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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이전 게시판

본문 : 15:30-33

제목 : 훈계와 견책을 달게 받으라


예수께서 마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말씀하셨다. 옛말에도 도오선자 시오적 도오악자 시오사”(道吾善者 是吾賊 道吾惡者 是吾師)라 하였는데, 이는 나의 좋은 점을 말하여 주는 사람은 곧 나를 해치는 사람이요, 나의 나쁜 점을 말하여 주는 사람은 곧 나의 스승이다.”라는 말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남들이 자신을 비방하고 욕설할 때 기뻐하고, 칭찬할 때 슬퍼하라. 비난은 그를 공손함으로 이끌어주며 스스로의 해독제가 되어준다.’고 하였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와 복음을 위해 욕과 핍박, 악한 말을 달게 받으면, 이전의 선지자가 걸어간 길을 걸어간 것이 되고,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크다. 세상 사람들은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든다고 한다. 조금 잘못해도 괜찮다 하고 조금 모자라도 넉넉하게 이해해 주는 일은 덕 중의 덕일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칭찬이나 좋은 말은 자칫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어 그릇된 길로 가게 할 수 있다. 아첨하는 말에 속아 소인을 가까이하다 낭패당한 경우를 지나간 역사에서 우리는 수없이 목격할 수 있다. 나의 단점에 대해 지적해 주는 충고는 듣기에는 거슬리지만, 본인의 잘못을 돌아보고, 개선시킬 수 있어 득이 된다.

 

. 지혜로운 자는 훈계와 견책을 달게 받는다

훈계와 견책을 달게 받는 자가 지혜 있는 사람이며, 자기 영혼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다. 잠언의 중심적인 단어 지혜는 전체에 걸쳐 41회나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다. ‘지혜의 히브리원어 '호크마'(*)는 올바른 내적 외적 삶의 유지를 위한 판단력의 의미를 가지며, 인간의 삶의 전반에 적용되는 기능적, 도덕적, 종교적 지혜를 포괄하는 말이다. 이러한 지혜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33).

 

예수께서 6:23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다. 영이 마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을 심령이라고 하는데, 그 심령이 하나님과 교통하면 심령의 눈이 밝아진다. 눈이 밝아지면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분별하고 신앙의 바른길을 걸어갈 수 있다. 영이 살아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야 심령의 눈이 밝아지고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다. 눈이 나쁘면 몸 전체가 다 어두워지고 점점 더 흑암으로 빠지게 된다. 신령한 눈은 마치 등불과도 같아서, 그 눈이 밝으면 온몸이 밝아지고 명랑하게 된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마귀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질 것이라고 하와를 미혹하였다. 실제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다음 눈이 밝아졌다. 그러나 영적 눈은 가리워지고 자기를 위하는 눈만 밝아졌다. 사람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 곧 악이다.

영의 눈이 밝아 훈계를 잘 받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 신령한 귀가 열려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책망을 잘 들으면, 사망의 길에서도 살길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견책을 달게 받는 자가 지혜 있는 사람이요, 자기 영혼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며, 생명이 사는 지식을 얻는 것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생명에 이르게 하는 책망의 말씀을 달게 받고 깨달아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다. 그래서 그의 영의 눈이 밝아지고 영의 귀가 열려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삭개오가 예수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스스로 선을 행할 것을 말했다.(19:8).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하고, 삭개오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돌이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음은 모든 이에게 말씀하셨다.

 

신령한 귀가 열려서 생명의 경계를 들으면,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나가게 된다. 경계의 원어 토카카스책망, 꾸지람이라는 뜻으로, ‘생명의 경계는 곧 생명에 이르게 하는 책망이라는 뜻이다. 본문의 훈계물리적인 힘이나 말로 징계하다, 견책하다라는 뜻의 '야사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생명에 이르게하는 책망을 들을 수 있는 귀는, 책망의 말씀을 마음으로 달게 받고 순종하는 자에게 허락된다. 죄를 짓고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모르고 여전히 그 길로 행하다가 멸망을 당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다. 비록 귀에 듣기 싫고 기분이 상하지만, 책망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생명과 평안의 길로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자이다. 그러므로 영의 눈이 뜨여지고 귀가 밝아져서 바른 말씀의 훈계를 잘 받는 사람은 복 있는 자이다.

 

7:5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하였다. 책망받을 때 잘못한 것을 원통히 생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소망이 있다. 12:11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하였다. 지혜자가 가르치는 영적 진리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같이 잘못된 것을 드러내 바른길로 인도해 주며, 잘 박힌 못과 같이 심령골수에 박히도록 해준다. 바른 책망을 잘 들으면, 유익은 책망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책망을 받는 당사자에게 있다. 그래서 현대어성경은 32절을 꾸지람 듣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며, 호되게 나무라도 그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번역하였다.

 

나단 선지자에게 엄한 책망을 받은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하고 즉시 회개하였다. 왕의 입장에서 자기 죄에 대해 일개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그 앞에서 죄를 범했다고 스스로 자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책망을 달게 받고,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다. 사람이 실수해서 죄를 범할 수 있으나, 자복하고 회개하면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다윗이 이처럼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죽음을 면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종인 나단 선지자를 존경하였기 때문에 그의 견책도 잘 받았다. 하나님이 권면하실 때에 그 말씀을 잘 듣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복있는 사람이다.

열왕기하 5장에,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이스라엘 나라의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왔다. 아람 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위에 있는 나아만은, 엘리사자 자기에게 나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쳐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나와 보지도 않고, 종자를 보내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는 말을 전했다. 일개 선지자에게 멸시를 당한 것에 분노한 나아만은 분노하여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종들은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왕하 5:13) 하고, 나아만에게 권면하였다.

 

엘리사가 자기 주인인 나아만에게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한 것이 심히 무례하고 섭섭하고 화가 날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까지 온 이유는 문둥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엘리사의 홀대를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그가 병고치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만약 그냥 돌아간다면 아무 소득도 없고 문둥병도 고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아만에게 문둥병을 낫고자 하면 엘리사가 무엇을 시키든지 순종해야 하고,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씼으라 한 것보다 더 크고 중한 일을 시켜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것이니,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은 세상 어떤 일보다 쉽고 좋은 일이니 그렇게 해보자고 지혜롭게 나아만에게 권면하였다.

 

나아만의 종들도 나아만처럼 홀대받은 것만 생각하고 엘리사를 욕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원래의 방문 목적대로 문둥병을 고치려면, 엘리사로부터 홀대받은 것이나 자존심 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병을 낫기 위해서는 엘리사가 요단강보다 더 한 곳에 가서 씼으라 해도 마땅히 그리하여야 한다고 주인에게 권고하였다. 종들의 권면을 들은 나아만은 그 말에 수긍하여, 분한 마음을 돌이키고 요단강물에 일곱 번 담그므로 문둥병을 고침받았다. 훈계를 잘 받는 사람은 신령한 귀가 열려 생명의 경계를 듣고 살길로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훈계를 달게 받는 자가 지혜 있는 사람이요, 자기 영혼을 귀중히 여기는 복 받은 자이다. 나아만은 비록 자신의 종들의 말이라 할지라도 자기 고집과 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그 권면의 말을 듣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여 죽을 병에서 고침받을 기회를 잃지 않았다. 우리도 책망이나 견책의 말씀을 들을 때에 기회를 잃지 말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지혜로운 자는 훈계와 견책을 달게 받는다.

 

 

. 자기 영혼을 경히 여기는 자는 훈계를 벋자 않는다.

훈계받기를 싫어하는 것은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기는 것이다. 10:17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하였는데, 생명길로 인도하는 지혜의 훈계를 배격하고 무시하는 자는, 결과적으로 멸망의 길로 나아가는 자이며 이는 스스로를 혐오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는 자와 같다. 12: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훈계와 징계를 싫어하고 자기의 생각만 옳다하고 고집대로 나아가다가 결국은 패망한다.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스승이나 윗사람의 교훈이나 책망을 경홀히 여기고 도외시하며, 자신의 이성적 판단과 본능적인 욕구와 고집대로만 행동하므로 이성적 분별력이 없는 짐승과 같다.

 

13: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15:5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15:32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하였다. 부모나 인도자가 하나님 말씀으로 바로 훈계를 해줄 때에 안 들으면 영적 궁핍과 수욕이 온다. 그 훈계를 안 듣는 자는 제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 생각이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 말씀은 몇 억만 배 낫다. 교만하여 자기 생각만 옳게 여겨 훈계를 받지 않으면 영적 궁핍과 환난이 온다. 미련한 자는 훈계를 업신여기며 받지 않다가 도중에 거꾸러지고 장수하지 못하므로, 결국 자기 영혼을 스스로 망하는 길로 나가는 어리석은 자이다. 다윗과 사울의 대표적인 차이점은 책망을 들을 줄 아는 면이다. 스승이나 부모의 권고를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행하면, 마침내 후회하는 날이 도래한다.

 

5:11-13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죄에 빠져 모든 것을 다 잃고 몸의 건강까지 잃은 다음에,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훈계하던 것을 싫어한 것과 꾸지람을 가벼이 여긴 일을 한탄해도 때는 늦는다. 어느 때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삼상 15:23). 완고하여 자기 고집만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 다른 이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결국 그 고집으로 인해 궁핍과 수욕을 당하고 멸망 길로 가게 된다.

 

16:12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불러다가 진정시키고 바른길로 인도해 주려고 사람을 보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올라오지 않고 더욱 불평과 원망을 하였다. 멸망할 자는 부를수록 더욱더 멀리 물러가 결국은 파멸의 길로 간다. 역사적으로도 범죄한 자기를 살리려고 쓴소리를 하는 인도자를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고 모욕하는 우를 범한 사람들은 결국은 다 멸망했다.

 

삼상 15:28-30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울은 자기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백성과 장로들 앞에서 자기를 높여 달라고 사무엘에게 말하였다. 사무엘의 책망을 듣고 사울이 참으로 회개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겼을지도 모른다. 사무엘이 아각을 죽이기 전까지는 사울이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아각왕을 죽인 후에는 회개할 기회가 없어졌다. 참으로 사울의 장래가 불쌍하게 되었다.

대하 24:20-21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자기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요아스 왕에게 가서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다고 경책하였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왕과 방백과 백성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긴들을 책망하는 스가랴를 괘씸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이 서로 모의한 후, 스가랴를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다. 요아스왕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를 어떻게 사지에서 구원하여 왕위에 오르도록 했는지를 잊어버리고, 신하들 앞에서 자기 체면을 구긴 일만 생각하고 스가랴 선지자를 성전에서 돌로 쳐 죽이는 극악무도한 살인을 저질렀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징계가 유다나라에 임하였다. 이 사건 후 일년이 지난 때에 아람 사람들이 쳐들어와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스가랴를 죽이는 일에 동참했던 모든 방백들을 멸절하고 그들의 재물을 노략하여 다메섹 왕에게로 보냈다. 요아스 왕은 부상당해 치료받던 중, 모반한 자기 신복들의 손에의해 침상에서 죽임을 당했다.

 

대하 25:15-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나아가 가로되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선지자가 오히려 말할 때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아마샤왕이 선지자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일자손과 싸워 승리하였다. 승리를 거둔 아마샤왕이 에돔 사람들이 버린 우상을 가져다가 섬기므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어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라고 책망하였다.

 

그러나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에 도취되어 마음이 교만해져, 이전처럼 선지자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라고 멸시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바른 충고도 무시하고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과의 벧세메스 전쟁에서 패하여, 유다 군사들은 도망하고 아마샤는 포로가 되었다. 승리한 이스라엘 군사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400규빗(180m)이나 헐고, 성전의 금은 기명과 왕궁 재물들을 탈취하고,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아마샤왕은 포로로 잡혀갔다가 15년 후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행하다가 반역을 일으킨 신복들을 피해 라기스로 도망하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할 때에,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멸망받기로 예정되었 떄문이다. 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목이 곧아 돌이킬 줄 모르는 사람은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자기의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패망하고 만다. 엘리가 자녀들을 책망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것은(삼상 2:25),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미련한 자는 생명길로 인도하는 지혜의 훈계를 배격하고 무시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경히 여기는 자와 같다.

 

 

 

결론

1. 지혜로운 자는 훈계와 견책을 달게 받는다.

2. 자기 영혼을 경히 여기는 자는 훈계를 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