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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히 11:13-40 

제목 : 믿음의 실상과 능력

 

一. 믿음의 실상 (13-31)

이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을 때까지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죽었다. 그들은 첫째,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믿는 신앙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흘려 구속해 주시고 영생을 주실 것을 믿고,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고 환영하였다. 그들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이미 오신 것처럼(이미 받은 것처럼) 환영하였다(요8:56).

 

둘째, 하늘에 있는 도성, 즉 천국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믿음을 가졌다. 그들은 이 세상을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임시로 외국에서 우거하는 자와 같이 본향인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는 임시로 머무르는 생활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항상 그 본향(천국)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며 그곳에 가서 살 준비를 하였다. 벧전 2:11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다. 나그네는 며칠 유하고 떠나가는 자요, 행인은 잠시 길을 지나가는 자이다. 외국인은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임시로 우거하는 자이다. 신앙의 선진들은 이와 같이 본향되는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행인과 외국인으로 살았다. 우리도 항상 이 신앙을 본받아서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그곳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겠다.

 

땅에 있는 본향은 잠시 살다가 이 세상 떠날 때 영원히 떠나게 되나 하늘에 있는 우리의 본향은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릴 곳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본향을 더 나은 본향이라고 했다. 신앙의 선진들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바라보고 사모하며 살았으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했다.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칭하였다는 의미이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고까지 칭함을 받았다(약2:23).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한 성”은 하늘나라를 가리킨다.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믿고 바라보며 사모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늘나라를 준비했다는 뜻이다.

 

1) 아브라함 (17-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한 것은 아브라함의 심중에 있는 신앙을 드러나게 하여 거기에 대해 복을 주려 하심이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데에는 독자에 대한 애착심보다 더큰 신앙상의 문제가 있었다. 그 신앙상의 문제란, 이삭은 약속을 받은 자이므로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약속을 받은 자’라는 것은, 21:12에 여호와께서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고 한 것이다. 즉 이삭의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삭을 결혼도 하기 전에 번제(죽여서 전체를 불로 태우는 제사)로 드린다고 하면 전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相反)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좋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서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으로 믿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게 되었다.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결박하여 칼로 이삭을 죽이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급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고 했다. 그때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매 한 수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삭을 대신하여 그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이삭을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때 아브라함이 마음으로는 이삭을 완전히 주께 바친 것이요, 하나님은 이삭을 완전히 제물로 받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삭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친 자요 비유컨대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자이다.

 

2) 이삭 (20)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대로(창26:3-4) 장차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후손 가운데서 날 것을 믿었다. 그리하여 그 아들들에게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축복해 주었다. 장차 오는 일은 장래 되어질 일을 말하는데 특별히 그의 후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리킨다. 이 일을 믿고 자기 아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축복을 해 주었다. 이삭이 믿음으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준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으로서 그 축복을 받은 야곱의 자손 중에서 그 축복한 대로 그리스도가 나시게 되었다.

 

3) 야곱 (21-22)

야곱이 임종시에, 요셉으로 하여금 그 두 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그때 요셉은 자기 맏아들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편에 서게 하고 작은아들 에브라임을 야곱의 왼편에 서게 하였으나 야곱은 손을 어긋맞겨 오른손을 차자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은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축복하여 차자인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다. 하나님이 그렇게 예정하시고 인도하시므로 야곱이 순종하여 손을 어긋맞겨 축복한 것이다. 이것이 곧 믿음으로 축복한 것이다. 본절에 야곱이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다는 것은, 장차 야곱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예언의 말씀을 믿고 그 예언의 말씀(지팡이)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의지하며 그 말씀에 의해서 경배하며 세상을 떠났다. 이것이 믿음이다. 우리 성도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4) 모세 (23-28)

모세가 출생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그 아이에게 있었으므로 아름답게 보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들을 낳으면 하수에 던져 죽이라고 바로 왕이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숨겨 기른 것이다. 어린 모세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을 모세의 부모가 믿음으로 알고,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 아니하고 석달 동안 숨겨서 길렀다. 그 부모가 목숨을 내어놓고 석달 동안 숨겨 키운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행한 것이다. 석달 후 더 이상 모세를 숨겨서 키울 수 없게 되자 갈 상자에 담아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었는데 마침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어 공주가 모세를 아들로 삼았고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의 유모가 되어 모세를 길렀다.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기르는 동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반드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후 공주에게 가서 애굽 궁중에서 사십여년 동안 애굽의 학술을 배우며 공주의 아들로 자라났으나, 애굽 생활에 동화되거나, 학술이나 향락에 도취되지 않고, 믿음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자랐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사모하였다.

 

24-25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가 장성하여 사십세 되던 때에 믿음으로 공주의 아들의 지위를 포기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하였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좋게 여기고 사모하여 공주의 아들의 지위와 애굽의 모든 것을 단마음으로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모든 고난을 같이 참으며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고 세상의 낙만 누리는 것은 큰 죄악이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함으로 신령하고 영원한 복을 받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그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모세가 애굽을 떠난 믿음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었다. 그리하여 모세가 애굽 왕 바로의 노(怒)를 무서워 아니하고 담대히 애굽에서 나왔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믿고, 의뢰하며, 모든 시험과 난관을 참고 견디며 나아간 것이다. 모세는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 등을 정했다. 이스라엘 백성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를 죽일 때에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

 

5) 홍해의 기사 (29)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믿음은,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능히 갈라서 건너게 하실 수 있는 능력과,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을 믿었다.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애굽 사람들은 홍해가 갈라진 것이 우연한 것으러 알고 자기들도 건너려다 빠져 죽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이 붙들어서 구원해 주시고 믿지 않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는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고, 내버려둠으로 멸망하고 만다.

 

6) 여리고 성 (30)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40년을 마치고 요단을 건너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정복하라고 하셨다. 여리고 성을 하루 한 바퀴씩 육일동안 돌고, 제 칠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명하셨다. 그때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다. 그때에 그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여리고 성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요 결과요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대로 역사하여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것이다. 이것이 산 믿음이다.

 

7) 라합 (31)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인 것을 믿었고(수2:9), 하나님은 천상천하 모든 것을 홀로 주관하시는 대주재이심을 믿었고(수2:11),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고 복 주실 것을 믿었다(수2:12-13). 그 믿음으로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군들을 잘 영접하여 보호해 주고 평안히 돌려보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바로 알고 거기에 믿음으로 참가해야 한다. 라합은 자기 본향이요, 본토인 여리고 성과 그의 육신의 동족과 친척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믿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백성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자들이 멸망할 때에 구원을 받았다.

 

二. 믿음의 능력 (32-40)

기드온은 삼백 명의 군대로 미디안의 대군을 격파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로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부름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순종하여 손으로 물을 떠서 핥아먹은 3백 명을 가지고 밤에 미디안 군대를 기습하여 승리하였다. 바락은 여선지 드보라와 함께 가나안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군대를 쳐서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삼손은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사용하여 블레셋 백성을 여러 번 쳐서 많이 죽였다. 사사 입다는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원수 암몬 자손들을 쳐서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으며(삿11:31-33). 다윗은 믿음으로 골리앗을 이기고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했다(삼상17:46-49), 사무엘은 기도로 블레셋 군대를 물리쳤다(삼상12:23). 선지자들은 모든 반대 세력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기 사명을 다한 것이다. 구약 시대의 사사들과 왕들과 선지자들은 애굽과 아비멜렉의 세력, 블레셋 나라의 세력, 미디안의 세력을 다 믿음으로 이겼다.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죽지 않고 나왔다(단3:19-30).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의 칼날을 믿음으로 피했고(삼상23:27),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엘리야는 연약하여 로뎀 나무 아래 쓰러졌으나 믿음으로 용기를 얻어 호렙산에 가서 여호와의 세미한 소리를 듣고 승리의 길을 걸었다(왕상19:12).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기드온이 믿음으로 미디안의 진을 파했고(삿7:22-23) 다윗이 믿음으로 블레셋 진을 파했다(삼상17:51). 사렙다 과부는 죽은 자기 아들을 엘리야가 기도해 줌으로 다시 살림을 받았고(왕상17:21-22) 수넴 여자도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사를 모셔다가 기도함으로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왕하4:34).

 

더 좋은 부활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죽은 성도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가리킨다. 믿음으로 많은 환난과 악형을 이긴 자들과 순교자들은 부활할 때에 영광과 존귀와 상급이 크고 더 좋은 면류관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선진들은 악형을 받을 때에 진리를 양보하거나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고 생명을 내놓고 싸워나갔다. 환난과 핍박 때에 진리를 지킨 자들은 채찍에 많이 맞기도 하고 희롱도 많이 당했다(마10:17).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 큰 핍박 때 결박당하여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기도하였으나, 그들은 믿음으로 다 이겼다.

 

스가랴 선지자와 나봇과 예레미야도 돌에 맞아 순교 당했다. 이사야 선지자가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여 순교했다는 전설이 있다. 큰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에게 원수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압박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여 그 신앙을 양보하도록 한다. 제사장 아히멜렉을 사울 왕이 칼로 죽였다(삼상22:11-19). 핍박 때에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다닌 성도들이 있었다.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큰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가산이나 직장을 빼앗겨 궁핍을 당하였으나 믿음으로 신앙의 정조를 끝까지 지켰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의 원어 ων ουκ ην αξιοξο κοσμοξ(혼 우크 엔 앜시오스 호 코스모스)는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면서 환난 가운데서 신앙의 정조를 지키며 믿음으로만 사는 성도에게는 이 세상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이러한 성도는 육으로 살지 않고 영으로 살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삼고 그 나라를 바라보고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구약 시대 성도들이 믿음으로 여러 가지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은 받지 못하였다. 약속이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말한다. 약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신 것(초림)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멀리 바라보며 믿고 즐거워하여 그 큰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 많은 증거를 얻었다. 신약 시대 성도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다는 뜻이다. 더 좋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하여 오셔서 모든 진리를 나타내 주시고, 십자가에서 구속해 주시고 부활 승천하신 것을 말한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진리를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계시하여 주셨으나, 신약 시대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셔서 하나님과 진리에 대하여 밝히 나타내 주시고,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속을 완성해 주시고, 부활로 생명을 주신 이것이 더 좋은 것이다.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니라 저희는 구약 시대 성도이다. 구약 시대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나간 것은 그리스도가 앞으로 오셔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할 것을 위해서 기초 공사한 것이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구원을 잘 이루어 나아가면 그 기초 위에다 집을 잘 짓는 것이 된다. 선진들도 천국에서 우리에게 영적 성전을 잘 지으라고 응원하고 있다(12:1). 그러므로 우리에게 더 좋은 진리의 재료도 주셨고 부활의 능력과 오순절 보혜사 성령의 능력도 주셨으니 영적 성전을 더욱 잘 지어 나아가야 하겠다. 또한 우리는 이 영적 구원 운동을 위해서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힘과 정력과 건강을 다 바쳐서 죽도록 충성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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