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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14:1-25 (5) #266,422

제목 : 모든 것을 적당하게 질서대로 하라

 

고린도 교회 내에 성행하던 방언은 통역의 은사가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것이었으며, 지나치게 방언에 몰두하다가 성령의 다른 은사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발생하여 교회의 질서까지 위태롭게 되었다. 바울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 할지라도 덕을 세우지 못하면 교회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모른 일에 적당함과 질서를 좇아 행할 것을 명하고 있다.

 

一. 예언과 방언

1. 예언

성경은 앞으로 될 일 다시 말해서 죄사함 구원 영생 부활 재림 새하늘과 새땅등 예언을 기록 한 것이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믿는 것 자체가 예언의 은사를 받은 것이고, 성경적인 예언을 한다는 증거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계 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였는데, 여기 말한 예언은 성경 말씀을 가리킨다. 성경 말씀 가운데 장차 되어 질 것은 다 예언이다.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는 말씀도 예언이인 것은 성도가 장차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다 예언의 말씀이다.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것은 자기가 걸어갈 말씀을 찾아서 걸어가라는 뜻이고, 모든 사람이 행하여야 될 말씀을 찾아서 증거 하라는 뜻이다. 예언의 말씀인 성경을 바로 이해하여 가르치며 현재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을 가리킨다성령으로 말씀을 새롭게 깨달아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고쳐야 할 것을 고치고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될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예언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방언만을 중요하게 여겨 바울이 그 잘못된 것을 바로 세우려고 본장을 쓴 것이다. .

 

2. 방언

방언의 헬라 원어 γλωσσα (글로싸)는 "혀, 말, 언어"라는 뜻이다. 오순절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사도들은 갈릴리 출신으로 다른 나라 말을 배우지 않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메데와 메소보다미아와 애굽과, 구레네와, 로마말로 전도할 수 있게 하셨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와 사도시대에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특별게시의 전달과 확증을 위한 것이었다. 특별히 방언을 주신 목적은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이전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었다. 즉, 복음의 급속한 전파를 위한 성령의 역사였다.

 

성령을 받을 때 방언을 말한 경우는 사도행전에 세 번 있었다. 행 2:4(오순절 성령강림), 10:44-46(베드로와 고넬료)), 19:6(바울이 에베소에서))이다. 사도행전 전반에 걸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지만, 그들 모두가 방언을 말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성경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성령을 받았지만(롬 8:9). 모두 방언을 말한다고 하지 않는다(고전 12:29-31). 방언은 특별한 때에 특별한 목적을 지녔던 초자연적인 은사였다. 방언은 성령을 받은 유일한 증거가 아니었으며, 지금까지도 결코 그렇게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

신학적인 면에서 미국 칼빈주의 신학자 안토니 후크마는 성령세례의 첫 증거가 방언이라는 것은, 성서적 근거가 없으며, 그 대부분을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유도된 인간의 반응’리하 하였다. 따라서 방언에 제한된 가치만을 부여했다. 달라스신학교 교수 라이트너는 <복음주의신학 개론>에서 예언, 병 고침, 능력행사, 영 분별, 방언, 방언통역, 사도, 선지자 등은 과거에 일시적으로 시행되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시행되지 않는 은사로 취급했다. 그런 초자연적 은사들은 완전히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계시가 성경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치 않게되었다.

 

방언의 세 가지 종류.

① 다른 나라 말.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들이 배우지 않은 이방 나라 말로 전도하였다(행 2:4).

 

②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말을 하지만 무슨 말인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고 하나님과만 통하는 방언이다.

 

③ 새 방언(막 16:17). 천국의 신령한 진리를 새롭게 깨달은 말씀(성경 말씀을 새로 깨달은 것)은 그 내용이 새로운 것이므로 새 방언, 새로운 말이다.

 

방언의 출처.

①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방언. 자기 스스로 방언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면 방언을 할 수 있다. 또 배우고 연습하여 방언을 하는 자도 있다.

 

②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방언. 이러한 방언은 흔하지 않다.

 

③ 마귀로부터 오는 방언. 마귀가 사람을 미혹시키기 위하여 방언을 하게 만든다. 본절에 말하는 방언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3. 예언과 방언의 유익.

예언 (1,3,4)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여 준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유익을 준다는 말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신자들의 믿음에 유익을 준다는 뜻이다. 권면 신자를 권하여 바로 세우고 믿음을 굳건히 하며, 안위 환난과 핍박당하는 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평안과 소망을 주며 위로 받게 한다.

방언 (2.4)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므로 자기에게는 어느 정도 유익이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나 교회에는 유익이 없다. 12:30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고 하였고, 12:11에는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고 하였으며, 12:28에는 “그 다음은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한 것을 보아 모든 성도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하기를 바울이 원치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본 절의 방언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는 뜻이 아니고 새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새 방언, 즉 성경 말씀을 성령으로 새로 깨달아 말하는 것은 성도 누구나 다 말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4. 방언의 가치.

①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

이사야서를 율법이라고 한 것은 구약 성서가 율법이라 불리우기도 했기 때문이다(요 10:34 ; 롬 3:19-21).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으나 그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방언이 다른 앗수르 사람을 불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여 깨닫게 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나라 말로 말할 때에 믿고 순종하였다면 앗수르 나라 사람들을 불러 올 필요가 없었으나, 그들이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방언이 다른 앗수르 사람들을 불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여 하나님께 순종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주는 표적이다.

 

②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을 세우지 않으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다.

통역을 세우지 않은 방언은 뜻을 분별할 수 없고, 알아들을 수 없고, 성도들에게 유익이 없다. 악기를 연주할 때 악기가 제각기 독특한 소리와 음을 내기 때문에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통역을 세운 방언은 알아들을 수 있음으로 유익하다. 그러나 통역이 없는 방언은 마치 전쟁터에서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전쟁을 준비할 수 없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하면 성도가 마귀와 더불어 싸울 준비를 할 수가 없게 되므로 유익이 없다.

 

헬라어 주기도문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

끄레도 인 데움 파트렘 옴니포텐템, 끄레오아토렘 첼리 엣 떼레.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엣 인 예숨 크리스툼, 필리움 에이우스 우니쿰,

 

②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지 않는 방언은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며 야만이 된다. (9-11). 세상의 많은 종류의 소리는 각각 자기 고유의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어, 그 방언을 말하는 자나 듣는 자가 서로 야만이 된다.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자는 듣는 사람에게 야만이 되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된다. 서로 의사가 통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은 피차 야만의 행위이다.

 

④ 통역하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참으로 신령한 것을 구하는 성도는 예언하기를 구하여야 한다. 만일 방언을 하는 자가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못되는 방언만 하지 말고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였다.

 

⑤ 방언 기도는 나의 영이 기도하나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한다. (12-13).

방언으로 기도하면 자기 영은 기도를 하나 마음에는 열매가 없다. 마음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깨달음이 없는 것이다. 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성도가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가리키고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 영으로 찬미한다는 것은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가리키고 마음으로 찬미하는 것은 마음으로 찬미하는 가사 내용을 가리킨다 예를들면 “기쁘다 구주 오셨네”하고 찬송하는 것 같은 것이다.

 

⑥ 방언을 알아듣지 못하면 덕을 세우지 못한다 (16-17).

방언으로 축복을 하거나 감사할 때에 무식한 자 깨닫지 못한 사람이 “아멘”할 수가 없다. 자기는 감사를 잘했지만, 교회에는 유익이 없다. 아멘 “진실”, “찬동한다”는 뜻으로 유대 교회에서 모여서 지도자가 기도나 말씀을 전할 때에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하여 “그렇습니다”하는 뜻을 표한 것이다(신 27:15-26; 대상 16 :36; 느 5:13). 이것이 신약시대 교회에도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⑦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

깨달은 마음으로 성경을 다섯 마디 말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하는 것보다 낫다. 한 마디라도 성경 말씀을 깨달아 말하면 교회에 큰 유익이 있으나 방언은 아무리 많이 말해도 교회에 유익이 없다. 고린도 교인들이 교만하여 시기와 분쟁을 하며 유익이 없는 방언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악에는 장성하고 지식에 유치한 까닭이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어 악한 일을 할 줄도 모르고 할 수도 없는 자가 되고, 지혜에 있어서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 어떠한 것이 귀중한 것인지 어떠한 것이 유익이 없는 것인지(방언의 무익성) 바로 깨달아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라고 권면한다.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면(예언하면) 불신자나 무식한 자도 그 말씀을 통하여 책망을 받고,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므로 유익하다. 방언은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나 예언은 큰 유익을 주므로, 예언이 귀중한 것이다.

 

⑧ 온 교회가 함께 방언으로 말하면 미쳤다 여긴다. (23)

온 교회가 다 모여서 방언하며 떠들면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나 무식한 사람들이 볼 때에 미쳤다고 할 것이다. 불신자와 무식한 자는 어느 때나 있으므로 교회에서 방언을 하는 것은 별로 유익이 없다.

 

39절에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는 권면은, 위(6-28)에 기록된 모든 규례에 의하여 교회의 공적 질서(公的秩序)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언(方言)을 할 때에는 금하지 말라는 것뿐이다.

 

 

二.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교회에서는 찬송시(=초대 교회에서 부르던 구약의 시편), 가르치는 말씀(=성경 말씀과 그 뜻), 계시(=계시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준 일), 방언, 예언 등의 많은 은사가 있었는데 이 모든 은사는 교회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고 덕을 세우도록 사용하여야 한다.

 

1. 차서를 따라 하라. (27-31)

교회에서 방언을 말하려면 두 세 사람만 순서대로 하되 반드시 통역을 세우라고 하였다. 거짓으로 통역하는 자가 많으므로 통역하는 자가 바른 통역을 하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바른 통역인지 알아보려면 한 사람이 방언을 하고 통역하는 자를 두 사람 이상 세워서 통역하는 내용을 각자 기록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내용이 일치하면 바른 통역이고 그렇지 못하면 바른 통역이 아니다. 바른 통역을 하였다면 백 사람이 통역을 하여도 일치할 것이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방언을 말하지 말고 잠잠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의 말씀(예언)을 가르칠 때에 모든 사람이 배우고 권면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사람씩 말씀을 전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권면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 모든 것을 분별하며 고칠 것은 고치고 순종할 것은 순종해 나가야 한다.

 

2. 예언하는 자들의 영도 성도에게 제재를 받아야 한다,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란 예언하는 자가 받은 성령의 감화를 가리킨다.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므로(요 16:13), 예언하는 자가 성령의 감화를 받고 예언을 할 때 자기를 제재하여 바른 의식과 행동으로 해야 한다. 성령의 감화를 받은 자는 무리하고 무질서하거나 탈선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3. 하나님은 화평을 원하신다, (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시므로 성도는 교회에서 무슨 일이나 질서 있게 하고 모든 것을 화평가운데 해야 한다.

 

 

三. 모든 일에 질서를 지키라 (34-38)

1.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바울이 이 말을 하기 전에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한 것을 볼 때, 이 명령은 주로 당시에 무질서한 은사 활동으로 예배에 혼란을 초래했던 여성도들에게 권고한 말로 보인다. 당시에 모든 교회에서는 여성들이 예배에 무질서하게 개입해서 예배를 혼란케 한 일이 없었으나, 교린도 교회는 영적은사를 받은 여성도가 예배 도중에 방언을 하며, 질서를 지키지 않고, 교회 지도자의 통제도 받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다고 하면서 갑자가 공예배 중에 나서서 방언을 하여 예배를 방해하였으므로, 바울이 이러한 무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 너희들도 교회에서(공예배에서) 잠잠하라고 권면하였다. 계속해서 "여인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율법에서도 이와 같이 명하고 있다"고 하였다(14:34). 이 말은 은사를 받은 여성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강론할 때에 갑자기 중간에 나서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으로 보이므로 바울은 교회 지도자가 강론할 때에 여성들이 개입해서 그 말을 보충하거나 지적하는 일을 금한 것으로 추정된다.

 

2.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라 (39-40)

과유불급(過猶不及)-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의 도를 지키라는 말이다. 갈 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이 과거에 유대교의 대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도 뛰어난 제자였고, 유대교에 속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갔다. 조상들에 의하여 창안되고 여러 세대를 거쳐 전수되어 온 가르침과 관습을 그대로 지키는 데 남들보다 더욱 열성이었다. 조상의 유전에 대한 그의 열성이 이러한 정도였으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지나칠 정도로 핍박하고 잔해하였다. 바울은 기독교 신앙이 신적인 유래를 지닌 것이라고 하는 많은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앙을 거부하는 자로 지내왔을 뿐만 아니라 그 신앙에 대한 열성적인 핍박자 노릇을 하였고, 그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을 뿌리채 뽑아 버리려고 폭력과 위협 등 가진 수단을 다 써왔다.

 

1.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말씀이 은혜스럽고 그 말씀이 자기에게 생명과 힘이 되어 자기를 인도해 주는 예언의 말씀이 되도록 사모하라는 것이다. 예언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힘써서 생명의 열매가 맺혀 나가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일을 부지런히 하면 방언을 하던 것은 자연히 안 하게 된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적 유익이 없고 열매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방언을 금하지 말고 더욱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말씀만 사모하여 그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면 모든 어지러움이 바로 잡아질 것이다

 

2. 질서를 지켜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라.

KJV- decently and in order (예의 바르게, 품위있게, 순서를 따라, 차례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질서 있고 모든 것이 적당해야 한다. 성도가 질서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다. 적당하다는 것은, 대충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흠이없게, 사람들 앞에서 예의바르게 하라는 것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하고, 자기 위치를 바로 지키며, 모든 것을 알맞게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해 나가야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너무 지나치고 무질서한 은사는 오히려 괴로움과 방해가 되고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 신 5:32-33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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