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0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본문 : 고전 7:1-40 #182,268,368

제목 : 성도의 결혼생활

 

一. 부부관계 (1-6)

1. 결혼의 필요성 (1-2)

바울은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말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한 것은, 성을 죄악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위한 권면이었다. 사람은 마음이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이 연약하여 성욕으로 인하여 범죄하기 쉬우므로, 바울은 남편과 아내를 두는 것이 지혜로움을 교훈하였다. 따라서 1절에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독신으로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은, 신앙생활과 주의 일을 하는 데에 유익한 면을 말한 것이지, 혼인제도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또, 결혼의 목적이 단지 음행 방지에 있다는 뜻도 아니다. 독신 생활의 좋은 면만 보고 결혼하지 않다가 음행 죄에 빠지면, 도리어 큰 낭패를 보기 때문에 사람마다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바울은 결혼을 신성시하였다(엡 5:22-23).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사람에게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돕는 위치를 지켜서 돕는 일을 해 나가야 한다.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와 여자는 육신의 부모를 떠나서 하나님이 지어준 짝과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2. 서로의 의무를 다하라 (3-4)

남편은 아내에 대해,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피차 상대방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게 된다. ‘의무'의 헬라어 '오페일렌'은 '빚','채무'를 뜻하며, 본 절에서는 부부가 서로에게 져야 할 '의무', 특히 성생활에서의 의무를 뜻한다. ‘서로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은, 부부간 성적 생활에 있어서도 각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고린도 교인들이 올바른 부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비도덕적인 음행을 자행함으로 결혼의 고귀한 가치를 망각한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의 성(性)적 면에 있어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주장대로만 하면 안 된다. '부부는 상호 책임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자기 몸에 대한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배우자와의 합당한 관계 속에서 정상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순결한 결혼 생활은 부부의 평등한 의무가 항상 행해질 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며 부부의 권리도 그 의무 속에서 동등하고 상호적으로 요구될 수 있을 것이다.

 

3. 서로 분방하지 말라 (5-6)

성도가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분방할 수 있으나, 다시 합해야 한다. 억지로 분방하면 마귀가 틈타 죄를 짓게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분방하지 말라고 했다. '분방(奔放)하지 말라'의 헬라어 '메아포스테레이테'는 '빼앗지 말라' 또는 '강탈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는 부부사이의 권리나, 의무를 빼앗지 말라는 것으로, 부부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권리와 의무를 지키라는 것이다. 부부가 분방할 수 있는 경우는,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말은 기도할 때는 언제나 분방해야 된다거나, 기도하는 동안은 절대로 부부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칼빈은 이러한 기도가 '재난'이나 '진노의 날' 또는 '매우 어려운 문제' 등을 결정해야 할 때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성도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히 13:4). 그러나 바울이 결혼하라고 권한 말은 권도로서 명령이 아니고 사랑으로 권면하는 말이다.

 

二. 독신 생활 (7-9)

바울은 성도들이 자기처럼 혼자 사는 것을 원하나, 각 사람이 받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받은 은사대로 하라 하였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베풀어주신 은사를 따라 결혼하거나 독신 생활을 영위하여야 한다. 바울과 같은 독신의 삶이 하나님께서 주신 독특한 은사라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혼인하지 않은 자들과 과부 된 자들에게, 자신과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나, 만일 절제할 수 없으면 차라리 결혼할 것을 권하였다. '절제'는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성적인 욕구 그 자체를 금욕주의자들과 같이 금지하지 않는다. 즉, 독신보다 결혼이 더 낫다거나 결혼보다 독신이 더 낫다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의 분량에 순종하는 것이 제일 낫다는 의미이다.

 

19:10-11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갓이 좋삽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와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찌어다. 사람이 아내에게 얽매여 있는 생활을 하는 것보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제자들이 말하였으나 예수님은 타고난 자라야 독신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고자는 성적 불구자로 결혼생활이 불가능한 자이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독신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타고난 자로서 독신 생활을 할 만한 자는 이 말을 받아서 독신 생활을 하라는 말씀이다. 독신으로 지내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타고난 자' 외에는 아무도 이 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三. 혼인한 자에 대한 권면 (10-16)

1. 신자는 이혼할 수 없다. (10-11, 마 19:44-46)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결혼에 관여하여 그들을 짝지워 주신다는 것은, 인간이 한번 결혼하면 자의로 갈라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고 합당한 배필을 만나게 해주시므로, 그것을 싫다고 하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도전이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짝지워주신 결혼은 사람이 나눌 수 없다 말씀하셨다(마 19:44-6). 혼인한 자는 성경에 허락한 조건 외에는 이혼하면 안 되며, 만일 부부가 갈라졌을 경우라도 그냥 지내다가 다시 합하여야 한다. 그러나 끝까지 다시 합할 수 없고 이혼을 해야 할 때는, 공적으로 제정된 수속을 밟아야 한다.

 

하나님이 갈라주는 경우는, 부부간에 한편이 음행한 일이 있을 때이다. 음행은 부부 계약이 해약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또 부부간에 한 편이 세상을 떠났을 경우에 남은 쪽은 자연히 부부 계약이 해약된다. 장로교 정치 문답 조례 166문답에는 ➊,음행이 있거나, ➋오랫동안 집을 버리고 멀리 가서 관리의 처분으로 부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혼하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다(렘 29:4-6).

 

부부가 서로 믿지 않을 때에 결혼하였으나, 그 후 남편이 먼저 예수를 믿게 된 경우에 아내가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그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여자가 먼저 예수를 믿고 남편이 믿지 않을 때, 남편이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그의 아내는 갈라서지 말고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믿는 자가 불신자와 결혼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의 명령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고 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도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믿지 않는 남편이 신앙 문제 때문에 이혼하자고 하면 이혼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대로 이혼하지 말고 화평하게 함께 사는 것이 좋다. 신자는 가정 형편이 어떠하든지 거기에서 신앙을 지키며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여 믿지 않는 식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도록 계속 기도하며 권면하여야 한다. 그것이 화평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아무리 완고한 자라도 감화시켜서 구원하실 것이다. 성도가 불신 배우자의 구원을 위하여 애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불신자와 결혼하여 개종시키고자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

 

四.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 (17-24)

10-15절에 있는 내용처럼 남편이 있든지 떠나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환경을 바꾸려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믿음을 지키라는 말이다. 주님이 부르실 때의 환경과 형편을 바꾸려 하지 말고 거기에서 믿음을 지키라는 진리를 바울이 모든 교회에서 가르쳤다. 할례는 난지 팔 일 된 남자의 양피(陽皮)를 베는 율법적 의식이다(창 17:10-11).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시켜 주셨으므로(골 2:14-15,) 이제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미 받은 자는 무할례자가 되지 말고 그대로 믿음을 지키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할례와 같은 율법적 의식을 행하거나 행치 않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

 

5: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하였다. 4:23-24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신다. 의식적으로 행하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성도는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믿음을 잘 지키고 거기에서 신앙과 양심과 영의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종노릇을 바로 해야 한다.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도 그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21절). 남의 종으로 있어도 그 자리에서 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서 믿음을 지키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형편이 자유 할 수 있으면 종살이를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영의 자유를 얻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적 자유를 얻은 사람이다. 또 세상에서는 자유자라고 해도 주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성도(고전 6:20)는 남의 종으로 있든지 주인으로 있든지 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의 명령대로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써서 살아야 된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와 영적 자유권을 떠나서 사람에게 얽매이고 사람의 종이 되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죽는다. 할례를 받았든지 안 받았든지 종이든지 자유자이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것이 자기 영이 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이루어지는 복 받는 길이다. 신자는 자기가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어떠한 환경에서나 그대로 지내며 신앙을 지켜야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꾸어 줄 때는 바꾸는 것이다.

 

 

五. 말세의 결혼생활 (25-35)

말세 때가 되어 남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았고 환난과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때에 결혼하여 거기에 얽매이고 세상에 빠지거나 세상 근심을 하게 되면 믿는 일을 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처녀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바울이 말한 것이다. 부부는 서로 매여 있다(롬 7:2). 남편에게 매였으면 매인 그대로 또 놓였으면 놓인 그대로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 비록 매였다고 해도 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지켜 주의 명령대로 믿음을 잘 지키면 된다. 매여 있는 자는 놓이기를 구하지 말고 놓인 자는 할 수만 있으면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결혼하는 것이 죄는 아니나 결혼하는 사람은 육신에 고난이 있다. 결혼하는 날은 고난받는 생활을 시작하는 날이다. 그 고난 속에서 잘 인내하면 연단을 받아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혼자 사는 자는 그 고난을 받지 않고 주의 일을 잘 할 수 있다. 때가 단축하여지고 남은 때가 얼마 없으므로 세상의 것들 때문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신앙생활을 잘하라는 것이다.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라는 것은, 자기 의무를 감당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아내는 남편을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서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부부간에 제재를 받아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장가든 자는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힘쓰며, 시집간 여자는 남편을 기쁘게 하려고 하여 마음이 나누이고 세상 염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주를 위해 독신생활하는 자는 몸과 심령을 거룩하게 하여 주의 일에 모든 것을 바치기 쉬우므로, 바울이 독신 생활을 권면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자라도 부부의 의무만 감당하고,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몸과 심령 전폭을 주께 바쳐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의 일을 전적으로 할 수도 있다. 바울이 독신 생활을 권면하는 것은 강압적으로 명령하여 시험에 빠뜨리려 함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권면이니 받을 만한 사람만 받고 타고 난 자만 받으라는 것이다. 이치에 합하게 개인적 사정이 헌신 원리에 합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분요함이 없이 마음이나 생활이나 능력 사용에 있어 나뉨이 없이 단순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생활하라는 의미이다.

 

 

六. 처녀 딸과 과부의 재혼 (36-40)

1) 처녀 (36-38)

처녀 딸을 시집보내고 안 보내는 문제에 있어서는, 부모의 결정이 중요하고 또 본인의 의사가 더욱 중요하다. 부모가 딸을 독신으로 두므로, 타인의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질 염려가 있고 노후의 일도 염려되어 이치에 합당치 않게 생각이 되거든 시집보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또 부모가 딸을 시집보내지 않으려고 해도 본인이 시집가기를 원하면 보내야 된다. 부모의 결심과 딸의 심정이 일치가 되어 딸을 시집보내지 않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주님의 뜻을 찾아 딸을 시집보내는 것도 잘하는 것이요, 시집보내지 않아도 될 자는 안 보내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다. 시집보내지 않고 믿음으로 살게 하면 주의 일을 돕는데 더 유익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2) 과부 (39-40)

과부가 자기 뜻대로 시집갈 수 있으나, 주 안에서 하라고 하였다. 자기의 깨달은 신앙양심을 양보하여 불신자나 이단자에게 시집가는 것은 믿음을 배반하는 일이요 그리스도를 떠나는 일이다. 바울이 전절에서는 과부의 재혼의 자유를 주었으나, 본절에서는 과부의 독신 생활을 권면한다.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과부는 얽매이는 데가 없으므로 주의 일을 받드는데 시간과 마음과 몸을 전적으로 바칠 수 있으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더욱 많은 복을 받을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 [고린도전서강해 11-01] "교회의 질서와 덕" shamerin 2021.04.18 107
13 [고린도전서강해 10-02]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shamerin 2021.04.18 51
12 [고린도전서강해 10-01] "우리는 저희와 같이 하지 말자" shamerin 2021.03.24 64
11 [고린도전서강해 9-01] "모든 일에 절제하라" shamerin 2021.03.24 107
10 [고린도전서 강해 8-0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shamerin 2021.03.15 133
» [고린도전서 강해 7-01] "성도의 결혼생활" shamerin 2021.03.03 108
8 [고린도전서 강해 6-0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shamerin 2021.02.24 67
7 [고린도전서 강해 5-01] "음행을 버리라" shamerin 2021.02.24 218
6 [고린도전서 강해 4-02]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권면" shamerin 2021.02.10 49
5 [고린도전서 강해 4-01] "그리스도의 일군" shamerin 2021.02.03 45
4 [고린도전서 강해 3-01]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shamerin 2021.02.03 77
3 [고린도전서 강해 2-01] "복음진리를 아는 영적 지혜" shamerin 2021.01.27 75
2 [고린도전서 강해 1-02] "십자가의 도" shamerin 2021.01.19 69
1 [고린도전서 강해 1-01] "같은 마음과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shamerin 2021.01.19 92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