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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약 1:16-27 

제목 :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

 

一. 각양 좋은 은사는 위에서 내려온다 (16-18)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위에서 주신다. '은사'(*,도시스)와 '선물'(*,도레마)은 동일하게 '주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디도미'(*)라는 동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좋은 은사'는 일반 은총이 아닌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 은총을 의미하며, '온전한 선물'은 성도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며 영화로운 상태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행위이다. 그리스도는 빛과 생명의 세계에서 나에게 온전할 선물이요, 좋은 은사이다.

 

위로부터 온 은사와 선물은, ➊대속의 은혜, ➋의롭다 하심, ➌하나님의 아들 됨, ➍하늘나라의 시민권, ➎하나님의 사랑, ➏보호, ➐인도 등등이다. 온전한 선물은 진리로서, 세상 것은 없어져도 진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은사와 선물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며 온전한 것이다. 미련한 사람들은 땅에서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얻으려고 노력하고 싸우며 다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 땅의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며(마 6:33), 성도에게 참으로 좋은 모든 신령한 은사와 선물은 위로부터 내려 주신다.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할지라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은사와 선물도 변함이 없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시험을 주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이유이다. 즉, 하나님의 뜻은 모든 택자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라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중생 즉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된 것이었다.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영광스런 천국과 부활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를 중생시키셨고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인내로 모든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二.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19-28)

1) 듣기는 먼저 하라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기'에서 비롯되었다. 성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신속하여야 하며, 성도들 간의 관계에서도 다른 이의 말을 먼저 들어주는 지혜와 아량이 필요하다. 남의 긴 얘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자기 자랑이나 했던 얘기를 반복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얘기를 계속할 때, 그것을 들어주는 것은 고도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성도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 스바 여왕이 이스라엘 나라에 와서 솔로몬을 모시고 있는 신복들에게 왕상 10:8에서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라 하였다. 솔로몬의 신복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 그것을 스바 여왕은 참으로 부러워 하였다. 날마다 귀한 진리를 배우며, 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믿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바로 배우고, 그리스도의 신령한 세계에 대하여 바로 배우는 사람이야말로 복 있는 사람이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나므로, 진리의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은 곧 믿음을 받는 것이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있어도 바른 믿음이 되지 못한다. 마 13:16-17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신령한 것을 보고, 듣고, 깨닫는 자가 참으로 복 있는 자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영적세계를 보며, 진리를 깨달아 그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이것이야말로 성도가 누리는 가장 큰 복이다. 예수께서 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다. 성도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감추었던 만나이며 질그릇에 담긴 보배이다. 귀가 있다고 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만 성령께서 은밀한 가운데서 심령의 귀에 들려주시고 깨닫게 해 주신다.

 

2) 말하기는 더디하라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것 중의 하나가 언어를 통한 대화이다. 말하기를 더디하라 것은 말을 천천히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도는 성급하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하거나 자기의 고집만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탈무드는 말의 영향력에 대해 "말은 손이 없지만 손이 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말은 손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손은 가까이 있는 사람만 죽이지만, 말은 화살처럼 먼데 있는 사람도 죽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은 화살도 넘어선다. 왜냐하면 화살은 손으로 막을 수 있지만, 말의 쏘아대는 무서운 상상력은 피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18:6-7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미련한 자는 공연히 다른 사람을 이간 붙이고 격동시켜 다툼을 일으키며, 쓸데없는 말을 하여 화를 자청한다. 같은 말이라도 언사(言辭)에 따라 상대를 격동시키기도 하고 격동을 멈추게도 할 수 있다. 말 한마디 잘못하게 되면 자기의 영혼이 올무에 걸려 망하게 된다. 17:28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 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미련한 자라도 입을 닫고 잠잠하면 실수를 많이 하지 않고 화를 면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든지 말을 함부로 많이 하면 실수를 하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그 입술을 항상 제어한다. 성도가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해야 한다. 12: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입의 열매로 다른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3)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이 옳지 않은 일을 보고 화를 낼 수 있겠지만, 화를 내더라도 많이 생각한 후에 내어야 한다. 우리가 성내기를 더디 해야 할 이유는, 화를 낼 때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지혜이다. 옛말에 “인일시지분 면백일자우”(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 일시의 분노를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한다는 뜻이다. 또 참은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였다. 흔히 ‘홧김에 뭐 한다’고 하는데, 화가 나면, 해서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일을 저질러 결국 화를 당한다. 가인이 자신의 제물이 열납되지 아니하자 안색이 변하였는데, 이는 극심한 분노와 불만으로 얼굴이 경직된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자기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가인은 동생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수욕을 당할 때 잘 참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수욕을 당할 때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는 자는 실패한다. 금강석을 다른 사람이 숯덩이라고 한다고 금강석이 숯덩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참고 나아가면 언젠가는 바로 알아 줄 날이 온다.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이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행위(=빛과 소금의 역할) 이루지 못하게 할뿐더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4) 온유함으로 도를 받으라 (21)

구원받는 사람은 무엇보다 죄악된 생활을 회개하여야 한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독교의 중심 교리인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석과 부활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지혜로 전혀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고, 십자가의 도를 믿는 사람, 특히 성경 말씀대로 바로 믿으려는 사람은 더욱 미련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진리를 믿는 사람에게 십자가의 도는,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믿는 자에게 죄 사함을 받아 구원케 하고, 중생케 하며,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 나가게 하는 능력이 된다. 도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면, 먼저 심령 속에 가득힌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려고 온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사전적으로 “온유한 자”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말하지만,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것은, 더럽고 악한 것, 강퍅한 마음을 심령 속에서 내어버리고, 온유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온전히 받으라는 뜻이다. 살전 2:13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하였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그러므로 바울을 통하여 증거된 말씀이 그들 속에서 역사하여 많은 믿는 자들이 나왔다. 본문에 '행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타이'(*)는 '아사'('행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윤리적 측면의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생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Calvin은 말했다.

 

5)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22-56)

1) 도를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자이다.

거울을 볼 때 얼굴에 무엇이 묻었으면 즉시 닦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찔림을 받을 때 자기의 결점을 발견하여 고치고 죄에서 떠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다. 말씀을 들을 때 내가 죄를 범하였구나, 내가 부족하구나, 내가 이렇게 하여야겠구나 하고 깨달았지만, 정작 행동으로는 옳기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믿어도 말씀대로 변화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자이고 마귀에게 속은 것이다.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행동은 그들이 하는 말과 일치하지 아니하므로 그 행위는 본받지 말라하셨다. 그러나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친다면, 그 말씀은 지켜야 된다. 성도들도 교역자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 있을지라도 그 가르치는 성경 말씀은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그 교역자의 그릇된 행위는 본받지 말아야 한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즉,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신다. 복음은 또한 ‘자유하게 하는 법’으로,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의 자유뿐만 아니라, 율법 제도와 율법의 멍에와 속박과 위협으로부터의 자유를 준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라는 구절에서 ‘있는 자’라는 원어(파라메이나스)는 ‘그 안에 거하는 자’라는 뜻이므로, 복음 진리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고 실천하는 자 즉, 참 신앙에는 순종이 뛰 따른다는 것이다. 당연히 맣씀을 실천하는 자는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아 평안과 형통을 누릴 것이다. 신 28장에 말씀한 복은 믿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건강의 복, 자녀의 복, 재물의 복, 평안의 복, 존귀의 복, 승리의 복 등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三. 참된 경건 (26-27)

야고보는 경건과 행위의 관계를 강조하여 사람이 스스로 경건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혀를 통제하지 못해 불경건한 말이나 덕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그 사람의 경건은 헛된 것이라 하였다. 참으로 경건하고 믿음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의 말부터 조심하여 남을 배려하여 선한 말과 덕스러운 말과 진실한 말을 할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26절을 “누구든지 믿는다고 하면서도 함부로 말을 내뱉으면 자기를 속이는 것이며 그의 믿음도 가치가 없습니다.” 공동번역은 “누구든지 자기가 신앙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혀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셈이니 그의 신앙 생활은 결국 헛것이 됩니다”라고 하였다. 스스로 잘 믿고 신앙심이 있다고 자부하고, 또 자신의 외부적 행위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경건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도, 자기 혀를 다스리지 못하여 자기 잘하는 것은 말하고 남의 허물은 드러내어 비판하고 정죄한다면, 그 사람의 경건은 헛된 것이라는 것이다. 야고보는 참된 경건이 실제 어떤 행위로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말한다.

 

1)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

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것 즉, 말씀은 순종하는 삶이 바로 참된 경건이므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경건의 실천이된다. 진리를 먼저 깨달은 경건한 사람은, 고아와 과부와 같이 의지할데 없고 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 대해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 돌아보는 구제와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 참된 경건이다.

 

2)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 불경건하고 죄악되고 음란한 유행과 풍조를 배격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면, 그 사람의 경건과 믿음은 거짓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 풍속을 좇지 말 것으 명령하셨다. 전에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도 좇지 말고, 앞으로 거할 가나안 땅의 풍속도 좇지 말라 하였다.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고 올무와 덫이 되므로, 그것들을 떠나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만 따라가야 한다. 성도는 예수 믿기 전의 애굽의 풍속을 다시 따라가서는 안 되고, 또 새로운 세상 풍속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성도는 이방인이 섬기는 우상에게 미혹되지도 말고 이방인의 그릇된 풍속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고 그의 말씀만을 좇아가는 이것이 바로 참된 경건이다.

 

칼빈은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결합된 것을 말하는데, 이 사랑은 그의 은혜를 깨달아 앎으로써 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를 경외하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경건이라 하였다. 디엘 무디 목사는. "경건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나의 행동이다"하고 말했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사람이므로, 무엇보다 자신의 말을 조심하고 또 자기가 말한 것과 행동이 일치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외식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헛된 경건이 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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