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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 11:38-44

제목 :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一. 주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다.

구약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여러 이적과 기사들, 홍해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일, 여리고성이 무너진 일,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송장으로 만든 일,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신 일 등등의 일들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비추어 볼 때, 전혀 불가능하고, 일어날 수 없는 비상식적, 비과학적, 비현실적인 것들이다. 우리 인간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지적 능력을 잣대로,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여 “할 수 없다=불가능하다=안 된다”고 판단한다.

 

55:8-9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였다. 하나님의 생각하시는 것과 행하시는 길은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은 피조물이나,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능력과 권능이 무한하시고 사람의 생각이나 사역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우리 인간의 생각과 이성적 판단으로는 알 수도 헤아릴 수도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할 수 없는 그것을 하시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 일을 하신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다만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을 당신의 정한 뜻대로 주장하고 섭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은 99세, 사라는 89세로 이 부부가 아이를 낳는 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나 상식으로 불가한 일이다. 사라는 자기 부부가 노쇠한 것만 생각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이루어 약속대로 일 년 후에 아들 이삭을 낳게 하셨다. 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의 모든 육체를 가진 자들의 주인으로서 전지전능하셔서 능치 못할 일이란 없다.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결혼생활을 하여야만 자녀를 잉태하는 줄로 알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그의 친척. 엘리사벳이 늙어서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여섯 달이 된 것을 가르쳐 주며, 마리아에게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잉태될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초자연적 역사로 행하신다.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 무덤에 오신 예수님은,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지만,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하고 순종치 않았다. 마르다의 생각에는 만일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을 옮기면, 이미 죽은 오라비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여 도리어 더 비참한 상황이 될 것이니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즉, 마르다가 이미 주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믿는다고 대답은 하였지만,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하고 순종하지 않은 것은 그의 믿음이 다만 지식적인 것,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죽은 지 나흘되는 자기 오라비를 살릴 수는 없을 반증하는 말이다.

 

본문 21-22에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주님께 말했다. 이 말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다시 살릴 것은 믿지 못하였지만, 구하면 무언가 좋은 것을 주실 줄은 믿는 다는 말이다. 23-27절에서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하고 위로하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하였고, 예수께서 다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셨을 때도,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주님이 참으로 생명을 주관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전지전능한 분으로 믿지는 못했다. 단지 지식적인 믿음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지식적인 믿음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지식(knowledge)은 벽(wall)과 같아서, 벽이 적당히 높으면 자기방어에도 도움이 되고, 바깥세상을 내다볼 수 있어 좋지만, 벽이 너무 높으면 오히려 그 벽이 바깥세상을 내다 보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지식적인 믿음은 다른 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하여 자기 신앙의 진보를 막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식, 즉 말씀을 듣고 아는 지식을 본인의 믿음이라 착각한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성경 공부를 통해 쌓은 성경적 지식이 자신의 믿음인 줄로 알지만, 사실 그것은 창고에 제품을 가득 쌓아놓은 것과 같다.

 

오늘날 신앙인에게도 이같은 지식적인 믿음이 문제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인간의 역사를 통해 그런 일을 없었고, 일어 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인간 자신의 사고의 한계 내에서의 일 뿐이지, 하나님의 능력과는 관계가 없다. 마르다가 고백한 것처럼, 주님은 부활과 생명이 되시며,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만물들의 생사화복을 예정, 섭리, 운영해 나가시는 분이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예수님에게 능치 못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겔 37:1-10에 죽은지 오래된 마른 뼈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매, 그 뼈들이 서로 들어맞아 연락되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고, 또 생기를 넣어 살려 내 큰 군대가 되었다. 마른 뼈를 살려 군대를 만드시는 주님에게 있어서, 죽어 겨우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는 일은 더더욱 쉬운 일이다.

 

삼상 17:45-47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은 능력의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대적을 자기 손에 붙여 둘 것을 믿고,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가 싸워 승리하였다. 신앙인에게는 골리앗과 같은 장애물아 문제가 아니라, 장매물을 보고 두려워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무덤의 돌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애일 뿐 아니라, 돌처럼 강퍅한 마음이 더욱 문제이다. 16:1-3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하고,두려운 마음으로 걱정하며 무덤으로 갔더니, 돌은 굴려져 있었자고 하였다. 성도는 눈에 보이는 외부적 환경에 주눅 들거나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 상황보다도 할 수 없다 하는 패배주의 심성이 문제이다. 할 수 있다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할 수 없다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였다.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예수님 밖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또 재림주이시며 심판주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염려 걱정 근심할 필요가 없다(요 14:1).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못하게 하는 모든 불신앙적인 것들, 교만한 마음, 학문적 지식이나 사상, 두려워하는 마음, 패배주의 들이 우리 앞에 놓인 돌인 줄로 알고, 주님의 능력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신다. 주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다.

 

 

二. 말씀을 순종하면 역사하신다

25-26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 마르다는 지식적으로는 이렇게 예수님을 알고 입으로 시인하였지만, 정작 그 믿음을 행위로 드러내 순종하여야 될 때에는 믿음을 쓰지 못하였다. 막 9장에,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 9:22)라고 간구하였을 때, 주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23)하고 책망하셨다. 아이의 아버지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능을 온전히 믿고 간구할 때, 예수서 그 아들에게 있던 귀신을 내쫒으시고 병을 낫게 하여, 모든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하고 물었을 때 주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대답하셨다. 겨자씨는 작아도 그 안에 생명이 있으므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생명력 있는 믿음, 즉 말씀을 순종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큰 역사가 일어난다. 내가 말씀을 순종하며, 산을 옮기는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다. 눅 17:6에는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하였다. 생명 있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다.

 

2: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믿음의 절반이고, 말씀을 몸으로 직접 순종하여 행할 때에 나머지 절반으로,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행할 때 온전한 믿음이 된다는 것이다. 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한 말씀은, 믿음의 정의를 말한 것이 아니고, 믿음의 결과를 말한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정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지식적인 믿음’은 행함이 수반되지 않는 믿음을 말한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호흡하고 활동하는 것처럼, 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씀에 대한 행함이 뒤따른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역사를 통해 그런 일은 없었고, 또 인간의 지식과 상식 안에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도 없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 사고와 능력의 한계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여 몸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온전한 믿음이 되고, 인간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게 해 주신다. 말씀을 순종만 하면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 해 주시고(민 17:8), 홍해를 갈라 육지와 같이 건널 수 있게 해 주시며, 하늘에서 양식을 눈같이 내리시며,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죽어 장사 지낸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고 소망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죽은 지 40일이나 400일이 되었다고 하여도, 주의 명령을 순종만 하면 살아나서 영광을 볼 것이다.

 

죽어 며칠이 지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돌을 옮기지 못하는 불순종이 문제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사면초가의 상태에 처하였다고 해도, 부활이며 생명이 되시는 주님의 권능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역사해 주시고, 순종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정복한 것도 그들의 모략이나 능력,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여 하루에 한 번, 제 칠일에는 일곱 번 돈 후, 외쳤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이 무너져 내려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을 나은 것도, 엘리사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여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음으로 나았다. 그 결과 니방인 나아만이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1:25-26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참으로 주님이 죽은 자를 부활시키며 죽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새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돌을 옮겨 놓으라”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어떤 의심이나 주저함도 없이 즉시 돌을 옮겨 놓을 것이다. 예수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주님의 말씀은, 나사로가 죽어 장사 지낸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고 소망이 없다고 할지라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대로 돌을 옮겨 놓기만 하면, 죽은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다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하고 기도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시니 죽었던 나사로가 벌떡 일어서서 수족을 베로 동이고 얼굴은 수건에 싸인채 걸어 나왔다. 주의 말씀은 죽은 생명을 살려내기도 하고, 새로 창조하시기도 하고, 사망의 강물도 소생시켜 생명의 강이 되게도 하시고, 마른 땅에 샘물이 나게도 하시며, 죽은 나무에 꽃이 피게 하시는 능력이 있다. 11:4에서 예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함을 들으시고, 제자들에게 이미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일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게 하기 위함이었다.

 

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깊은 데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말씀은 경험이나 어로 원칙에 맞지 않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심히 많은 고기가 잡혔다. 베드로처럼 말씀을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말씀의 반드시 성취된다.

 

마르다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자, 예수께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기도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시니,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이고 얼굴이 수건에 싸인 채로 걸어 나왔다. 주님의 말씀은 만능이다.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주님이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목적은,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알게 하고 믿게 하여 많은 이들을 구원하려는데 있다. 신자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결론

1. 주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다.

2. 말씀을 순종하면 역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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