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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골 4:7-18 

제목 : 바울의 동역자들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아무리 용맹한 장수라도 명령을 받들어 싸우는 군사가 없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운동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성도가 기도와 정성과 모든 것을 바쳐서 함께 협력할 때 되어져 나가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에, 모세는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 기도했고, 아론과 훌은 좌우에서 모세의 손을 바쳐 주었기 떄문에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일한 선지자나 의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때, 선지자나 의인을 영접하고 그들에게 협력한 사람들도 같은 상을 받는다.

 

1. 두기고 (7-9)

바울이 두기고를 오네시모와 함께 골로새 교회에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황을 교회에 알리게 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사정을 알지 못해 궁금하고 염려하는 교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도록 하였다. 두기고는 사도행전 20:4, 에베소서 6:21, 디모데후서 4:12, 디도서 3:12에 각각 기록되었다.

 

에베소서 6:21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하였다. 두기고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사랑을 받는 자로, 주님 보시기에 충성된 신실한 일군이었다. 또 바울을 도와 주의 일을 한 동역자이었다. 바울이 두기고를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고 소개한 이유는, 두기고가 바울의 곁에 있으면서 그를 신실하게 잘 섬겼기 때문이다. 동역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덕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귀한 일꾼이다.

 

두기고는 매우 신실한 일꾼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때 거짓됨이 없었다. 일꾼’의 원어(디아코노스)는 ‘집사’와 같은 말로서 ‘봉사자, 섬기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눈가림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신실하며 성실했다. 또한 바울의 속사정을 성도들에게 잘 대변해주었다. 그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 자신의 사정을 모두 알게 하여 이해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처신했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도 바울의 사정을 자세히 알게 했다(엡 6:21). 또한 바울이 환난을 당하여 곤고할 때에도 그와 함께 동행하였다(20:4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라).

 

(8) 바울이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에 보낸 목적은, 첫째 그들의 사정을 파악하고, 둘째 그들을 위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일반적으로 심부름하는 일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윗사람이거나 동년배일지라도 심부름은 더더욱 쉽지 않으며, 손아랫사람이 시키는 심부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두기고는 믿음으로 바울의 심부름을 잘 감당하였다. 바울이 명한 일을 간단한 것이 아니었고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으며, 단순히 편지만 전달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울 개인의 사정까지 조리있게 덕을 세우며 잘 설명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심부름은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는다. 정직해야 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하며, 지혜도 있어야 하고 신속하게 처리하여야 하며, 무엇보다도 바울의 의도와 형편을 편벽됨이 그대로 전하여만 한다. 그런 면에서 두기고는 아주 성실하게 바로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 오늘날 교회에도 두기고처럼 복음을 위해 헌신하되, 섬기는 자세로 믿음으로 목회자와 함께 멍에를 메는 동역자가 필요하다.

 

2. 오네시모 (9)

오네시모는 골로새 출신으로 빌레몬의 종이었다(몬 1:10). 그는 빌레몬의 집에서 종살이 하다가 과오를 범하고 도망쳤다가 로마의 옥에 갇혔다. 그는 옥중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어 새사람이 되었다. 오네시모는 전에 도망친 종, 무익한 종이었으나, 이제는 주 예수를 믿고 사랑받는 형제가 되었고(몬 16) 사도 바울에게 유익한 수종자가 된 자이었다(몬 11). 새사람이 된 오네시모는 바울을 도왔으므로, 큰 도움이 되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오네시모를 전과자로 취급하지 않고 사랑받는 형제로 대우하였으니, 주인인 빌레몬에게도 그를 용서하고 받아 주기를 부탁하였다.

 

복음으로 변화된 오네시모는 바울의 심복이 되었다. 심복은 원어로 ‘스플랑크나’라고 하는데, 이는 ‘내장’이나 ‘간장’을 의미한다. 만일 내장이나 간장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그처럼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과거에 잘못하고 손해 주던 사람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복음 전도에 유익이 되고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 전승에 따르면, 후에 오메시모는 에베소의 감독이 되었다 한다. 당시 가장 위대한 복음의 지도자가 되었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시리아로 호송되어 순교의 길을 가는 중에, 에베소의 감독 오메시모에게 감사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모든 성도는 오네시모처럼, 교역자가 “그 사람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3. 아리스다고 (10)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으로서(행 20:4),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갈 때에 동행하여 로마에까지 같이갔으며(행 19:29, 27:2),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도 얼마 동안 갇혀 있었다.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한 동역자였다. 그는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했으며, 바울과 함께 일했고 함께 옥에 갇혔다. 그는 항상 바울의 옆에서 동행한 사람이었다.

 

누가는 그를 가리켜 “바울과 같이 다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19: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같이 다니는 사람”이란 “쉰엑데모스(συνεκδημοs)로서 ”함께 여행하는 사람“(traveling companion)이라는 의미다. 그는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지역 교회만을 섬긴 것이 아니라, 바울과 함께 직접 나서서 선교여행에 동행했다. 아리스다고가 언제 어떻게 바울을 알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바울을 알게 된 날부터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바울과 함께 다니며, 함께 감옥에도 갇히고, 함께 일한 “함께”의 일꾼이다.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이었으므로, 백인 유럽인이었다. 백인으로서 왜소하고 병약하며 풍채가 초라하게 보이는 아시아 사람 바울을 존경하며 일생 동안 함께 했다는 것은, 그의 인격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알 수 있다.

 

4. 마가 (10)

마가(큰망치)는 예루살렘의 부유한 레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어머니 마리아는 신실한 신앙인이어서 그의 집을 가정 교회 장소로 제공하였으며, 사도들과 교제하였다. 마가는 특히 외삼촌인 바나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베드로에 의해 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벧전 5:13) 혈기 왕성한 청년 마가는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열심도 보였으나, 참된 신앙을 갖기 못하여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자 잡혀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두르고 있던 베 홑이불을 던져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하였다(막 14:51-52).

 

선교사로 세움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던 마가는, 밤빌리아에서 선교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그에게는 선교에 따르는 어려움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2차 전도여행 때에, 마가를 데려가자는 바나바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바울과 다툼이 일어나 둘이 갈라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행 15:37-39). 그러나 그후 마가는 오랜 연단 기간을 거쳐 다시금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위신을 회복하였다.

 

겁 많고 실수를 거듭하던 마가는 주 안에서 그 믿음이 장성해지자, 병약한 몸으로 감옥에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던 바울을 끝까지 지켜주었다. 또한 마가는 제 2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여 로마인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었다. 마가는 전에 바울에게 무익한 자이었으나 지금은 유익한 자가 되었다. 마가가 전에는 바울에게 큰 손해를 주었으나, 회개한 다음에는 유익하게 되었다(딤후 4:11). 바울이 그 마가를 골로새 교회에 보내면서 골로새 교회가 그를 잘 영접하라고 부탁하였다. 마가는 말년에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우고 이집트에서 선교 활동에 전념하며 헌신된 봉사자로 살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5. 유스도 (11)

“유스도”는 전에 할례당파에 속하였었다. 할례당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울을 반대하자, 유스도는 복음을 영접하고받 바울을 따르면 전적으로 그를 도우며 구원운동에 협력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교역자가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바른 복음만 붙잡고, 예수만 향해서 달음박질을 잘하면 하나님이 대적자를 굴복시키고 도와줄 사람들도 보내주신다.

 

6. 에바브라 (12)

바울을 통해 복음을 영접한 에바브라(Epaphras)는 자기 고향 골로새에 돌아가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다. 에바브라는 고향 골로새만이 아니라 인접 도시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도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도 교회를 세울 정도로 열심이었다(골4:13). 그는 골로새교회의 설립자이면서 그 교회의 사역자였다. 그는 교회 지도자로서 매우 신실했으므로, 바울은 그를 가리켜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라”고 불렀다(골1:7). 그는 주장하는 자세로 살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종으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또한 종의 자세로 교회를 섬겼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만이 아니라 라오디게아교회, 히에라볼리교회를 위해서도 많이 수고했다(골4:13). 그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로 수고하였으며, 교인들이 믿음에 굳게 설 수 있도록 돌아보며 격려했다. 에바브라가 전에는 골로새 교회에서 가르쳤고, 지금은 로마에 가서 옥중에 있는 바울을 받들어 주며 봉사하는 일에 수고하였다. 바울은 그를 가리켜 사랑하는 동역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 하였다.

 

7. 누가 (14)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출생한 이방인이었던 “누가”(빛을 주는 자)는 바울로부터 전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새롭게 거듭난 누가는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영의 의사로 변화되었다. 누가는 의사로서 의료활동을 통하여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박차고 바울을 따라나서 수종자가 되어 바울을 잘 받들어 주고 누가복음을 기록하였다. 이방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신약성경의 4권의 복음서 가운데 가장 문학적인 책으로 인정받는 누가복음과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저작하였다.

 

누가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에 동행하며 그의 주치의가 되고 친구가 되어 본격적인 선교활동에 함께 하였다. 누가는 바울의 지병(바울의 가시)를 담당한 의사이자, 선교의 동역자였다. 바울이 딤후 4: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한 것을 보면, 누가는 옥중에서 바울이 임종할 까지 지근에서 충성되이 시종한 조사(助事)였다.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인 누가는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동행하며 많은 고난을 감수했다. 전설에는 주후 100년경까지 전도하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8. 데마 (14)

데마는 바울을 도와서 주의 일을 하는 일군이었으나, 나중에 믿음이 약해져서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딤후 4:10). 본서에서 데마가 문안한 것은 그가 바울을 떠나기 전이었다. 데마는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복음이 세상을 이기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며 영원한 상급의 가치를 소흘히 여기게 되었다. 데마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보다는 잠시 동안 죄의 낙을 누리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으로 나가 버렸다. 세상을 사랑한 데마는 오래 전부터 영적인 스승 사도 바울을 떠나고 싶었지만, 제자로서 마지막 남은 양심과 의리 때문에 얼마간 멈칫하고 있었으니, 바울의 순교가 다가오자 세상을 향해 떠났다.

 

신실했던 초심을 잃어버리고, 사도 바울과 하나님의 교회를 떠난 데마는 배신자가 되었다. 초년에는 교회의 신실한 지도자요,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활동해서 널리 소문났던 사람이 마지막을 잘 처리하지 못하므로 타락한 배신자가 되고 말았다. 비록 인생 초년에 여러 가지 실수로 큰 오점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말년에 마음을 바꿔 회개하고 돌아오면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신을 가르쳐 사람 되게 했던 스승을 배신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늙고 병들고 어려움에 처한 스승의 곁을 무정하게 떠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악한 행동이 된다. 어렵고 힘들 때에라도 끝까지 옆에 있어주는 태도가 참된 기독교인이다.

 

8. 라오디게아 형제와 눔바 (15)

라오디게아는 골로새 부근에 있는 지방이다. 바울이 그곳에 있는 교회들에 관심을 가지고 문안하라고 하였다. 눔바는 라오디게아의 신도이며 그의 집은 예배 처소였다. 즉 눔바는 그의 집을 신자들의 모임 장소로 제공한 그리스도인이다. 눔바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여자로 보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이다.

 

본서를 골로새 교회에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어 읽게 하라는 말을 보면, 성경의 서신들은 개인이나 개교회에 관한 것이 아니고 여러 교회에서 읽어야 될 공적 서한인 것이 분명하다.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 현존 성경에는 라오디게아서가 없다. 바울 사도가 당시 서신들을 여러 교회에서 윤독케 하였음으로 에베소서나 혹 다른 서신(현존 성경에 있는 서신)이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읽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 서신을 골로새 교회에서도 읽으라고 한 것이다. 성도가 여러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될 것과 성경을 깨달은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될 것을 교훈하고 있다.

 

9. 아킵보 (17)

바울의 선교사역에서 그를 직, 간접적으로 도운 사람은 약 100여명이 된다. 그들은 주로 개인으로, 물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부부가 헌신한 가정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과 아내와 자녀까지 온 가족이 한결같이 헌신한 가정은 별로 없다. 또 바울이 개인이나 교회 성도들로 인해 감사한 일은 있지만, 한 가족 전부에 대해 고마워하며 항상 기도해준 가정도 많지 않다.

 

바울에게 있어서, 온 가족이 충성한 가정, 바울이 큰 기쁨과 위로를 얻은 가정이 빌레몬의 가정이다. 그 가정의 모범적인 자녀가 아킵보(Archippus로, 바울은 아킵보를 영적 전투에서 바울과 “함께 군사된 자”라고 소개했다(몬 1:2). 아킵보는 골로새 사람이며, 경건한 아버지 빌레몬의 아들이다.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우리의 사랑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및 자매 압비야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에게 안부를 물었다. 이로 보건대 수신자들은 빌레몬의 가족이었다.

 

주석가 헨드릭슨은 압비야가 빌레몬의 아내요,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아킵보는 복음을 위해 헌신했다. 바울과 “함께하는 군사”가 되었으며, 그는 대내적으로 부모님 못지않게 골로새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겼다. 그는 골로새교회의 장로이거나, 특수선교를 위해 그곳에 거주한 복음전도자가 되었다(골4:17/ (Edgar J. Goodspeed). 혹은 성경 낭독자로, 혹은 골로새교회의 목사였다(Thiessen). 심지어 그는 부모님과 함께 골로새에서 순교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바울과 함께 힘을 합해 싸우는 전우(戰友)였다. 아킵보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생명을 다해 싸우는 충성스러운 일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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