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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히 6:1-20 

제목 : 소망을 가지고 전진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연약한 신앙의 초보에 머무르지 말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것을 권면하는 한편, 배교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1-8절). 그리고 성도들은 구원에 가까이 있는 자들임을 알고 소망 중에 인내하여 멜기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신 예스그리스도처럼 휘장 안으로 들어가기를 힘쓸 것을 권면하고 있다.

 

一. 완전한 신앙인이 되기를 힘쓰라 (1-8)

성도는 연약한 신앙의 초보에 머무르지 말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기를 힘써야 한다, 믿은 지 오래되면 마땅히 그리스도의 초보적 신앙 상태에서 벗어나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되고, 영적 성장을 이루어 선생의 자리에 다다르고 점점 영적 완전체로 만들어져야 한다. 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도의 초보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말한다. 성도의 신앙 인격은 도의 초보 즉,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져 완전한 데로 나간다.

 

‘도의 초보를 버리라’는 말은, 2절 하반절에 있는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1-2절에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는 기독교 신앙의 초보적인 진리를 말한다. 성도는 이제 이런 초보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현대어성경은 1절을 “이제는 그리스도교의 초보 진리를 배우느라 같은 자리에서 언제까지나 맴도는 일은 그만두고 더 깊은 진리를 배우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라고 하였다. 성도는 이런 기본교리를 당연히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이런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 몇 가지 교리를 깨닫지 못하여 계속하여 집짓는 이가 터를 다시 닦는 것처럼 다시 배우면 안 된다. 도의 초보를 버리고 터를 다시 닦는 것은, 집을 짓기 위한 기초 공사를 이미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 위에 기초 공사를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은 평생토록 수고해도 집을 짓지 못한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2절 하반절을 ”...같은 기초적인 교리를 다시 배우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의 초보적 말씀에만 머물거나 그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야 한다. ‘완전한 데’라는 말은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성숙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조차 확실히 깨닫지 못하여 계속하여 다시 배우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더 높고 더 깊고 더 넓은 지경에까지 자기를 건축하여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신앙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위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고백했다. 예수께서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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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이 타락하면 다시 회개할 수 없다 (4-7)

히브리서의 저슬 목적은, 신앙이 정지 상태에 있거나 혹은 퇴보하는 성도에게 영적 성장을 권면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후퇴하는 경우 즉,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에게 어떤 비참한 결과가 초래되는가에 대해 엄히 경고하고 있다.

 

‘한번 비췸을 얻었다’는 말씀은 복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며,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했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것은 복음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선한 내용들, 즉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내세에 있을 부활과 천국의 기쁜 일들과 심판과 지옥의 두려운 일들에 대해 믿게 된 것을 뜻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구속의 은혜와 심령의 평안, 영적 자유함을 맛보아 누리고도 타락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불신앙의 상태로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타락은, 예수를 믿어 중생한 자가 교리적으로 타락한 것을 가리킨다. 즉, 영적 체험을 받아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은사를 체험하였다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자를 가리킨다.

 

이같이 기본적인 교리를 의식적(意識的)으로 버리고, 잘못된 교리를 따라간 자는 다시 회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나 교리적으로 타락된 자라도 구원을 얻되 많은 징계를 받고 불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구원(고전 3:15)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다’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인데, 이것을 의식적으로 버리고 다른 복음(다른 교리)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욕보이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과거에 받았던 바른 진리를 십자가에 현저히 욕을 보였으므로 회개케 할 수 없는 것이다. 고의적으로 배도한 '타락한 자들'은 스스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타락하여 다시 회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2) 배교자는 불사름을 당한다 (8)

기본 교리를 버리고 타락한 자는 저주와 불사름을 당하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단비를 받아 영적 성장을 이루어 영적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영적으로 성장하기는커녕 가시와 엉겅퀴 같은 나쁜 열매를 맺으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영적 흑암에 처하게 된다. 성도가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타락과 배교의 위험한 경계선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나 반드시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해야 한다. 딤전 4:15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하였다.

 

구원받은 성도가 타락하여 배교자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믿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도가 끝까지 견디어 영광에 이른다는 것 즉 ‘성도의 견인(堅忍)’을 밝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악에 넘어지는 경우가 있어도 다시 일어나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즉, 성도의 견인이란,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참 신자라면 결코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수 없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인해 확실하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스스로 구세주이신 예수를 부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함께하시고 천국가는 그날까지 지켜 보호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타락하여 믿음을 배반했다면 그는 참으로 중생한 자 즉, 택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하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자들은 잠시 연약할 수 있으나, 마침내 다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도 타락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하지 말고, 신앙이 타락하며 다시 회개하지 못하고 영적 흑암에 처하여 간신히 영혼만 구원받는 불쌍한 자가 된다는 경고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자들은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겸손과 두려움으로 깨어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

 

 

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전진하라 (9-20)

현대어성경은 9절을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렇다고 이 말이 여러분 모두에게 적용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 각자가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각각 맺고 있다고 확신합니다.”라고 하였다. 저자는 4-8절에서 배도자들의 결국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경고하였으나,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배도자가 아니며, 각각 자기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나가고 있으므로 구원이 가까운 줄 확신한다 하였다. 그리고 배도자들과 비교하여 배도자들이 받는 저주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상태에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성도의 신앙 행위를 잊지 않으시고 갚아 주신다. 성도에게 주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를 섬긴다. 이러한 봉사는 참으로 주님을 섬긴 것이 되며(마 25:35-40), 이것은 인간적인 사랑과 봉사가 아니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대접하는 신앙의 행위로 산 믿음의 증거이다(약 2:26).

 

1) 약속의 기업을 받은 자들을 본받으라 (11-18)

10절에 신자들이 사랑의 봉사를 잘한 것을 칭찬했으나, 11절에는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기를 힘쓰라”고 권하고 있다. 내세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랑은 인본주의의 사랑으로 전락되고 만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세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도록 항상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 내세의 소망은 마치 배의 닻과 같아서, 이 세상 모든 유혹과 환난을 이기게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와 같이 될 소망을 가져야 한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성도가 구원 이루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 과거에 앞서간 신앙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고, 오래 참고 기업으로 받았다. 성도들도 이 선진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한다. 이것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고, 부지런히 믿는 일을 하면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노아가 수십년에 걸쳐 방주를 부지런히 지으면서 홍수와 구원에 대한 약속을 기다린 것과 같다.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시험이 와도 참고, 말씀대로 부지런히 순종해 나가야 한다.

 

본문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의 예로 아브라함을 든다(13-15). 맹세하는 자는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는데(16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당신보다 더 큰 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다.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는 절대 변치 않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신 약속과 맹세의 내용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것이다(창 15:5). 아브라함은 믿는 자의 조상이므로, 이 약속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오늘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복 주고 번성케 해주겠다고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을(창15:5)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음으로 오래 참아 이삭을 받았다(롬4:18-21). 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아지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삭을 바쳐 드렸다(창15:5). 그때 이삭을 다시 얻었다(히11:17-19). 또 아브라함이 믿음의 자손을 많이 얻었다. 성도의 인내는 가만히 앉아서 참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오래 참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면서 참았고, 노아도 방주를 예비하면서 오래 참아 약속을 기업으로 받았다.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거저 받는 것이 있고, 또 믿고 순종하여 말씀을 실행하면서 오래 참고 기다려야 받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고 하신 말씀을 그가 믿을 때에 즉시 의인이 되었고,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으므로 이삭을 다시 받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믿음으로 거저 받는 것이 있고 아브라함같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오래 참아야 받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맹세할 때에 자기보다 큰 자 즉 신을 가리켜 맹세하는 것이 통례이다. 맹세는 모든 다투는 일의 최후 확정이다. 일단 맹세하면 반대하는 것과 부정하는 것이 중지되고, 절대적으로 그것을 신임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사실이 변치 아니함을 확증하기 위하여 맹세로 보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영원 불변하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과 약속하신 것도 변치 않으신다. 그 약속이 변치 않으실 것을 보증하시기 위하여 맹세해 주신 것이다.

 

(18)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은 첫째로 그의 약속하심 자체이며, 둘째로 그의 맹세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확실한 약속을 주시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피하여 가는 것은 ①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가며(벧후1:3-4), ②환난, 고통, 어지러움의 세상을 피하여 간다는 의미이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간 것처럼 성도는 이 세상의 모든 썩어질 것을 피하여 약속하신 기업을 얻으려고 천성을 향해 가는 자이다. 이렇게 피하여 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기업을 약속으로 주셨고 또 맹세하여 확실한 보증을 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환난과 고통과 핍박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그 소망 중에 달음박질 한다. 이것은 마치 들에서 폭풍과 큰 비와 뇌성벽력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피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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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도의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과 같다 (19-20).

큰 풍랑이 일어날 때에 배가 닻을 바다에 내리면 밀려 나가지 않고 안전하게 그 풍랑을 이겨낼 수가 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에 대한 성도의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아서 아무리 환난 풍파, 어려움이 많은 세상이라도 소망의 닻이 견고하기 때문에 밀려 나가거나 파선하지 않고 안전하게 휘장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닻을 내린 사람은 그 말씀이 붙들어 주기 때문에 죄악이나 철학이나 잘못된 교리(신신학, 신비주의, 현실주의, 상업주의)의 풍조에 밀려가지 않는다.

 

휘장 안은 지성소를 가리키며, 지성소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휘장 안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영적인 신령한 세계 그리고 소망에 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성도는 소망의 닻을 든든히 붙들고 그 말씀 안에 들어가서, 말씀에서 생명을 얻고, 주님을 발견하여 깊이 사귀며 안식을 누리며, 주님을 닳아 나아가다가 주님이 오라 하실 때에 영원히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휘장 안에 들어가는 것이요, 휘장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6:20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예수께서 먼저 휘장 안으로 들어가셔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도 휘장 안의 생활을 하시다가 부활 승천하여 휘장 안(하늘나라)에 들어가셨다. 예수님은 앞서가면서 발자취를 따라오라고 성도들을 인도하신다(요10:4). 멜기세덱은 특별한 제사장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도 대제사장으로 당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 속죄해 주셨고, 부활 승천 후에도 대제사장직을 가지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하나님이 받으실만 인격자로 만들어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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