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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4 10:39

네가 낫고자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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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본문 : 요 5:1-15

 

一. 베데스다에는 자비가 없다.

예루살렘 북동 편에 있는 양문은 그 안에 양을 매매하는 시장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은 스데반 문이라고 한다. 그 양문 곁에는 베데스다, 즉 “자비의 집”이라 부르는 연못이 있었다. 이 베데스다 연못은 가끔끽 물이 솟아오르는 간헐천인데, 사람들은 이것이 천사가 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 것으로 그때 그것을 보고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낫는다는 전설이 전해왔다. 그래서 수많은 병자들,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와서 병 낫기를 소망하며 물이 동하기를 기다렸다. 많은 환자들을 위해 연못 주변에는 다섯 개의 행각잉 있었다. 38년 병자도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베데스다 못에 와 있었다. 그는 오랜 장구한 세월 동안 수 없이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별별 약을 다 썼지만 자신의 병을 고치고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이 연못에 와서 치유의 자비를 받고자 하였다.

 

전설처럼 연못의 물이 동할 때에 처음 들어간 사람의 병이 낫는다면, 마땅히 병이 오래되고 중한 환자들이 먼저 들어가 고침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경미한 환자들이 늘 중한 환자들보다 먼저 연못에 뛰어 들어가기 때문에 중환자들은 항상 뒤에 처지는 곳이 베데스다였다. ‘자비의 집’이라는 간판은 붙어있지만, 정작 은혜와 자비와는 전혀 없고, 실제로는 오히려 불신 세상보다도 더 극심한 생존경쟁과 마치 굶주린 짐승들처럼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었다. 따라서 베데스다에서 2등 3등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며, 오직 1등만 치유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평소에는 동변상련이라고 병자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도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지만, 물이 동하면 상황은 급변하여 오직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제일 먼저 연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싸우고 다투며, 상대방을 짓밟는 아비규환을 이루는 곳이었다.

 

5: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 하였다.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불쌍히 여긴다’, ‘자비를 베푼다’, ‘측은한 마음을 가진다는 뜻이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기의 것을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더욱이 베데스다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그 이름에 걸맞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처럼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그래서 병세가 경한 사람이 중한 사람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는 은혜의 장소가 되어야 하나, 현실은 ‘자비는 찾아볼 수 없는 무자비한 집’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병을 고참받고자 하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왔던 환자들은, 질병에 의한 육신의 고통보다도 더욱 심한 정신적 고통과 실망, 배신감과 아울러 열등감을 주는 소망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3절에 “그 안에 많은 병자, 곧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가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라 하였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누가 알려 주지 않으면 물이 동했는지 안 동했는지 알 수 없다. 다리를 저는 사람은 다리가 성한 사람이 양보하지 않으면 결코 먼저 물에 들어갈 수 없으며, 혈기 마른 중풍병자는 몸을 운신하지 못하므로 물이 동한다 해도 자기 혼자 힘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아무리 치유의 자비가 임하는 베데스다 연못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양보나 희생, 도움이 없이는 이들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와 같은 중증 병자들은 결코 연못에 들어갈 수도 없고, 병을 고침받을 수도 없다. 따라서 제일 먼저 못에 들어가 병을 치유 받은 사람은 사실 가장 자비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다른 병자들보다 상태가 중하지 않기 떄문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뿐이기 떄문이다.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자기의 기회를 양보하거나 희생하기 때문에, 결코 일들이 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베데스다는 명색만 자비의 집이지, 자비는커녕 남을 위한 양보나 희생,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무자비한 집이었다. 이처럼 세상에는 참된 자비란 찾아볼 수 없다. 육신의 병을 고침받기 위해 자비의 집인 베데스다에 간다고 해도, 더욱 심한 생존경쟁에 직면하게 되고, 병도 낫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 다른 것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의지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아 병을 고치거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임한다는 전설의 ‘베데스다’는 육신의 병든 자를 고쳐주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심리적 고통과 실망, 배신, 열등감, 절망감을 더하여 주는 소망 없는 곳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불쌍히 여기심이 아니고는, 세상 어떤 곳에서도 자비함을 받을 수도 병을 고침받을 수도 없다. 베데스다에는 자비가 없다.

 

 

二. 예수님은 만병의 치료자이시다.

‘자비’란, 사전적 의미로 ‘불행한 사람에 대해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말하며, 성경적으로는 갈 5:22에 말씀한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하나로소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33:19절에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하셨다. 인간에게 긍휼을 베풀고, 불쌍히 여겨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건지시며 여러 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모든 것은 하나님만이 하신다.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인 우리의 모든 질병과 아픔을 치료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치료하는' 말의 히브리어 '라파'(*)는 '의사' 또는 '의원'을 가리킨다. 만병의 의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죽음과 죄 등 인생의 모든 문제점까지도 깨끗이 해결해 주시는 전능한 치료자이시다.

 

5: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하나님이 하나님은 징계하여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 주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쳐주신다. 육신의 질병에서 낫는 것도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있어야 싸맴을 받고 고침을 받을 수 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병 고침을 받고자 했던 38년 병자는, 사람들로부터 자비를 얻지 못하여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때, 자비와 은혜의 실체가 되시고 만병을 치료하는 의사이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다. 자비가 없는 자비의 집에, 자비의 본체이신 예수께서 38년된 병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5:11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하였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우시고,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병들어 고통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끝까지 참고 지켜 나아가는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자비‘는 물이 동할 때 일어나는 자연적 현상이 아니며, 또 같은 피조물로서 조금 나은 형편의 인간이 무언가를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시는 예수님께서 피조물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자비이다.

 

20:30 소경 둘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예수님이 여리고 성에 들어가실 때에, 소경 둘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부르짖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문둥병을 고쳐 주셨다. 눅 7:12-14에 예수께서 나인성을 지나가시다가, 과부가 자기 죽은 독자를 장사하기 위해 나가면서 슬피 우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시고, 죽은 청년의 관에 손을 얹고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하여 죽었던 청년을 살려 주셨다. 마 14:14에 큰 무리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찾아 왔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각각의 병을 고쳐주셨다.

 

이처럼 소경 바디메오가 눈을 뜨게 된 것도,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도, 여러 수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은 것도, 주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 주의 능력으로 고쳐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병에서 고침받는 비결은,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의 긍휼하심을 받는 것이다.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나 상태를 보아서 긍휼이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자유의지로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예수께서 여러 병자들 가운데 특별히 38년 병자를 찾아오신 이유도, 그가 베데스다에서 자비를 얻지 못하고 고난을 당하고 있음을 아시고 그를 특별히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의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고 물으셨다. 예수님은 모두가 외면하는 38년 된 병자가 얼마나 오랜동안 병마에 시달렸으며, 지금도 참기 어려운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을 다 아시고 계셨다. 예수님은 베데스다에서 당한 그의 절망과 마음의 고통과 아픔을 아시고, 그를 불쌍히 여겨 찾아오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의 사정을 알아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자비함을 받지 못했던 병자에게, 예수님은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각인의 영적 상태를 다 아시고, 우리의 심령이 병들어 소경이 되고, 절름발이가 되고, 앉은뱅이가 되고 귀머거리가 된 상태를 고쳐주시고자 찾아오신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자비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은혜, 사랑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참 베데스다가 되시는 예수님에게 나올 때, 죄 사함을 받고 병든 것이 나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실패와 낙망을 당하여 소망이 없는 자라고 할지라도 주님께 나와,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함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고 물으실 때에, 병자는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하고 동문서답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아, 아직까지 베데스다 못에 들어가지 못한 사정만 말했다. 예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전지전능한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제 병이 낫게 될 것임을 알라는 것이며, 이제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즉시로 병이 나을 줄 믿고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뜻이다. 이 때 그 병자가 "예! 낫고자 합니다"고 대답했어야 합당하다. 이것이 믿음의 대답일 것이나, 38된 병자는 베데스다 못에 들어가지 못한 자기 사정만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주님이 일어나라 할 때에 "예" 하고 일어나 걸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전지전능한 주님의 말씀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며, 그 말씀을 받아 순종할 때 온전한 산 믿음이 되는 것이며, 그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가 일어나는 길이요, 하나님의 선물을 초자연적으로 받는 길이다. 예수께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셨다. 과거에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지고 병신 노릇하면서 신앙생활을 바로하지 못하던 환경과 분위기를 떠나고 치워야만 다시 그 자리에 빠지지 않는다. 병이 나은 후에 성전에서 38년 병자가 병이 나은 후에 육신 중심으로 집에 돌아가지 않고 성전생활을 하였다. 병 나은 다음에 죄를 지으면 전보다 더욱 심해진다. 다시 죄를 범치 않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를 복종시키고 성전생활을 하여야 한다. 그가 자기를 낫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고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나를 고친 이는 예수라"고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예수님은 만병을 치료하시는 의사이시다.

 

 

 

결론

1. 베데스다에는 자비가 없다.

2. 예수님은 만병의 치료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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