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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히 9:1-28 #273.257,283

제목 : 완전하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속죄

 

9장에서는 구약의 제사는 완전하지 못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룰 수 없어 반복적인 회개가 필요하며, 영원한 속죄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一. 구약 성소와 제사장 (1-10)

‘첫 언약’은 구약, ‘섬기는 예법’은 구약에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 가지 예법을 말하며, 제사법도 그 중 하나이다. ‘첫 언약’, 곧 구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그것을 위한 성막을 주셨다. ‘세상에 속한 성소’는 모세가 지은 성막의 성소를 가리키며, 모세가 만든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휘장으로 그 경계를 만들었다. 그 첫 장막인 ‘성소’는 세상 교회를 상징하기에 세상에 속한 성소라 하였으며, ‘지성소’는 하늘에 속한 성소, 즉 신령한 성소를 상징하기에 하늘의 성소라 하였다(9:23-24).

 

1) 성소 (2)

성막 입구의 휘장(첫째 휘장)으로 들어가는 첫째 부분은 성소(聖所, 하기온)라 불리고, 그 안에는 등대가 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심을 나타내는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사역을 힘입어야 함을 암시한다. 또 성소 안에는 떡상이 있고 그 위에 여섯 개씩 두 줄로 쌓아놓은 떡(진설병 陳設餠)들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세상을 위한 생명의 떡이 되심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야 할 것을 암시한다.

 

2) 지성소 (3-5)

성막 중간에 휘장을 치고, 그 휘장 앞에 있는 성소와 휘장 뒤에 있는 지성소(至聖所, 하기아 하기온)를 구분했다. 지성소 안에는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었으며, 그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이 있었다. 또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었고,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었다. 금향로는 예수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도들의 기도와 그리스도의 향기가 성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언약궤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다. 왕상 8:9에는 언약궤 안에는 두 돌비석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열왕기 시대는 출애굽 후 약 오백여년이 지난 때이므로, 아마도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는 분실하여 없어지고 두 돌비석만 남은 것같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인데,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이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믿는 성도에게 생명의 떡이 되실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만나를 금항아리에 담아 두게 하신 것이다. 돌비석 두 개에 기록된 십계명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속죄소는 언약궤 위에 금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속죄소 위에 희생의 피를 뿌려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 속죄소는 성막제도에서 가장 중심적 요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통해 이루실 속죄사역을 상징한다. 우리는 율법으로는 죄인으로 정죄될 수밖에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혜를 받는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이다.

 

3) 제사장 (6-10)

(6-7) 제사장들은 보통 성소에 들어가 제물의 피를 뿌렸으며, 대제사장은 유대의 달력으로 7월 10일 속죄일에 1년 1차씩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날 대제사장은 아마 3번 지성소에 들어갔던 것 같다(레 16:12-15). 그는 향로를 가지고 들어가 지성소에 연기가 가득하게 했고, 또 자신을 위한 속죄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뿌렸고, 또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뿌렸다.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사역을 상징하였다.

 

(8-10) 본문은 구약제도와 제사 의식의 부족함을 세 가지 면에서 증거한다.

첫째로, 구약 제도 아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 즉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는 길이 열렸다. 27:50-51,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10:19-20,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둘째로, 구약의 성전예배의식은 비유적, 예표적이었다. ‘현재까지의’라는 원어(에이스 톤 카이론 톤 에네스테코타)는 ‘현재의 때를 위한’(KJV, NASB, NIV)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가리킨다. 또 구약제도와 제사 의식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더불어 육체의 예법만 되었고 개혁할 때까지 주신 것이었다. 그 개혁의 때가 신약시대이다. 예언된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구약의 예언과 예표는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제도와 의식은 폐지되었다.

 

셋째로, 구약제도와 제사 의식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 온전케 할 수 없었다(7:11, 19).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은, 심령이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짐승의 피는 사람의 죄를 깨끗케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며 예표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실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가 그 일을 이루셨다.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대속사역으로 사함을 얻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히 7:27).

 

구약의 성막 예배, 성전 예배는 속죄를 이루기에 부족했다. 구약의 성막을 통한 제사 제도는 단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모형적으로, 예표적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택한 백성의 죄를 단번에 속량하심으로써 구약의 의식들은 다 성취되었다. 따라서 이제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폐지되고 신약의 규례로 대치되는 것이다.

 

 

二.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 (11-22)

(11) 장래 좋은 일은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로 인해 베풀어 주실 모든 은혜 즉, ①성도를 죄에서 구원해 내는 일, ②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임하게 하는 일(구원 운동), ③성도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일, ④천년 왕국을 건설하는 일, ⑤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주는 일 등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시대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과 달리 신약시대에 이루실 속죄 사역을 위해 세상에 대제사장으로 오셔서그 일을 성취하시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가 이루신 속죄 사역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서 이루어졌다. 그 장막은 하늘 장막과 하늘 성소 곧 천국을 가리킨다.

 

(12)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제물로 드렸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렸다. 그 공로가 만세 만대의 모든 택한 백성에게 유효하게 되었으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즉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함받는다. 그리스도께서 제물을 삼으신 자기 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였다(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짐승을 잡아 드리는 구약의 제사로는 사람의 죄를 사해 주지 못하며, 또 죄책을 제거하지 못하고,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시키지도 못하며, 영생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구약 제사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제사는 육체를 정결케 하며 거룩케 하는 일을 하였다. “육체를 정결케 하고 거룩케 했다"는 것은 육체에 속한 마음을 정결케 하고 거룩케 했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속죄’라는 원어(뤼트로시스)는 ‘구속’(救贖)이라는 말로서 값 주고 사심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의 값 즉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의 값을 지불하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피흘리신 값은 너무 크기 때문에 ‘영원한 속죄’라고 불린다. 그 속죄는 영원하기 때문에 매년 반복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가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표현되었다. 그의 죽으심은 한번으로 충족하였고, 더 이상 반복될 필요가 없다.

 

(13-14)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은 구약 제도와 비교할 때 더 많은 효력이 있다. 구약의 제사 제도도 효력이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뿌려 사람의 육체의 부정을 깨끗케 하고 거룩케 하셨다. 그렇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흠 없는 자신을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 효력이 있겠는가? 여기에 ‘영원하신 성령’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피는 효력이 있다. 첫째 효력은 사죄(赦罪)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은 행실들로부터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한다. 둘째 효력은 새 생활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담대히 섬기게 만든다.

 

(15) ‘중보’(仲保)는 양쪽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정하여 연결시키는 역할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시켜 주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중보 역할이다.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는, 구약시대 율법 아래서 살며 율법을 범한 죄를 가리킨다. 그들의 죄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다 사함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드린 속죄 제사가 신․구약 시대의 모든 성도의 죄를 사해 주셨다. 구약시대의 성도는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고 믿어 구원받았고(죄 사함 받았고),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는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받았다. 율법을 범한 모든 죄는 율법의 의식과 제도에 속한 제사로는 사함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에 의해서만 사함받을 수 있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믿는 자, 즉 택한 자를 가리킨다. ‘영원한 기업의 약속’은, 신령한 기업에 대한 약속이다. 성도의 기업은 하늘에 있다. 벧전 1: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라고 했다.

 

(16-17)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심으로 속죄사역을 이루셨는지를 말씀한다. ‘유언’이라는 원어(디아데케)는 앞절의 ‘언약’이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유언적 성격이 있었다. 아버지가 유언으로 자기 기업을 아들에게 상속했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의 유언이 효력이 있어서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받게 된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을 발휘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효력을 가지게 된다.

 

(18-21) 첫 언약 곧 구약도 피 없이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출 24장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고 피를 취하여 그 책에 뿌리고 또 모든 백성에게 뿌렸다. 그 책은 ‘언약서’라고 불리었고 그 피는 ‘언약의 피’라고 불리었다(7, 8절).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셔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주 예수께서 친히 증거하신 바와 같이, 그 피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 바 . . . [] 언약의 피”이었다(마 26:28). 이제 언약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으로 그 언약은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은, 대속의 원리를 말한다. 죄로 더렵혀진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깨끗케 할 수 없다. 인간의 영혼은 허물과 죄로 죽었으므로 죄에서 벗어져 나올 수도 없고, 하나님께 대한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전적 부패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죄인이 어떤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공을 세워 그 죄를 사유함 받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음으로만 죄 사유함을 받을 수가 있다. 구약시대에 양이나 소를 잡아 그 피를 뿌려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오셔서 피 흘려 속죄해 주실 것을 상징하였다. 구약시대 성도들도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단번에 하늘 성소에 들어가셔서 구약의 예표를 성취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이시다. 그는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에게 확실한 죄사함과 하나님을 섬기는 새 생활과 영원한 천국 기업의 상속을 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받은 죄사함과 영원한 새 생명과 천국 기업의 상속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순종과 충성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三.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제사장 사역 (23-28)

(23)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인 성막 기구들은 짐승의 피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지만, 하늘에 있는 성막의 원형은 더 좋은 제물인 그리스도 자신의 피로 드려져야 했다. 성막제도는 하늘의 원형에 대한 모형에 불과했고 짐승의 피뿌림도 장차 이루어질 완전한 제사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실제로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

 

(24) 본문은 하늘 성소가 더 좋은 제물로 드려져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는 구약시대의 성막과 성전을 가리킨다. ‘참 하늘’은 ‘하늘 자체’라는 뜻으로 천국을 가리킨다. 천국에는 성전이 없다(계 21:22).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완전한 속죄사역을 이루시고 그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신 곳은 하늘 자체 곧 천국, 즉 하나님의 보좌 앞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에, 즉 하나님 앞에 들어가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사역의 효력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사역을 의미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부족과 실수와 흠과 결함에 대하여 천국에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흘리신 속죄의 피 공로를 끊임없이 적용하시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롬 8:34).

 

(25-26) 본문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약 제사장들처럼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고, 하늘 자체 곧 천국에 들어가셨고 지금도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며, 구약 제사장들처럼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가 아니고 자신의 피를 가지고 단번에 천국에 들어가셨다고 말한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해마다 생축의 피로써 제사드렸으나, 그리스도는 자기 몸으로 제사드렸기 때문에 자주 드릴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소나 양 같은 짐승의 제물과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린 제물은 너무 차이가 심하여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몸은 죄가 없고 완전하여 무흠하시며 삼위일체 성자의 몸이시므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의 가치가 있다.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만세 만대의 모든 택한 백성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단번에 완전히 사하여 주셨다. 그의 피는 우리의 죄를 없이하는 참되고 완전한 속죄의 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은 완전하였다.

 

(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며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진리인 동시에 심각한 진리이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이며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인간에게 기본적 진리인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발자취에 비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인간으로 오셔서 사람처럼 한번 죽음을 경험하셨으나, 그의 죽음은 일반 사람의 죽음과 의미가 달랐다.

 

일반 사람은 근원적으로 다 죄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죽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자로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죽으셨다. 또 일반 사람은 죽음 후에 심판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하나님의 정하신 심판자로서(요 5:22)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딤후 4:1), 또 자신이 피흘려 속죄하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본문은 그때 구원받을 자들을 ‘두 번째 나타나실 자 곧 재림의 주를 바라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죄와 상관없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연결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드려 단번에 속죄를 이루시고 천국에 들어가셨고 지금도 하나님 앞에 나타나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 사역을 하신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사역과 현재적 중보사역을 든든히 의지하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항상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또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대망하자. 그가 오심으로 우리의 구원은 완전케 되고 우리는 죄성이 없는 몸으로 부활하거나 변화되고 영광스런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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