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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후 8:1-24 #49, 327

제목 : 연보

 

본장에는 예루살렘 성도 구제를 위한 헌금에 대한 바울의 권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9장에 걸쳐서 계속된다. 이 연보의 배경은 행 11:27-30에 언급된 것처럼,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 곤궁함을 당했을떄, 마게도냐 교회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풍성한 헌금을 하여 도왔던 사실을 고린도 교회에 알려 그들도 이같은 헌금에 동참하도록 권고하였다.

 

一. 연보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증거 (1-9)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연보할 수 있다. 은혜를 깨달으면 먼저 내부적으로 자신을 주께 드릴 마음과 주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다음에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물질을 바치는 외부적 행위가 수반된다. 그러므로, 연보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을 외부적 행위로 나타내는 믿음의 열매이다. 성도가 성령의 감동을 소멸치 않고 연보하면, 영혼과 믿음이 자라나 영적 열매를 맺게 된다.

 

성도가 연보를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은, 물질을 하나님보다 귀히 여기고 사랑하며 지배를 받아 즉, 우상이 되어 마음 문을 닫아 놓았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여러 가지로 신령한 은혜가 풍성하였으나, 특별히 연보의 은혜도 풍성하게 하라고 바울이 권면하였다(7절). 성도에게 믿음, 하나님의 말씀, 지식, 간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많을지라도, 물질이 우상이 되면 신앙의 역사하는 면을 막아 신앙 인격이 자라나지 못하고 믿음이 진보하지 못한다.

 

(1-2) 마게도냐 교회가 열심으로 연보하여 고린도 교회를 도와주었음으로, 이 은혜를 알기 원한다고 바울이 말했다. 마게도냐 교회가 많은 환난과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믿는 일을 잘하였던 증거는, 그들이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신앙 인격을 잘 만들어 영적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였고. 극한 가난 속에서도 힘에 지나도록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한 것이다. 당시 마게도냐 교인들은 정복자들인 로마 사람들에게 천연자원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착취로 인해 고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연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하는 것이다.

 

마게도냐 교회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하였다고 하였다(3절). “힘대로 한다는 것은”, 신자가 마땅히 자기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분량대로 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연보할 때에 언제나 자기 힘대로 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 된다. 마땅히 바쳐야 할 분량을 바치지 않고 조금 바치거나,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함에도 흠있는 것을 드리는 것은 은혜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것이며, 무성의한 것이며, 불충성한 것이며, 말라기 선지자는 그것을 사기하는 것이라 하였고, 악한 것이라 하였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 하였다. ‘고후 8장과 9장에서 언급한 연보’의 헬라어 「하프로테토스」는 ‘단순또는 복잡하지 않은’ 이라는 뜻이다. 즉, 연보는 「단순」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바울은 본문 5절에서 연보를 통해 성도 섬기는 일에 참예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연보의 본질적 원리이다. 연보는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후, 자기 소유를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자기 희생이다. 이것이 곧 ‘단순’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가난하게 된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주인이 아닌 종인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를 섬겨 ‘단순’하게 되는 것이 연보의 본질적인 원리이다. 즉, 연보한다는 것은, 주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종으로서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는 자로서 하나님이 피로 값주고 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베푸는 삶을 살아 가난하게 되는 「복잡하지 않은」(하프로테토스=연보) 삶을 뜻한다.

 

A. 연보를 드리는 자세

1) 마음에 확정

고후 9:7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연보 행위가 물질을 통해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물질을 연보할 것인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명시해 주고 있다. 연보할 때에 고정적인 한계를 정하지 말고, 마음에 정한대로 즉, 마음에 감동받은대로 하라는 것이다. 고후 8:11-12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있는 대로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 했다. 즉 마음에 확정해서 연보 하는데 강요받지 않고 자원해서 있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분량보다 우리의 마음을 보실 뿐만 아니라, 물질에 담겨진 마음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과부의 동전 두 렙돈을 크게 보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며, 초대 교회 당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저주받아 죽은 것도 물질을 많이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을 속인 것 때문이었다.

 

2) 사전에 준비

바울은 고후 9:5에서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 했다. 연보의 방법에 있어서 연보를 사전에 준비한다는 것은 연보가 참 연보답고 억지로 행하는 연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갑작스럽게 기분에 따른다든가 어떠한 강요에 의한 억지 연보는 참 연보가 되지못한다.(건축,선교). 바울은 미리 준비한 연보가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라고 하였다. 준비하지 않은 연보는 참 연보가 될 수 없는 것은 준비하지 않는 구제는 동정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는 것을 아무렇게나 드리는 것은 참 연보의 자세가 아니다.

 

3) 즐거운 실행

일반적으로 자기 희생은 괴로운 것으로 알고 있으나, 바울은 자기를 희생하는 연보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고후 9:7 하반절에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다. “즐겨 낸다”는 것은,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는 것의 반대이다. 참 연보 행위는 즐거움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연보는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사랑의 희생이기 때문이다(대상 29: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B. 연보의 목적

1) 선한 일을 위해

고후 9:8에서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연보할 수 있는 은혜를 비롯한 모든 은혜를 넘치게 주신 이유는,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뜻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한 자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한 자가 되도록 명하라고 분부한 일이 있다(딤전 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따라서 연보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들이 연보를 통해 영육간에 가난한 지체를 풍요롭게 하고, 복음을 전하고 구제하는 선한 일이 넘치도록 하신다.

 

2)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바울은 연보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케 하려 한다 하였다(고후 9:11). 성도의 연보를 통해 풍요롭게 된 자가 풍요로움에 대한 은혜의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게 하려고 연보를 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많은 연보를 한 자에게 그 공로를 돌리고, 뿐만 아니라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공로패를 수여하고 공로비까지 세워서 연보에 대한 감사를 인간에게 돌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연보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참 연보답지 못한 연보는, 감사가 인간에게 돌려지는 경우이다. 하나님의 것으로 연보하고 감사를 자기가 받는 어리석은 것이다. 성도는 자기 것으로 연보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것으로 연보한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알고 마땅히 감사가 하나님께 돌려지도록 해야 한다(대상 29: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성도가 연보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바울은 고후 9:13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라고 했다. 성도 섬기는 직무와 연보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다. 성도의 모든 행위와 만물의 존재 목적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연보 자체가 인간의 소유에 의한 인간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에 의한 하나님의 하게 하심의 행위 인고로 연보를 통한 모든 영광이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연보의 목적은, 착한 일이 넉넉히 성사되게 하기 위함이며, 부요케 된 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기 위함이며, 이로 인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는데 있다.

 

(8)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연보에 대해 말한 것은, 마게도냐 교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연보한 예를 들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있는 사랑과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었다. 성도에게 진실함과 참된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께 연보하지 않을 수 없고, 구제에 인색할 수 없다. 선한 일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해서 해야 심령에 유익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인색한 마음으로 부득이 한 것이나, 억지로 마지못해 한 것은 심령의 유익이 없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고린도 교회가 마게도냐 교회보다 먼저 연보를 시작했고 그것을 원하기도 했으므로, 고린도 교회가 나중에 시작한 마게도냐 교회보다 더 잘하라는 뜻이다.

 

고후 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부요하신 분이셨으나,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낮고 천한 곳에 오셔서 가난하게 되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성도는, 올바른 연보의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 낮아져 희생하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보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된 사랑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희생과 수고가 뒤 따라야만 한다.

 

(10-12) 전부터 시작하고 원하던 연보와 자선사업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실행하여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고 바울이 권면했다. 있는 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다음에 돈을 벌어서 하겠다든가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 자기에게 있는 대로 힘을 다해서 해야 한다. 성도가 물질을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성도들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믿음을 써서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여 하나님의 할 일을 해 나가신다. 그러므로 현재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바치지 않고 다음에 돈을 벌어서 많이 바치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예수님이 빈들에서 이적으로 5천명을 먹이실 때에 너희에게 있는 “그것, 즉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셨다. 있는 “그것”을 가져왔을 때, 예수님이 능력으로 5천명을 먹이고도 부스러기를 열두 광주리나 거두었다. 자기에게 있는 대로 힘써 바치면 이렇게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역사하여 풍성하게 하신다. 구제나 연보할 마음이 있으면 있는 것 중에서 힘써 하면 된다. 없는 것까지 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을 힘써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일도 잘되어 간다. 과부의 두 렙돈을 예수님은 칭찬하셨다.

 

(13-15)고린도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돕기 위해 연보하는 것은 평균케 하려는 것이라 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연보한 것으로 예루살렘 교인들을 돕고, 후에 고린도 교인들이 어려울 때 예루살렘 교인들이 도와준다면 서로 평균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유무상통과 같다(행 2:44).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사랑으로 서로 도와 나가는 일은 성도 간에 마땅히 할 일이다. 고후 8:15에서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출 16:18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온 백성에게 골고루 먹여 주셨던 일을 들어 연보의 구약적 원리를 밝혀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가난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의 만나를 내려 먹이심으로, 많이 거둔 자도, 적게 거둔 자도 모두 다 남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부요하게 하신 역사가 곧 구약에 나타난 연보의 원리인 것이다.

 

이 세상 물질은 적게 수입되는 사람도 하루 밥 세끼 먹고 수입이 많은 사람도 하루 밥 세끼 먹고산다. 집이 천간이 된다고 해도 밤에 잠잘 때에는 여덟 자만 필요하고 문전옥답이 수만 평이 된다고 해도 하루 밥 세끼 밖에 못 먹는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먹고 살면서 믿는 일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고 하나님께 합당하게 드려서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연보를 많이 했다고 해도 자기의 물질이 모자라지 않고, 적게 드렸다고 해서 넉넉하여 잘 사는 것이 아니다. 많이 바친 사람이나 적게 바친 사람이나 하나님께서 다 살도록 해 주신다.

 

 

三. 연보 조심 (16-22)

바울이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낼 때에 두 사람을 함께 보냈는데 (22-23절), 본 절에는 그 중 한 사람만 소개되었다. 디도와 함께 보낸 사람은 복음을 믿고, 전하고, 복음을 발전시켜 복음의 일로써 칭찬 듣는 자였다. 바울이 많은 연보를 맡았으므로 그것을 인해서 훼방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하여 많은 사람 앞에 인정받을 만한 사람을 택하여 디도와 함께 보냈다.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하는 말이로다. 하나님께 연보하는 것은 종자 심는 것과 같아서 적게 심은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사람은 많이 거둔다. 자기 힘을 다 기울여서 많이 한 사람은 하나님께 신령한 것을 많이 받는다. 성도가 연보하는 것은 신령한 것을 심는 것이므로, 힘써 연보하는 자는 신령한 것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거두게 된다.

 

나는 남들에게 돈을 나누어지기 시작한 뒤로 오히려 재산이 점점 불어나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다.” 록펠러는 십일조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드린 십일조가 하나님의 밭에 뿌려져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 씨앗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단순하게 번 돈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자신이 번 돈을 계산하고,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고,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기쁨으로 십일조를 드렸다. 그러면 하늘의 밭에서 그 씨앗이 움트고 자라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넘칠 만큼의 열매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록펠러는 이것을 하나님이 복리로 불려주신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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