 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순리로 행한 솔로몬과 역리로 행한 여호사밧의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따라서 순리를 따라 사는 삶이 제일 안전하고 복되고 형통한 길이다.

 

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 (14)

하나님이 성도에게 장래 일을 알지 못하도록 하신 이유는, 알지 못해 믿음을 지키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장래가 형통할 줄 알면 방심하기 쉽고, 곤고할 것을 알면 염려하여 낙망하거나 좌절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속성을 다 아시고 형통한 날과 곤곤한 날을 병행하게 하사 알지 못하게 하셨다. 형통한 날이 올지 아니면 곤고한 날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장래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형통’은 모든 일이 막힘이 없이 잘되어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형통한 날에 기뻐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경영한 일이 성공하게 되었음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24:26-27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아브라함의 종이 나홀의 성에 도착하였으나 누가 이삭의 아내가 될 여자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기도하였다.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 것을 알고 기뻐하며 머리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자신이 계획한대로 모든 일이 순적하게 이루어졌을 때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를 주인의 동생의 집으로 인도해 주시고 주인의 뜻에 맞는 베필을 구하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였다. 이것이 형통한 날에 기뻐하는 것이다.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모세도 아말렉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하여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 즉, “여호와는 나의 깃발” 이라 칭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며 기뻐하였다.

 

삼하 8:9-12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파하였다 함을 듣고 그 아들 요람을 보내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로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파함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저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다윗이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과 조공으로 받은 것을 모두 하나님께 드린 것은,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것으로 알고 감사함으로 드린 것이다. 그는 형통한 날에 교만하지 않고, 물질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기뻐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셔서 형통한 자가 되었다.

 

지금 미국을 황폐하게 하고 있는 남북전쟁은 우리의 부끄러운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며 국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계속되는 성공에 도취되어 아무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기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 우리 자신을 낮추고 국가적인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간구해야겠습니다.” 1863년 7월 1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남부의 게티즈버그. 북군 8만8,000명과 남군 7만3,000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링컨은 노예제도와 미국이 남·북으로 갈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1863430일을 국가금식기도일’로 선포, 온 국민들이 함께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호소했다.

 

게티즈버그 전투가 시작되어 3일 동안 남·북군 합쳐 4만여 명의 사상자가 났으며, 북군이 승리하였다. 이 결과 1865년 5월 13일 남북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났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탄원과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고 육지와 바다의 전투에서 승리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승리는 미합중국이 유지되고 헌법이 보존되며 우리 모두의 평화와 번영이 회복되리라는 확신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링컨은 승전 후에 이같은 선언문을 발표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뻐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무언가 형통한 일을 만났다면,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알고 감사하는 저희가 되어야 한다. 형통한 날에 기뻐하는 것이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二.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곤고한 날에 생각하라는 것은,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의 뜻을 떠나 순리로 살지않고 역리로 행한 것은 없었는지 자신을 되돌아 보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곤고한 일을 만났을 때, 당장 눈 앞의 형편만 보고 원망, 불평하지 말고, 왜 이런 어려움이 내게 일어났는지, 혹 하나님 앞에 범죄 한 것은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남의 탓만하고 다른 사람들 원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못한 것, 하나님을 위한다고 했지만 자신을 위해 한 것,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이 모든 죄라 하였으므로, 그런 것들을 찾아 회개해여 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를 벗어나면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가장 큰 죄는 의도적으로 역리로 행하는 것이다. 순리에서 벗어나면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않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순리를 따르지 않고 역리로 행하다가 모든 것을 잃고 사망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구역의 역사를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순리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형통했지만, 말씀을 떠나 역리의 삶을 산 사람들은 예외 없이 곤고함에 빠졌고 끝까지돌이키지 않은 사람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리를 역리로 바꾸는 반역적 삶을 살았기에 그들의 광야생활이 순탄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제 일세대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다 죽고 말았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려고 했지만, 풍랑을 만나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죽을 고난을 당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니느웨로 갔다.

 

대하 29:6-9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한고로,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라 지금 유다가 당한 환난에 대해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말했다. 그들이 지금과 같이 대적들에게 멸시를 당하게 된 것은, 과거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홍해를 갈라 광야 40년 동안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가나안 땅의 대적을 물리치고 차지하게 하시고, 그 땅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주신 은헤를 기억하고 감사치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악을 행함으로 순리가 아닌 역리로 살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유다까지도 같은 곤고함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히스기야는 유다가 당한 모든 환난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히 행하지 않음으로 일어난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각자 자기 자신과 성전을 성결케 하고 더러운 것들을 성소에서 없이하라 명하였다. “우리 열조와 형제는 목을 곧게 하여 하나님을 불순종하다가 멸망하였으니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께 귀순하여 사로잡혀 간 형제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자”라고 백성들을 권면했다. 히스기야는 유다가 당한 환난에서 구원받는 길은 다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뿐이며, 이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깨달았다. 곤고한 날을 당한 히스기야와 유다가 전심으로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고 성전 문을 열고 하나님께 돌아오자, 하나님도 그들에게 다시 돌아오셔서 유다 나라를 앗수르의 손에 구원하여 주시고, 히스기야는 주변 여러 나라의 눈에 존대한 자로 만들어 주셨다.

 

물을 공급하는 수도관의 어느 부분이 막혀 있으면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거나 바로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막혀, 위로부터 내려오던 은혜와 복이 전달되지 못하여 곤고함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곤고한 날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기도해 보아야 한다. 내가 당한 곤고함이 나의 죄값으로 인한 것이면, 이제 그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돌이키고,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함을 받으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어진다. 곤고함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또한 그 곤고함을 해결해 주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곤고한 날을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것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악한 길을 걸어가는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또 불의한 생각을 하는 자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하나님의 징벌을 면한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역리로 행하던 악한 길과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순리로 행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여 주시고 영접해 주신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허랑방탕했으나, 재산을 다 허비한 후에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는 곤고함을 만났다. 그때 그는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하리라 하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갔다. 아버지는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하며 아들로 대해주었다.

 

곤고한 날을 만났을 때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순리대로 행하지않고 욕심으로 역리로 행한 것은 없었는지 기도해 보아야 한다. 혹 우리가 믿음을 떠나 죄악 된 세상으로 나아가 실패하였다고 해도, 하나님은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해주시고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신다. 호흡이 끊기면 당장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약한 인간을 의지하려 하지 말고, 인생의 모든 것을 굽게도 하시고 곧게도 하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만능의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형통한 날에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결론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

2.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