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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 1:1-6

제목 :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

복 있는 자, 즉 악인을 멀리하고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는 의인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비유한다. 시냇가에 뿌리를 박은 나무는 물 부족이 없고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시냇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뿌리를 박은 나무처럼 결코 영적 침체가 없이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보호하여 지키시며 그가 계획하고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도록 복을 주신다.

 

6절에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는 말은, 의인이 가는 길은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지키신다”는 뜻이다. '의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아 의인으로 인정된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본래 조상의 유전한 죄와 자신이 지은 죄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야 할 자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죄사함을 받고 영혼이 중생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 인정을 받았다. 의인이 믿음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여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그 행사가 다 형통하는 복을 받는다.

 

삼상 23:26-28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포위당하여 꼼짝없이 죽을 지경에 처하였던 그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고 구원하여 주시려고 갑자기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하셨다. 사자가 급히 와서 사울에게 급보를 전하므로, 다윗 생포하고 돌아갔다. 그곳의 이름을 ‘셀라하마느곳’이라 불렀는데, 그 뜻은 '분리의 바위'(The Rock of Division)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분리시켜 다윗을 구원하여 준 바위란 뜻이다. 다윗이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저의 보호자가 되어 지켜 보호하여 주셨다. 그리고 15년간의 연단 후에 그를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세워 주셨다.

 

39:8-10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동침하지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이 젊고 준수하며 모든 일에 능하고 지혜 있게 잘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끌려 유혹하기를 계속하였다. 그때 요셉이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과 신앙 양심을 지키고 주인에 대한 종의 한계를 분명히 지켰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끈질긴 것이었다. 날마다 유혹하며 계속 동침하기를 청하였으나, 그때마다 요셉은 그 여자의 청을 듣지 않았고 함께 있지도 않았다.

 

하루는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에 요셉과 자기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고 동침할 것을 강청하였다. 그때 요셉이 옷을 그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다. 육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쳐서 복종시켜 범죄 하는 길로 나가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이 이렇게 범죄하지 않기를 힘쓰는 자는 반드시 도와서 유익되는 길로 인도해 주신다. 그러나 요셉은 무고히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갔지만,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보존하였고, 마침내 13년간의 종살이, 감옥살이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1)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자

1:10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하였다. 악한 일이나 악한 사상에 귀를 기울여 좇게 되면, 결국은 죄를 짓게 되고 악인이 징벌을 당할 떄 같은 징계를 받게 된다. 현대인의 성경은 “악한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라고 번역하였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은 악인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계획을 따르지도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이다.

 

대하 24: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요아스 왕이 여호야다의 은혜를 생각지 않고 방백들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기다가 그 아들 스가랴가 교훈할 때에 그 말을 듣지 않고 미련하게 행하다가 스가랴를 성전에서 쳐 죽이는 큰 죄악을 행하였다. 그 결과 일 년 후에 유다를 침공한 아람 군대에게 패하여 각종 금은보화 빼앗기고, 자신은 부상하여 침상에서 치료를 받는 중에 모반한 부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악인의 꾀는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므로, 악인의 꾀를 좆지 않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2)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자.

죄인의 길에 서는 것은, 죄를 범하는 자들과 보조를 같이 한다 즉 죄 짓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11:21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악인은 서로 생사를 같이 하자 하면서 결탁하고 나아갈지라도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때에 그 벌을 피할 수 없다. 악인들이 피차 손을 잡고 세력을 강하게 하여 큰 권세로 나아가도 마침내는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징벌하시기 때문이다.

 

16:1-2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하였다. 고라는 고핫의 손자요 이스할의 아들로서, 모세의 사촌 형제이다. 고라가 모세와 한가속인데 모세의 형제만 제사장이 되고 자기들은 제사장이 되지 못한데 대한 불만으로, 주도적으로 당파를 만들어 모세를 대적하였다. 반역에 동참하였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은 물건과 함께 산 채로 땅 속에 깊이 빠져 죽었고 향로를 가지고 회막에 나왔던 250인은 여호와께로 불이 나와서 죽었다. 아버지 고라가 하나님을 거역하여 죽었으나, 그 아들들은 아비의 그릇된 꾀와 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편에 섰음으로 죽지 않았다. 고라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대적하는 악한 꾀를 좆지 않았을뿐더러, 죄짓는 길에 함께 동참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생명을 보존하고 그들의 복된 사명을 대대손손 감당하였다. 복 있는 자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자이다.

 

3)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않는 자.

오만한 자는,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고 주제넘는 생각과 언행을 하는 자로,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은, 범죄하는 자와 회합하지 않고, 그런 자들과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주도하는 자리에 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좆는다”는 것은 악인의 주의, 사상을 옳다 인정하고 따라가는 것이며, “선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악한 일에 동참하여 행하는 것이며, ‘앉는다”는 것은 악한 무리와 함께 행동하며 주도적으로 죄를 지으며, 범죄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을 나타낸다.

 

대하 25장에 아마샤 왕이 선지자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나갔을 때에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일 자손과 싸워 이기게 해주셨다. 그러나 아마샤 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는 마음이 교만하여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같은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다가 이스라엘과 전쟁하다가 패하였다. 그 결과, 아마샤는 사로잡히고, 이스라엘 군사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400규빗(180m)이나 헐고, 성전의 금은 기명과 왕궁 재물들을 탈취하고, 수많은 유다 백성을 볼모로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아마샤 왕이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그 신복들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않는 자가 복있는 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지켜 보호하셔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때를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모둔 행사가 형통한 복을 받는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

 

 

二. 악인의길은 망한다.

넓은 의미에서 ’악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불경건한 자, 하나님을 알면서도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사람까지도 포함한다. 58: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히였다. 악인들은 모태에서 날 때부터 유전 받은 부패성대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와 멀어져 자기 유익을 위하여 거짓을 말하며 곁길로 간다. 10: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전혀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착각한다. 악인은 하나님의 공의를 바로 알지 못하므로, 자기 꾀를 좇아 죄인의 길로 가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부귀영화를 누리려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가는 길이 멸망의 길임을 깨닫지 못한다. 4:19 악인의 길은 어둠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민 22장에 재물과 명예 영광에 눈이 먼 선지자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모압 왕 발락의 청을 들어주려고 나귀를 타고 가는 도중에 나귀의 책망을 받았셨다. 나귀가 길 가운데 칼을 듣고 서있는 여호와의 사자를 피하여 밭으로 들어갔는데, 영의 눈이 가리워 천사를 보지 못한 발람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나귀를 매질하였다. 이에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하고 책망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욕심의 구렁텅이에 빠져 기어이 발락에게 가서 범죄하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이스라엘의 칼날에 죽고 말았다.

 

곡식을 까부를 때 낱알은 지면에 떨어지나, 겨는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겨는 허무한 악인의 상태를 나타내며 알맹이가 없는 자이다. 알맹이는 영적 생명, 진리이며 악인은 그런 알맹이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에 견디지 못한다. '의인의 회중'은,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으로, 악인은 여기에 참여하여 영의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다. 악인의 삶은 하나님을 모르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뜻을 거슬러 불의와 악을 행하는 삶이며, 하나님 없이 이 세상의 유행과 여론과 풍습과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삶이기 때문에 결국은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망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인 알베르 까뮈가 1943년에 쓴 희곡, 『오해』는 체코 지방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실화이다. 보헤미아 내륙에 외진 곳에서 어머니와 그의 딸 마르타는 여인숙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딸 마르타는 자기가 살 곳이 그곳이 아니라고 하면서 출렁대는 바닷물과 작열하는 태양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자 계획하였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르타는 투숙객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죽인 뒤에 시체를 강물에 던지고 그들의 돈을 빼앗는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는 딸에게 이런 죄를 짓지 않도록 설득했지만, 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범죄에 함께 가담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들의 여인숙에 돈 많은 귀족의 풍모를 지닌 한 젊은 남자가 찾아왔다. 두 모녀는 그 남자를 범행대상으로 정하고 밤이 되자 마취제를 먹이고 시체를 강물에다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기대에 가득차 그 남자의 가방을 열었다. 그런데 가방 속에서 나온 신분증과 빛바랜 사진들을 본 두 모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렸을 적에 가난한 집안 형편을 비관하고 집을 나가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아들이 20년이 지나 크게 성공해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들은 이런 허허벌판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어머니와 여동생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저녁을 투숙객으로 가장해서 지내고 다음날 아침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멋진 해후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 아들과 오빠를 모녀가 죽인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그것을 본 딸도 결국 어머니 뒤를 따랐다. 인간의 무모한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파멸을 가져오는지, 욕심의 끝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까뮈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은 죽은 후에만 썩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남아있는 동안에도 절망과 욕심 때문에 썩어간다” 라고 결론지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악인은 처음에 형통하다가,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경각간에 모든 것을 잃고 음부에 내려가 고통에 빠지게 된다(욥기 21:12-13). 58:9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더웁게 하기 전에 저가 생 것과 불붙는 것을 회리바람으로 제하여 버리시리로다. 소낙비가 오면 마른 땅에 물이 흘러내려가다가 비가 그치면 금방 사라지는 것처럼, 악인들의 세력이 없어지고 만다. 사막을 여행하는 자가 음식을 해먹기 위해 가마를 걸고 그 안에 곡식과 물을 두고 불을 붙여 끓기만 하면 먹을 것인데 가마가 뜨거워지기 전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와서 다 날려 버렸으니 먹을 수가 없게 된 것처럼, 악인들은 거의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실패하고, 다 먹을 것 같아도 입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 수단과 방법, 욕심으로 가는 길의 결국은 멸망일 뿐이다. 악인의 길은 멸망이다.

 

 

 

결론

1.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2. 악인의 길은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