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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막 14:17-21

제목 : 인자와 인자를 파는 자

 

一.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간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 집에 들어가 예비 된 큰 다락방에서 유월절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1월 14일 저녁이고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7일 간으로(레 23:5-6). 이 두 절기는 때때로 동일시되기도 한다(눅 22:1).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출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실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린양을 잡아 그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유대인들의 장자는 죽음의 재앙이 건너(踰越)가 재앙을 면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장차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의 죄 대속해 주실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날이 저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데리고 오셔서 함께 앉아 식사하셨다. 예수님이 유월절 음식을 잡수실 때 예수님을 팔려고 계획중이던 가룟 유다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예수께서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모든 제자들이 근심하면서 한 사람씩 ‘내니이까’ 하고 물었다. ‘내니이까?’라는 말의 원어(메 티 에고)는 ‘나는 아니지요?’라는 말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누구라 지적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열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미 가롯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배은망덕한 유다를 원수처럼 대하거나 저주하시지 않으시고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말씀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에도 예수님은 "친구여 너의 할 일을 하라"고 끝까지 사랑으로 대해 주셨다. 그 이유는 인자는 자기에게 기록된 대로 가기 때문이었다. 즉,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를 지신 것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의 죽음은 가룟 유다 때문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이고, 유다는 악한 일에 이용당한 것뿐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88번이나 “인자”로 불렸다. “인자”라는 의미는 다니엘서 7:13-14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라는 예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인자”는 표현은 메시아를 지칭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아흔 세 번이나 "인자"라고 불렀는데, 이는 예수님이 정말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근본적으로 하나님이시며, 은 또한 인자로 참으로 사람이셨다. 따라서 "인자"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며, 참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메시아가 고난을 받아 죽임당하시고 피 흘리실 것이 예표되어 있거나 예언되어 있다. 구약시대의 제사 제도는 장차 택자들을 위한 유월절의 양으로 세상에 오실 메시아의 피흘려 죽으심을 예표하는 것이다. 또 성막 제도에는 제물의 죽임과 피 흘림 그리고 그 피를 성소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림 등이 있는데, 이것도 메시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을 예표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예표적, 상징적 사건들뿐만 아니라, 직접적이고 분명한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예언들이 있으며, 그 예언들은 후대에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타락하여 범죄한 인간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 마귀의 세력을 깨뜨리고 구원해 주실 것을, 범죄 한 인류의 조상에게 약속해 주셨다. 이 말씀대로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무고한 죄로 고난을 당하고, 구속 완성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시편 22편은 주전 1,000년 전 사람인 다윗이 지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자세한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 하시나이까. 이 구절은 마 27:46; 막 15:34에 기록된 십자가 위에서 수난당하신 주님께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외침과 동일하다.

22:7-8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런 조소를 받으셨던 것이 마 27:43에 기록되어 있다.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악인들이 의인의 수족을 찔렀다는 이 표현은 훗날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 것으로 그대로 이루어졌다(요 19:17-37).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였다고 요 19:23에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53장 전체는 유월절 양으로 오신 메시아의 고난과 죽으심을 예언하고 있다.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700년 전에 활동하였는데,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택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받으시고, 택자의 구속을 완성하실 것을 예언하였는데, 700년이 지난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당신의 죄값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허물과 죄 때문이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고 십자가형을 당할 죄가 없었으나, 성경 말씀을 응하게 하고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질고를 져주시고 슬픔을 당한 것이다.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양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에게 젖과 털을 제공하다가 그 수명이 다하면 그 고기까지 먹히움을 당한다. 제물로 사용되어 인간의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면서도 인간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대신 피 뿌림을 당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의 어린양처럼 세상에 와서 인간을 위해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 병 고침과 귀신을 쫓는 권세를 베푸시고 복음을 전하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택자들의 죄를 대속 하셨다.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는 것은, 대속의 원리를 말한다. 죄로 더렵혀진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깨끗케 할 수 없다. 마치 구스인이 그 피부색을 변하게 할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죄인이 자기 스스로 자기의 죄를 씻을 수 없다. 인간의 영혼은 허물과 죄로 죽었으므로 죄에서 벗어져 나올 수도 없고, 하나님께 대한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전적 부패한 상태에 있으므로, 죄인이 어떤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공을 세워 그 죄를 사유함 받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음으로만 죄 사유함을 받을 수 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리 성도들에게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는 능력이 된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채찍에 맞았다. 그로 인하여 우리가 죄의 형벌에서 해방을 받았고, 죄의 상처가 나음을 얻었다. 우리가 받을 징계를 예수님이 대신 받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엡 2:15-17), 우리 심령에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1-2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기로 결정했지만, 일반 백성들이 봉기할까 두려워 명절 곧 니산월 14-21일까지의 8일 동안에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유다의 예기치 않은 가롯 유다의 배신을 인해 그들의 계획을 변경하여 유월절에 예수님을 체포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작정대로 이루어진 것이고, 인자는 세상에 오실 어린양으로서 자기에 기록된 대로 간 것이다.

 

 

二. 인자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1절 이하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기로 결정해 놓고 죽일 방책을 찾고 있었다. 예수님이 죽게 되었고 더 이상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안 유다는, 차제에 예수님을 원하는 자들에게 넘겨주고 돈을 받고자 하였다.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고 물으니, 그들이 은 삼십을 대가로 지불 하였다(마 26:14-15). 출 21:32에 의하면, 황소가 남의 노예를 죽였을 때 은 삼십 세겔을 배상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은 삼십은 당시 종 하나의 몸값에 해당한다. 그때부터 가롯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았다(마 26:14-16).

 

악한 자가 악한 꾀를 써서 악한 일을 도모하여도 형통하게 잘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위해 대제사장들에게 갔을 때도 그들이 즉시로 은 30을 달아 주었다. 유다가 은 30을 받고 자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득의였으나, 예수님이 정죄됨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기 죄를 뉘우쳤다. 그래서 받았던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다시 갖다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하였으나, 그들은 그것을 받지 않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였다. 이에 낙심한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마 27:3-5).

 

예수께서는 유다가 사리에 밝고 재물의 계산에 대해 능한 그의 재능과 성격을 아시고 돈 궤를 그에게 맡기셨다. 그러나 그는 돈궤를 맡아 정직하게 처리하지 않고 그 중 얼마를 훔쳐 자기의 사욕을 채우고 있었다(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있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릴 때, 가롯 유다가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하고 대표적으로 마리아를 나무랐던 것도, 만약 마약 마리아가 그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돈으로 주님께 바쳤다면, 거기서 얼마간의 유익을 취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 기회의 이익이 사라진 것이 너무나 아쉽고 원통했기 때문이었다. 유다가 스승을 배신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돈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21절에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유다는 마 26:25에 “랍비여 내니이까”라고 예수님께 물었다. 가룟 유다가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을 ‘랍비’ 곧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또 “내니이까?”라고 물은 것은, 주께서 그의 은밀한 계획을 모를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 중 열두 명의 수에 든 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3년을 있으면서 진리의 말씀들을 들었고 예수님의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다. 그는 전도하기 위하여 여러 동네들로 보냄을 받았으며, 병 고치는 능력을 받아 병자들을 고치기도 했을 것이다. 아마도 가롯 유다는 예수님이 구약성경이 예언한 메시야, 그리스도, 구세주이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한 이유는, 성도 특히 교역자 중에도 가라지(불택자)가 있다는 것,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되며, 택자와 불택자를 추수 때까지 함께 두신다는 것,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하여(시편 41:9).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 생명 운동에 손해 주고 방해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앙화와 저주가 임한다. 가롯 유다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1:18-19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차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예수님을 배반하고 무죄한 피를 판 가룟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저주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으려고 나무에 매달렸는데, 묶었던 끈이 끊어지면서 배가 터져창자가 흘러 나와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베드로는 이 일이 69:25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라 한 말씀이 응한 것이라 증거하였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자는, 저주받아 망한다는 뜻이다. 오늘날도 믿음을 저버리고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면 가룟 유다처럼 그 말로가 비참하게 된다.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시고 그 모든 것을 적당하게 사용하신다. 악한 사람도 적당하게 사용할 때가 있고 사용할 자리가 있다. 하나님은 본래 죄를 내지 않으셨으며 죄에 대한 책임이 없으시다(시 5:4). 그러나 하나님은 악을 이용해서 당신의 구원운동을 하기도 하신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나 하나님은 그를 이용해서 성도의 구속을 이루셨다. 하나님은 악인도 이용해서 택한 백성의 구원운동을 이루어 나가신다.

 

그리스도를 배신한 가룟 유다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사람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가치가 단순히 출생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가룟 유다의 경우, 그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좋았다. 그에게 있어서 사람으로 출생했다는 사실이 복이 아니고 오히려 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49:20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고 하였다. 가롯 유다는 주님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은혜를 깨닫지도 감사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스승을 팔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다가 비참한 말로를 당하였다.

 

고난주간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유월절 양으로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속죄의 죽음을 죽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저희가 되어야 하겠다.

 

 

 

 

 

결론

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간다.

2. 인자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