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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1 08:42

진리를 알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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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진리를 알지니

성경 : 요 8:31-36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요 14:6).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예수께 물었으나(요 18:37-38) 그에게 대답지 않은 이유는 설명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一. 성도는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본문에 예수께서 “진리를 알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바른 진리를 알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철학은 진리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고대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해 왔다. 진리(眞理, 영어: truth)란, 현실이나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또는 보편적·불변적으로 알맞은 것을 뜻하며, 문자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참된 이치“이다. 즉, ‘진리’는 참된 이치 즉, 더 이상 어떤 것을 보충하거나 추가적으로 보완할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완벽하고 완전한 상태를 뜻한다.

 

개는 색맹이라 흑백으로 밖에 보지 못한다. 평생토록 2차원의 평면만을 기어 다니는 개미는 입체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며, 3차원 공간에 대해 알고 경험한 인간에게 개미는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인간의 제한된 감각과 인식 범위 안에서 정해진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진리도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잠정적이고 오류 가능성이 있는 일종의 '믿음'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이 그들의 인식 한계 내에서 서로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과학과 수학은 옳다고 당연시되던 지식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거쳐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진리를 판정하는 항구적이고 초역사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어느 정도 옳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오류가 내포된, 그래서 수정과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에서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진리에 대한 그 어떤 믿음이나 주장도 결국 인간적인 이해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빌 3:8에서 바울은 ”내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타락하여 범죄 한 인간의 죄를 사해 주고 영명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진리나 지식으로도 죄사함을 받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거나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믿는 자에게 죄사함과, 구원과 영생,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는 이 진리 즉, ”내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유일무이한 지식이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민족이나 혈통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라는 진리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신약에서 ‘진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알레테이아’인데, 이 단어는 히브리어 ‘에메트’를 번역한 것이다. ‘에메트’는 ‘아만’이라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파생되었는데, ‘확고한’, ‘견고한’, ‘진실한’, ‘성실한’, ‘영구한 등의 뜻을 가진다. 기도를 마치거나 말씀을 듣고 화답할 때 사용하는 ‘아멘’도 ‘아만’에서 파생되었다.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기서 ‘진정’은 헬: 알레테이아, 히: 에메트로 ‘진리’라는 뜻이며, 17:16-17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는 말씀의 ‘진리’도 요 4:23절의 ‘진정’즉 “진리”와 같은 의미이다.

 

미국의 기독교 철학자, 장로교 목사이며 복음주의 운동가 프란시스 쉐퍼는 진리를몇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은 모든 진리의 근원이며, 기준이며, 판별자이므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 진리이도 진리를 찾으려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 진리는 사실이다. 진리는 객관적이므로 정확한 뜻을 가진 글로 진술되며, 막연한 꿈이나 환상이 아니며, 진리는 확고하고. 모호하지 않아 면도날처럼 날카로우며(히4:12), 이 진리를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이다. 셋째, 진리는 불변한다.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이 불변하시므로 진리도 불변한다. 넷째, 진리는 권능이 있다. 진리는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형상에까지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영의 자유를 준다.

 

진리는 예수그리스도이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나타내는 진리이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나타내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진리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언약하신 그것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으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한 진리가 되신다.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구약의 율법이나 역사나 예언이 전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특별히 구약 성경은 영생을 주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세세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 진리란 참됨을 의미한다. 인류의 역사는 오류나 착오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나 착오가 없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인데,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말씀“인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즉 태초부터 계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셨으며, 그는 태초에 이미 존재하고 계셨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 즉 하나님과 구별되시지만,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이 진리이다.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진리가 세상에 왔다.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정죄하는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으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셨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지켜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달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려는 것이다(롬 3:20). 따라서 율법의 정죄를 받은 모든 죄인이 진리의 본체인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은혜로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성도가 진리를 아는 것을 원하신다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구속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드리는 제사보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아는 것을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나아와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도의 영혼이 살게 되기 때문이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택한 백성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또 구원받은 성도들이 진리를 바로 알기를 원하신다. 진리를 깨달아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행할 수 있고, 진리를 알아야 말씀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진리를 알아야 그 말씀대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는 진리에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 존귀에처하여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는 멸망하는 짐승에 불과하다.

 

진리를 알아야 미혹을 이기고 세상 풍조에 요동하지 않는다. 4:13-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성도가 진리를 바로 깨달아 그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에 장성한 자가 되어야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를 모르면 멸망한다. 4: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라고 하였다. 어느 때에나 하나님과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된다. 노아시대 때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은 것이나. 소돔 고모라성이 유황불의 심판을 받은 것이나, 이스라엘이 대적에 의해 멸망 당한 것은, 먹을 육신의 양식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 것이다. 4:3-4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을 인하여 행하신 바를 너희가 목도하였거니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진멸하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싯딤에서 모압 여인들과 행음하고 바알 우상에게 절하고 제물을 먹은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여 범죄한 자 2만 4천 명이 염병으로 죽임을 당했다. 진리이신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으니 이 진리를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지옥의 형별을 받는다.

호세아 선지자는 말세에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 기근과 기갈을 당할 것을 경고했다. 8:11-1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은혜와 복은, 성전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러나 말세에는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들고자 하여,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부지런히 왕래하며 찾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을 당할 것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말세에는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기 때문이다(딤후 4:3-4).

 

성도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2:2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깨달은 진리가 그 사람을 음녀에게서 구원하여 생명을 보존케 해준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예수그리스도가 진리이며, 성령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인생의 구원이 진리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자체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성도는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

 

 

二. 진리 안에 참 자유가 있다.

8: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라고 하셨다. 주님의 말씀이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사상과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요소가 되어야 한다 즉, 주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참된 주님의 제자라는 것이다.

 

영국 신학자 데이비드 왓슨은 그의 책 「제자도」(Discipleship)에서 제자가 된다는 의미에 대해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 말씀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의 생활의 지배원리가 되어, 그 말씀의 지배를 온전히 받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모든 부분을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두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33절에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항의하였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했으며, 사사시대에도 적어도 일곱 번이나 이방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종살이하였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정복당하여 종살이 했으며,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 멸망당해 70년간 포로생활을 했다. 예수님께 이 질문을 한 유대인들도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강변하였다.

 

예수께서 요 8:34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하셨다. 자유는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이다.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의 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법을 마음으로 순종함으로써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 육신의 욕심을 따라 범죄하면 죄의 종이 되고, 성령을 좇아 의를 행하면 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죄가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빼앗아 간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가 얻는 자유이다.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지 않고서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고, 자유를 누릴 수도 없다. 신자들도 믿기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복음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믿었으므로,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진리 안에서 살아 갈때에 심령의 평안을 얻고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영의 자유가 진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진리가 정죄하면 속박을 받고, 진리가 놓아주면 자유케 된다. 즉, 진리에 위반되면 정죄를 받고, 진리에 위반이 없고 가책됨이 없고 진리가 자기를 옳다고 인정해 주면 자유하게 된다. 복음 진리를 깨달아 구원받은 성도는, 죄와 사망, 지옥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영의 자유함을 누린다. 그러나 불신자는 여전히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복음 진리가 죄와 사망, 마귀에게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진리는 또한 모든 의식과 제도, 죄책으로 인한 억압에서 자유함을 준다. 또 진리가 죽음의 공포와 염려와 걱정에서 해방시켜, 생명의 기쁨과 위로와 평안을 준다.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행한 것만큼, 영의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영의 자유이고, 진리 안에 있는 자유이며, 참된 자유이며 영이 살아나가는 자유이다. 성도는 주 안에서 이런 영의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

 

주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자유를 누린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기록된 신구약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다. 주의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2절 가사에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였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비록 그들이 풀무불 속에 들어가 육신이 죽임을 당하는 환경에 처해졌지만, 그들의 양심은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왜냐하면, 깨달은 말씀대로 진리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그들의 양심에는 어떤 거리낌도 없고 평안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깨달아 아는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의미이다. 주 안의 삶을 살면 딴 근심이 있을수 없다.

 

성도는 진리 안에서 영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36절에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영의 자유를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진리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 때 영의 자유를 누린다. 이 말은 성도가 주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참된 영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다. 성도가 주 안에서 심령의 평화와 영적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면, 아무리 많은 자녀를 낳고 부요와 존귀를 넘치도록 누리며 천 년의 갑절을 산다고 해도 그것은 수고와 슬픔뿐인 고통의 세계일 것이다. 성도가 진리 안에서 믿음으로 살며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다.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복음을 영접하고 진리를 깨달아 죄로부터 해방되고 천국을 기업으로 얻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대로, 예수님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자유자로서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지배하고 얽매던 물질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양심을 따라 자유하게 되었다.

 

진리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있는 풍성한 은혜와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84:10)라고, 성전 생활을 하면서 영의 자유함을 누리는 생활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것이라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자아 의지와 다를 수 있고, 우리 부모님이나 직장의 상사와도 다를 수 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그때에도 하나님과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모든 삶의 모든 권리를 주님에게 드리고, 그의 통제를 받는 것을 말한다. 진리 안에 참 자유가 있다. 우리는 진리를 바로 깨달아 알고 그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고 사는 저희가 되어야 하겠다.

 

 

 

 

결론

1. 성도는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

2. 진리 안에 참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