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부활

by shamerin posted Apr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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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은 자의 부활

성경 : 고전 15:12-22

 

一. 부활을 믿는 자가 가장 복 된 자이다.

고린도 교회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바울이 12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라고 책망하였다. 부활이 믿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인 것은, 사람은 죽어 장사 되면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 다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담 이래로 죽어 장사 된 사람은 어느 누구도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부활은 인간의 지적 한계 내에서는 전혀 이해 되지 않고 믿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을 믿지 못할 이유는 없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부활한다고 하면 믿을 수 없고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하신다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므로 죽은 자도 당연히 부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죄악성(罪惡性)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 손으로 만져 확실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으나, 인간의 오관은 생각만큼 정확하지 못하고, 더욱이 신령한 일은 육신의 눈이나 귀로 보거나 들을 수 없다. 따라서 영적인 것을 육신에 맞추어서 믿으려는 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공기를 눈으로 보고 믿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부활을 깨달아 알고 또 그것을 믿는다. 우리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영으로 계시므로 볼 수 없다. 믿음이 아니고는 이 세상이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믿을 수 없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도 믿을 수 없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요 부활이다. 이 부활은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의 기초이다. 우리가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복음 진리를 고수하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만다. 기독교를 믿는 믿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 부활의 도를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요한복음 20장에 도마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하자,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도마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자기 눈으로 보아야만 믿겠다고 하면 ‘믿음이 없다’, ‘의심 많은 도마’라고 비아냥거리면서도, 정작 오늘을 사는 우리들 가운데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활은 성경 말씀대로 된 것이다.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구약의 율법이나 역사나 예언이 전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구약성경 전체는 오실 메시야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며, 예수님과 관련된 예언이 350여회 기록되어 있다.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야의 활동과 그를 전하기 위한 사도행전과 서신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수 재림 대한 예언은 1518번이 나온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즉, 예수 그리스도이다(롬 1:2-4).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예언대로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고(사 7:14),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사 53:5-6),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시편 16:10). 사람의 생각으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으나,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 부활의 권능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부활은 공교하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이나 공자를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지만, 누구도 그들의 역사적 실존에 대해 1%도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한 일들이 역사적 사실로 기록된 글을 보고, 교육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주님을 직접 만나 말씀을 듣고 이적과 기사,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사람들이 남긴 성경 말씀과 기록들이 실제로 존재하기에, 얼마든지 믿고 따를 수 있다.

 

전세계 1,400만부 발행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2017년 제작된 영화 <예수는 역사다>는 14년간 시카고 트리뷴지의 법률 전문기자로 무신론자에서 목회자가 된 실제 인물 ‘리 스트로벨’의 이야기를 통하여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예수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음의 핵심인 예수의 부활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심층 취재하다가 결국 예수 부활이 허구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부활 이야기가 역사이기보다 전설 같다는 ‘리 스트로벨’에게 변증론·철학·종교학 박사이며 리버티 신학교의 신학교수 ‘게리 해버매스’ 박사는 부활을 목격한 정확한 목격자들의 증언들이 존재하며, 그것은 모두 예수 부활 후 몇 달 내 증언들이라고 설명하여 더 이상 반문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이 처음부터 예수의 시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시하는 ‘리 스트로벨’에게, 세계적인 성서학자인 ‘빌 크레그’ 박사는 최초의 기록물에 예수는 매장이 되었다고 정확히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상에 40일간 머무시면서 제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11번 나타내 보이셨다. 대표적으로 요 20:18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시고, 눅 24:10에 여러 여인들에게 보이셨고, 눅 15:5에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막 16:12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보이셨고, 요 20:26-29에 예루살렘에서 열 한 사도에게(도마도 함께 있을 때 보이셨고, 행 1:9에 승천하실 때 모든 사도들에게 보이셨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세상에 머무시면서 11번 나타나셨다. 바울 당시에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람들이 5백여 명 정도였는데, 그때에는 교회에서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목격자들이 다 죽고 부활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증거 할 사람이 없게 되자, 자연히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도성인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부활할 수 없다. 21-22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였다. 사망은 범죄 한 아담의 죄 값으로 인하여 왔으나, 부활은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왔다. 법적으로 인류의 대표였던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그의 후손들도 모두 죽게 되었다. 그런데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대표로서 택한 백성의 죄를 대속하고 부활하셨으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그 영혼이 함께 살아났고, 육체도 부활할 수 있게 되었다. 불신앙에 있던 일부 고린도 교인처럼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과 그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신자들의 믿음도 다 헛것이 된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리스도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전했고, 고린도 교인들은 그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고 하면, 바울이 전한 복음은 거짓이 되고, 고린도 교인들이 복음을 영접하여 얻은 구원과 영생, 부활도 헛된 것이 된다. 기독 신자는 세상 사람보다 바로 살려고 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간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받지도 않는 고난을 당하며 믿음의 여러 가지 시련과 연단을 받으면서도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고 인내하는 것은. 부활의 소망, 즉 내세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망이 헛된 것이고 부활이 없이 이 세상만으로 끝난다면, 기독 신자는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고 더욱 불쌍한 자가 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5문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라고 묻고, 첫째, 그리스도는 부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5문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라고 묻고, 첫째, 그리스도는 부활로써 죽음을 이기셨으며, 죽으심으로써 얻으신 의에 우리로 참여하게 하십니다. 둘째,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런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 주님처럼 죄 없는 의인이 되게 하고, 영혼을 중생시키며. 장차 우리도 주님처럼 영광스런 부활을 한다는 소망과 확신을 말하고 있다. 부활은 성경 말씀대로 된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며, 예수님을 능력으로 부활시킨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도 같은 능력으로 부활시키실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부활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혼이 중생하였고,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내세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기에, 부활을 믿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복 된 자이다.

 

 

二.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이다

사람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며 사람은 본래 죽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죽음은 인간의 죄 때문에 왔으며, 사람에게는 부활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 증거이며, 의인도 악인도 다 부활한다. 5:28-29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였다. 예수 믿고 죽은 자들은 부활하여 영생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고, 불신자들은 부활하여 영원한 형벌의 처소인 지옥의 불못으로 들어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이다. 첫 열매처럼 다음에도 동일한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부활의 이치도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 열매이므로 성도도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 부활의 밑천(資本)이요 원동력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능력으로 그의 부활체와 같이 모든 성도들을 부활시킬 것이 확실하다. 사망은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나 부활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왔다. 아담은 법적으로 인류의 대표인데 그가 범죄하므로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의 영과 육이 죽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의 영혼이 죽었고 마침내 육체도 죽게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대표로서 대속하고 부활하였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영혼이 살아났고, 육체도 부활하게 되었다. 부활은 죄 없는 타락 이전 아담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부활의 순서는 ① 그리스도의 부활, ② 예수님 재림 때 무덤에서 자던 성도들이 부활과 산자들의 휴거, ③ 불신자들의 부활은 천년왕국이 지나간 다음에 있다.

 

성도의 죽음은 잠자는 것과 같다.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은 나사로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하였다. 성도의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하는 것은, 생명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그냥 있기 때문이다. 잠든 사람은 생명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현상 세계에서 꿈의 세계로 바꾸어진 것뿐이다. 그와 같이 성도가 죽어도 영적 생명은 그냥 있고, 육신이 죽을 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가서 사는 것뿐이다. 성도의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하는 것은, 잠든 자는 반드시 다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어떤 경우에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지만, 잠는 자는 반드시 일어난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다시 부활하기 때문이다.

 

1) 씨를 뿌리면 형체가 나온다.(35-37)

죽은 자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이 썩어버리는데 어떻게 다시 살 것인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은 자연계에서도 추론할 수 있다. 사람은 벼나 밀을 직접 심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것의 낟알 곧 씨를 땅에 뿌리지만, 그 씨가 썩은 후에 싹이 나고 자라 각각 벼와 밀의 형체가 된다. 땅에 심은 종자가 썩어져야 싹이 나온다. 새로 나온 싹과 줄기는 심은 종자의 형체와는 전혀 다르다. 종자에는 줄기나 잎사귀, 뿌리가 없으나, 그 종자가 땅 속에서 썩으므로 그것들이 나온다. 이처럼 사람이 죽어 장사되는 것은 종자를 심는 것과 같다. 종자를 심어 놓으면 다음에 새 생명체가 부활되어 나온다.

 

2) 종자마다 다른 형체가 나온다. (38-39)

종자를 심으면 하나님께서 종자마다 다른 형체의 줄기와 잎이 나게 하였다. 이와 같이 현재의 우리 몸과 부활한 몸과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의 육체를 내실 때에 각각 다르게 내셨다. 이와 같이 현재의 우리 몸과 부활체는 다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성도들이 신령하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육체로 부활된다. 하늘에 속한 형체는 해와 달과 별들을, 땅에 속한 형체는 지상에 있는 생물과 무생물의 모든 형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형체의 크기와 모양과 질이 각각 다르게 창조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부활할 때에도 현재의 육체와는 아주 다른 육체로 부활시킨다는 뜻이다.

 

3) 부활 후 영광이 다르다.(40-41)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각각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 형체를 영광이 다르게 지으셨으므로 현재 우리의 육체와 다음의 부활체는 그 형체의 질과 영광이 아주 다르다. 또 성도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것만큼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부활 후에 그 영광이 다를 것이다.

 

4) 부활체의 존귀 (42-49)

①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거둔다.

② 요괸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산다.

③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산다.

④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

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이시다.

 

5) 성도는 부활의 소망으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 (29-34)

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여기의 세례는 고난을 의미한다. 모든 전도자들은 영혼이 죽은 불신자들을 건져내려고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것 즉 부활이 없다고 하면, 영혼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도들이나 전도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며 고난을 당하는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자기를 죽음에 넘기우는 것, 생명을 내어놓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뜻한다. 바울이 맹수같이 악랄하게 복음을 대적하고 핍박하는 사람들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면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부활 소망이 없다고 하면, 이렇게 한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 기독교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주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신자들의 수고는 헛되지 않다. 만일 장래에 우리가 부활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짐승처럼 먹고 마시는 데 빠져서 사는 편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제 성도는 부활 신앙에 굳건히 서서,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생명의 양식을 위해 일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죽은 자의 부활을 확고히 믿는 자가 되어, 견고하여 굳건한 반석과 같은 신앙으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주를 위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으며(마 25:34-40),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이다.

 

 

 

결론

1. 부활을 믿는 자가 가장 복 된 자이다.

2.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