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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살전 4:1-18

제목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一. 거룩한 생활 (1-8)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3절). 거룩의 헬라어 하기오스는 구별한다는 뜻이며, ‘성화‘는 “거룩하여지다”는 의미로 히브리어 “카도쉬”('구별된', '분리된')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본시 죄인이었던 성도가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고 영혼이 중생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죄까지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인격적인 면이나 신앙적인 면에서는 아직 천국 백성으로서 합당한 인격과 실력, 자격을 온전히 갖추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그리스도를 닮아나가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 성화이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즉, 거룩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거룩함은 의로운 생활의 열매로 나타나며,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바울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성도가 거룩해지도록 더욱 많이 힘쓸 것을 1절에 권고하였다.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성도가 점점 거룩해 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거룩해지려면 무엇보다 음란을 버리고 이방인들처럼 색욕을 좇지 말아야 한다.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취할 줄 안다말은, 음란에 빠지지 말고 바른 결혼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도는 아내 외에 다른 여자를 취해서는 안 되며, 결혼 생활 외의 성관계는 모두 음란 죄이며,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다. 성도는 부부관계를 거룩하고 존귀하게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성도가 이런 음란을 버리고 거룩해지는 것이다.

 

신자가 음란을 버리고 색욕을 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그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성도는 육신의 정욕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아 거룩한 자가 되었다.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때에 육체에 속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 말은 성도는 이제 더 이상 육신의 욕심을 따라 자기를 위한 삶을 살지 않고 우리를 구원한 주님을 닮아나가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의 감동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8: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 하였다.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육신의 정욕대로 즉, 주를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사는 생활이므로 반드시 죽을 것이다. 성도는 음란을 버리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이방인처럼 색욕을 좇지 말고,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아야 한다. 형제를 해하지 말라’는 것은, 형제의 아내와 음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자고 미혹할 때에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고, 신앙 양심을 써서 간음죄를 지으면 죽을 줄로 알고 범죄하지 않았다. 6:26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월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음녀에게 홀려 음행하게 되면, 재물과 명예는 물론 결국에는 생명까지도 잃게 된다. 17:27-29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노아 당시 사람들이 음란 방탕으로 기울어져서 음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으로 멸망 당했다. 롯이 살던 소돔 고모라 성도 남녀노소 모두가 도덕적으로 문란하여 동성연애들을 하다가 하나닙의 진노를 받아 유황불에 멸망 당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를 거룩한 자로 만들어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거룩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음행과 색욕을 좇는 생활은 부정한 것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좇는 것이다.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가 육신의 정욕을 좇아 세상과 벗되면, 하나님께 대한 정조가 깨어져서 간음하는 여인과 같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 되는 일이다. 자기의 육체의 욕심을 위해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되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갈 6:8).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우리를 불러 믿게 한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성도는 그 하나님의 닮아 거룩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신 것이다. 성도가 거룩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닮아 거룩해지도록 더욱 힘써야 한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二. 조용히 자기 일을 하는 생활 (9-12)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다(1:3). 이미 믿음의 형제들에 대한사랑의 실천을 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더 많이 하라고 권면하였다. 영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는 하나이므로,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과 같기 때문이다. 24: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다. 말세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도 벧전 4:7-8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였다.

 

사랑에는 수고 즉, 자기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수고가 동반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시고, 또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십자가에서 고난당했다. 29: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수고는 그것이 즐거움이며 기쁨이다. 내 것을 희생하고 내가 낮아져서 섬기지 않으면서 말로만 하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며, 또 받기를 바라고 준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사랑이며 참된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잘해서 나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사랑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긍휼히 여겨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여 택해 주셨으므로, 우리도 다른 이를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을 잘 지켜나가기 위해 더욱 많이 힘써야 한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영접한 후, 인생관과 세상관이 바뀌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반면, 세상일을 게을리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바울이 참으로 교회와 형제를 사랑하는 성도라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곳에서 조용히 자기 일을 할 것에 대해 여러 교회에서 가르쳤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영접한 후 그들의 인생관과 세상관이 변화되었다. 그러나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고대하면서 교회 일은 물론 세상 일도 게을리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에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할지라도, 참으로 형제를 사람하는 사람이라면 종용히 자기 일을 하라고 권면하였다. 왜냐하면,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기 때문이다(고전 1:5)

 

자기 일을 하되 남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하라 하였다. 조용히 일하려면 무엇보다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은 법이다. 10:19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하였다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을 하게 되고, 남을 비방하거나 피차의 허물을 드러내는 실수를 하기 쉽고, 결과적으로 교회생활에서도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삼국지에 위나라의 조조가 촉나라의 유비와 한중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그 때에 조조는 진격과 퇴각에 대해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늦은 밤 암호를 정하기 위해 찾아온 장수 하후돈에게 조조는 단지 계륵이라고만 할 뿐 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후돈은 돌아가 다른 장수들과 계륵이 무슨 뜻인지 서로 이야기하였으나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그 때 조조의 부하 중 한 명이었던 양수는 곧바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른 장수들에게, "닭갈비는 먹을 만한 살은 없지만 그대로 버리기에는 아까운 부위이다. 결국 여기를 포기하기에는 아깝지만 꼭 지킬만한 중요한 땅도 아니라는 뜻이니, 여기를 포기하고 돌아갈 결정이 곧 내릴 것이다“ 하였다. 그 말대로 조조는 이튿날 한중 땅에서 철수 명령을 내렸다. 후에 양수는 조조가 장자인 조비보다 차남인 조식이 훨씬 영리하고 문장도 뛰어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다가 군율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참형을 당하였다.

 

11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그리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것처럼 조용한 생활을 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며 손수 일하도록 하십시오.”라고 번역하였다.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책임을 자기가 감당하고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아야 교회의 공동생활에 있어서 덕이 된다. 6:5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하였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창 2:15). 사람이 땀을 흘리며 수고하여야 먹고 살도록 하나님이 작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다(살후 3:10). 현대인의 성경은 10-12절을 “사실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형제 여러분들이 더욱 힘써 그렇게 할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것처럼 조용한 생활을 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며 손수 일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불신자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부족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하였다.

 

자기 일을 자기가 하고, 남은 힘으로 다른 이를 돕는 사람은 공동체에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자기 일을 감당치 못하면 다른 이와 공동체에 폐를 끼치고 지탄의 대상이 된다. 성도가 스스로 힘써 일해 남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지 말고 오히려 남을 돕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겉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 안한다’는 속담은, 보리 중에도 질이 가장 낮은 겉보리 세 말만 있어도 처가 신세를 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자가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사명을 감당하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권한 이유는, 교회에 덕을 세우고 외인들에게 비방 받지 않기 위함이며, 또 자신이 궁핍하지 않기 위함이다. 성도는 불신자들에게도 덕을 세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자신의 궁핍도 면해야 된다. 누가 알아주든지 그렇지 않든지, 남이 무어라 하던지 개의치 않고 종용이 자기의 맡은 일에만 충성을 다하는 성도는 교회의 보배와도 같은 존재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三.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생활 (13-18)

성도의 죽음은 잠자는 것과 같다. 생명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세계만 바꾸기 때문이다. 잠자는 자는 현상 세계에서 꿈의 세계로 바꾸어진 것처럼, 성도의 죽음도 생명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현실 세상에서 영적세계로 바뀌는 것뿐이다. 자는 사람이 일의 수고를 다 마치고 쉬는 것처럼, 세상을 떠난 성도는 세상에서 자기 일을 다 마치고 안식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소망 없는 불신자들처럼 육신의 이별을 과도히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소망 없는 다른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로, 그들은 죽음 너머에 천국과 지옥을 알지 못하므로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죽음 앞에서 절망하며 슬픔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부활을 믿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믿는 가족이나 다른 성도의 죽음 앞에서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도의 죽음은 한편으로는 육신의 이별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수고와 슬픔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부활 때까지 참된 안식을 누리므로 기쁘고 복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잠자는 자는 반드시 깨어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잠들었다고 말씀했다.(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불신자는 부활의 소망이 없으므로 육신의 죽음을 슬퍼할 수밖에 없다.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은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에 반드시 부활한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된 영혼은 절대 죽지 않으며, 몸은 죽어도 영이 살아 있으니 부활의 소망이 있다. 성도의 죽음은, 그 동안 세상에서 쓰고 살던 장막인 육신을 땅에 벗어놓고 영혼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 하루 먼저 죽는 것은, 오는 세상의 하루만큼 길어지는 것이다. 이런 내세의 소망과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죽음에 앞에서도 불신자들처럼 과도히 슬퍼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이다(14).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셨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성도의 부활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로서, 모든 성도의 부활의 표본이요 원동력이다.(고전 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예수님께서 친히 장차 의인이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이 있다고 말씀하셨다(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이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천지가 진동하게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게 오시며, 그때 죽은 성도가 부활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처럼, 재림도 제자들이 본대로 오신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하여 공중에 올라가 예수님을 맞이하고, 살아서 믿는 자는 그 후에 부활체로 변화되어 공중에 들려 올라가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휴거) 부활한 성도들은 공중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영접한 때부터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된다. 성도가 죽은 것은 잠잔다는 것이며 예수님 재림할 때 부활하여 영광 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죽음의 이별을 당한 가족들과 형제들에게 깨우쳐 주어서 불신자들처럼 너무 슬퍼하지말고 피차 위로하라는 것이다.

 

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였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지만, 주를 믿는 우리는 기쁨 가운데 주님을 영접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때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수고한 것만큼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모든 성도에게는 누구나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세상에서 주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행한 성도적 행위에 따라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을 동안에 인내로 말씀을 지켜, 마침내 재림하시는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생활이 하나님을 기쁘시개 한다.

 

 

결론

1. 거룩한 생활

2. 조용히 자기 일에 힘쓰는 생활

3.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