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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삼하 6:1-23

제목 :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에 모심

 

一. 베레스웃사 (1-11)

엘리제사장 때인 주전 1075년경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궤는 블레셋과의 아벡(Aphek) 전투에서 파히여 빼앗겼다가, 7개월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벧세메스를 거쳐 기랏여아림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것을 통해, ➊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 없는 법궤는 아무 쓸모없는 단순한 궤짝에 불과하며, ➋자기 유익을 위하여 법궤를 이용하면 하나님께서 방패와 도움이 되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교훈한 것이다.

 

하나님의 궤는 다윗이 모셔오려고 한 때까지 약 70여 년 동안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다. 바알레유다는 기럇여아림의 옛 명칭이다. 다윗은 통일왕국의 왕위에 오른 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하여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궤를 모셔야하겠다 생각하였다. 사람은 보통 성공하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는이다. 그러나 다윗은 성공한 다음에 더욱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곁에 모시고자 하였다. 시 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였다. 다윗은 오늘날까지 자신을 지 지켜주시고 왕위에 오르게 하신 것이 모두 하나님의 도움임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로 작정하고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기로 작정하였다.

 

하나님의 궤는 자체가 어떤 가치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에 귀중한 것이다. 이 궤 안에는 십계명의 돌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들어있었다.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생각케 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확인시켜 주는 지극히 거룩한 상징물이었다. 2절에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 하나님이 임재 하신다는 뜻이며, 하나님은 하늘나라에서 그룹들 사이에 계신다.

 

3절 이하에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운반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민수기 4:15에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라고 하였다. 즉,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를 제사장들이 덮은 후에 고핫 자손이 메고 행진해야 한다. 성막이나 그 안에 있는 성물들을 고핫 자손이 메고 갈 수는 있으나, 법궤는 만지지 말라고 하셨다. 민 4:20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인 하나님의 궤는 거룩한 것이니 아무도 들여다보지 말라고 하셨고, 또 궤를 운반할 때에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간 막는 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어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라 하였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그동안 사용하던 헌 수레가 아니고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아효와 웃사가 수레를 몰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주익을 연주하면서 지극 정성을 드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려 한 것은 좋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는 못했다. 선지자 사무엘이 죽은 이래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여 영적 혼란기에 있어 다윗도 율법에 정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다윗이 과거에 삼상 6:7-12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소 수레에 법궤를 실어 돌려보냈던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본받아 하나님의 궤를 새수레에 실어 옮기려 하였다.

 

고전 14:33에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높이고자 하는 뜨거운 열심은 분명히 있었으나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법대로 하여야 한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 삼상 6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낼 때에, 그들이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소에 메우고 운반하여도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이며, 이미 궤를 돌려보내기 전 일곱 달 동안에 아스돗, 가드, 에그론에서 재앙을 당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이방 사람들의 방법을 본받아 궤를 옮기려 한 것은 바로 되지 못했다. 아마도 다윗은 궤를 수레에 싣고 가는 것이 메는 것보다 쉽고 보다 발전된 방법으로 알고 그렇게 한 것 같다. 믿는 사람 중에도 성경대로 믿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쉽게 믿으려고 인본주의를 쓰는 자가 많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을 써야 하고 새로운 제도를 가지고 편하게 믿으려 한다. 그러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은 결과가 아무리 좋고 지극 정성을 들였다 하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신다.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도 고핫 자손이 궤를 어깨에 메어 옮긴 것처럼 힘써 자신이 메고 나아가야 한다.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궤를 실은 소 수레를 몰고, 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궤 전면에서 여러 가지 악기를 주악하면서 기쁨으로 진행하는데, 법궤를 실은 수레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소가 뛰므로 법궤가 흔들렸다. 하나님의 궤가 수레에서 떨어질 것을 염려한 웃사가 흔들리는 궤를 붙들었는데, 그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웃사가 수레 곁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소가 뛴 것은 우연히 일어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지 아니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선한 일을 하는데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은,

 

1) 법궤를 고핫 자손이 메지 않고 수레에 실었기 때문이다.

수레에 하나님의 궤를 실었는지, 돌을 실었는지, 나무를 실었는지 소는 알지 못하므로 이성 없는 소가 뛰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교회도 소처럼 믿음 없이 혈육으로 육신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이처럼 혼란과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또 하나님의 교회를 사람의 힘과 방법으로 하려고 하면 웃사와 같이 하나님의 진노와 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일군을 세울 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리를 바로 깨닫아 진리에 굳게 선 사람을 세워야 한다. 딤전 3:6-7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새로 입교한 자는 신앙의 뿌리가 얕고 연단 받은 것이 없으므로 시험이 오면 넘어지기 쉽고, 또 교만하여 시험에 빠지면 하나님의 교회에 큰 해독을 준다.

 

2) 사람의 힘으로 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께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실 것인데, 이것을 믿지 않고 웃사가 궤를 붙든 것은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힘으로 하려고 하는 인본주의의 행동이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다. 오늘날도 교회가 어지러울 때도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기도하며 각자가 자기 일에 충성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저 순종하여 심부름만 잘하면 된다.

 

이에 다윗이 6절에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불렀다. 다윗이 분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이 웃사를 치신 것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못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지 못한 것을 원통히 여긴 것이다. 역대상 15:13에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라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였다. 다윗이 웃사가 죽는 것을 보고 자기 잘못을 즉시 깨닫고 원통히 생각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 다윗은 이번에 하나님의 궤를 모실 수 없을 것으로 알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져갔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는 동안 그와 그 집이 복을 받았다. 법궤를 모신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모신 것이므로,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살았으므로 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여야 한다.

 

 

三. 하나님의 일을 멸시하면 재앙을 당한다. (12-23)

하나님께서 법궤를 모신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많이 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다시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오시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법궤를 율법대로 고핫 자손들이 어깨로 메어오게 했다(대상 15:12-15). 석달 동안 회개의 기간을 가졌던 다윗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메어 왔다.

 

법궤를 운반하기 전에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과거의 잘못에 대한 속죄의 뜻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바라보며 제사를 드렸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자기의 성으로 모셔오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감사해서 여호와의 궤 앞에서 춤을 추었다. 그때에 베 에봇 안에 입었던 속옷까지 드러나 보였다.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20절에"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이라고 몸을 드러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 때 다윗 자신은 왕으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생각하지 않고 진정으로 기뻐하였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자기 성에 옮길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기뻐하며 뛰놀은 것이다.

 

다윗의 아내 미갈은 창문으로 이런 다윗을 내다보다가 심중에 그를 업신여겼다. 다윗이 왕으로서 체통과 위신도 생각지 않고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서 염치없이 뛰노는 것으로 멸시하고 업신여겼다. 미갈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다윗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업신여기게 된 까닭은, 아마도 여호와의 궤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그 아버지 사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윗이 자기 가족에게 축복하려고 돌아오니 아내 미같이 다윗의 면전에서 다윗을 멸시했다. 그러나 다윗이 기뻐 뛰며 춤춘 것은 ①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모실 수 있는 것을 기뻐하였고, ②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주신 일을 감사하며, ③과거에 모든 환난 중에서 자기를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④금번에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 성에 올려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하였다.

 

여호와의 은혜에 감격해서 믿음으로 한 일을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일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늘 감사했고 감격에 넘치는 믿음을 가졌다. 다윗이 미갈에게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하고 책망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하는 일이 사람 보기에 아무리 천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높여 주실 것이요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징벌할 것이다. 민 12:1-2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로 그들이 모세가 구스 여자와 결혼한 문제에 대하여 모세를 비방하였했다. 구스 여자를 취한 사실은 비방 받을 만한 구실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책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권위를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는데 협력자로 세운 형과 누이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도 말씀하신다고 하며 모세와 동등 됨을 주장하며 모세를 비방하였다. 여호와 앞에서 믿음으로 한 일을 멸시한 미갈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다. 믿음으로 하는 일을 멸시하는 자는 창성하지 못하고 점점 쇠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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