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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이전 게시판


본문 : 131:1-3

제목 :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편 131편은 겸손의 시편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시이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들 가운데 하나였다. 다윗은 자기의 중심이 마치 젖 뗀 아이와도 같다고 하였다. 젖 뗀 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하는 섭섭함이 있지만,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안식처가 되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이가 미래의 불안함, 걱정, 근심이 없이 평안한 것처럼, 주께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은 교만하지 않고, 주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심령이 고요함과 평온함 가운데 거할 수 있다. 젖 뗀 아이가 젖을 찾아 울지 않고, 그저 어머니를 소유한 거삼으로 만족하는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 마음이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다윗의 삶은 어떤 사람보다 험난하였고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의 삶이 어머니의 품 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편안하다고 고백하였다. 이는 다윗이 그의 일생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다윗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한 후이다. 이후에 사울이나 블레셋 족속과의 싸움이나 압살롬을 비롯한 반역자들과의 내전에서도 다윗은 결코 자신의 힘이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였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여 하나님의 뜻을 좆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수많은 풍상을 거치면서도 자신의 심령은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온할 수 있었다. 복음성가 중에 나는 만족하겠네라는 곡이 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땐 나는 만족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또 저기 서 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이 복음성가의 핵심적 주제는 나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라는 것이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지 않으며 불평이나 불만이 없는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과수원이나 밭에 열매나 식물이 없고, 목장에 양이나 소가 없어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세상 것은 없어도 여호와께서 살려주실 것을 믿고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세상의 것이 다 없어도 하나님이 살려줄 것과 모든 것을 합동해서 유익하게 해 줄 것을 믿고 영적 생명으로 살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심령의 평안을 누리고 사는 이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이다.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아이는, 자기 스스로 먹거나 마시거나 입는 것을 정하지 못하며, 자기의 소유를 늘이거나 재산을 쌓거나 품위와 명예를 추구하는 일을 할 수 없다. 다만 어머니가 주는 것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아이는 음식이나 기타 모든 것에 대해 전혀 염려하지 않고, 전적으로 어머니를 의지하므로 평안하다. 이처럼 다윗은 만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수많은 환난과 시험을 당하였지만, 마치 젖뗀 아이처럼 주님 안에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았던 다윗은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눈이 높지 않았다고 하였다.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다는 것, 겸손한 자리에 처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다윗은 시 18:27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라고 하였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덕은 바로 겸손이며, 겸손의 반대는 교만이라고 했다. 그리고 교만은 나는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지혜와 힘을 믿고 나아가는 자이며 이런 자는 하나님이 낮추시고, 믿음 지키기 위해 곤고한 가운데 처한 자신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벧전 5:5). 교만은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고 남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 자기가 하겠다는 것이다. 교만은 본인이 알지 못하게 실력을 배경으로 들어 오며, 실력에 정비례한다. , 인물, 학식, 권력, 지위, 언변, 기술, 능력 등등 이런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만도 그만큼 더하게 된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물리치심을 받고, 욕을 당하고 결국 멸망하게 된다.

6:16-17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가운데 제일 먼저 교만'을 언급한 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부터 모든 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음과 눈이 높아져, 하나님과 사람을 멸시하면서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미워하신다. 그래서 잠 18:12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하였다 교만한 사람은 조금 있으면 멸망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자이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물리치고 대적하므로, 때가 되면 망할 것은 정해 놓은 것이다.

 

대하 26:16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웃시야가 강성하여졌을 때에 그 마음이 교만하여,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는 죄를 범하고 문둥병이 들렸다. 웃시야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이 세워 놓은 제도를 무시했다.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은 아론 자손 제사장들이 하는 것인데(30:7) 자기가 하려고 하였다. 제사장보다 자기가 더 잘할 것 같으므로 자기가 분향하려고 한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순종하고 이용당해야 한다. 웃시야가 교만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 하지 않았고, 제사장 아사랴의 만류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17). 마음이 교만해지면 범사를 하나님의 뜻을 좆이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려 한다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지 못하고, “바벨론을 내가 건설했다” “내 도성이다”, “내 영광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하며 소리 세 번에 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이 한 것을 자기가 한 줄로 알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될 것을 자기가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바사의 총리 하만도 자기 분수를 모르고 교만히 행하다가,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 죽임을 당하였다. 교만하면 욕이 돌아온다. 다윗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여 자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일에 마음 두지 않았다.

 

성도의 교만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하게 하고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지게 한다.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성도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교회 생활에 있어서 자기 분량과 직무와 위치를 바로 알고, 사명 감당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은 교만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지만, 교만한 자는 대적하신다.(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고 겸손하면 은혜를 받고 존귀해진다. 마음이 교만하지 않아야 젖뗀 아이와 같이 심령이 평안할 수 있다.

 

 

. 큰 일 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1절 하반절의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는 구절을, 현대어셩경은 나에게 과분한 일이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번역하였다. 자기 주제를 모르고 공연히 눈이 높은 사람은, 자기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분수에 맞지 않게 높고 큰일을 바라보며 헛된 것을 추구하게 된다.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는 것은 허영심이며 교만이다. 어느 때나 자기 실력과 분수에 넘는 일을 하려고 하면,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된다. 자기의 실력과 분수를 모르고 큰 것을 추구하며 큰일을 하겠다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이며, 시험에 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높은 데 뜻을 두고 크고 중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욕심이며, 허영심이고 교만한 생각이다. 그 결과는 실패와 멸망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과 욕심으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낙원에서 추방당하였다. 고라는 레위 지파로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수종드는 거룩한 직분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를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제사장 자리에 욕심을 두고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다가 땅의 삼키움을 받았다.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은 은혜를 저버리고 반역자의 편에 서서 다윗을 죽일 꾀를 내었지만 받아 드려지지 않자 스스로 목매어 자살하였다.

 

다윗은 마음이 교만치 않고 눈이 높지 않고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않았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만을 충성되이 감당하였다. 삼하 5: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장로들이 헤브론에 와서 다윗을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하였다. 이때는 사울왕이 죽은 뒤 76개월이 지난 때이고(5),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은지 56개월이 지난 후였다(삼하 2:10-11).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이 유다 지파 왕으로 76개월 동안 왕위에 있었고, 이스보셋은 2년 동안 이스라엘 열한 지파의 왕으로 있었다.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다가 그가 2년 만에 죽은 후에도 56개월 동안 자기들끼리 나라를 세워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하고 점점 더 난국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열한 지파의 모든 장로들이 스스로 다윗에게 찾아와 자신들의 왕이 되어 줄 것을 청하였다.

 

이미 5년 전에 이스보셋이 죽었지만, 다윗은 무력을 동원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자기에게로 돌리려 하지 않았다. 왜내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당장 자신에게 맡기신 유다 한 지파만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며 기다렸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예정한 것이면 가만히 있어도 다 돌아올 것이지만, 억지로 자기 욕심대로 취하려고 해도 결코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만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4:2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

하나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일을 경영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사람이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결코 그 경영하고자 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께서 마 6: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였다. 사람이 염려하고 근심하며 힘쓴다고 해서, 자라지 않는 키를 한자라도 더 크게 할 수 없다. 무슨 일이나 염려 걱정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사람이 변경할 수 없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인간의 힘으로 변경할 수 없고, 하나님이 구부러지게 하고 이지러지게 한 것을,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펴거나 셀 수 없으며, 하나님이 곧게 해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힘써도 곧게 할 수 없다.

 

삼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홀로 인간의 생사화복, 흥망성쇠, 부귀영화, 빈부귀천을 주관하시고 주장하시며, 또한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간섭하신다. 그러므로 세상만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므로, 사람이 하는 일에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사람이 아무리 집을 세우려 해도 하나님께서 그 집을 세워 주시지 않으면 세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성을 지키는 파수꾼이 아무리 경성(警醒)하여 성을 잘 지키려 해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헛수고가 된다.

 

9:1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막론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지 않는다면 인간적인 모든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된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한 것에 대해 사람은 어떤 변경도 할 수 없다. 다윗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의 평생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젖땐 아아이와 같이 고요하고 평온한 심령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큰 그릇으로 낸 자는 큰 그릇으로 쓰이고, 작은 그릇으로 낸 자는 작은 그릇으로 쓰임받을 뿐이다. 그러므로 작은 일을 맡은 자는 작은 일에 충성하면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이다. 자기가 맡은 일에 자족하는 신앙을 가지고 그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

 

25장에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최선을 다해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남긴 것에 비하면, 이것은 절대량에서 10/4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 달란트 받았던 자에게도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에게 하셨던 것처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하고 동일한 칭찬을 해 주셨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상급과 칭찬이 똑 같았다. 하나님이 상주시는 표준은, 사명이 중하고 큰 일을 한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맡은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충성하였느냐 하는 여부에 있기 때문이다.

 

요셉은 17세 때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종살이 할 때에도 감옥살이할 때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삶을 살았으므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였다. 모르드개도 포로로 끌려갔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자기 믿음을 지키고비록 이방나라에서 문지기라는 직분을 맡았지만 감사함으로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였으므로, 결국에는 바사 나라의 총리의 직에 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큰 일하겠다는 생각이 없이, 다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였을 뿐이다.

 

4:7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 은사는, 자기가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서 각 사람에게 주권적으로 나눠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각 성도의 은사도 직임도 각각 다르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와 분량을 깨달아 감사하며, 그것을 사용하여 전체에 대한 일비지역(一臂之力)을 감당할 것뿐이다. 크고 기이한 일 할 생각을 버리고 젖뗀 아이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심령이 고요하고 평온함을 누릴 수 있다.

 

 


결론

1. 마음이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2. 큰일 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